회식 후 무단횡단 사망 공무원…법원 "중과실 아냐"
입력: 2022.11.14 07:00 / 수정: 2022.11.14 07:00

과음 불가피한 회식 후 귀가 중 사고
"자기 의사와 무관한 안전수칙 위반"


회식 후 귀갓길에 무단횡단 중 교통사고로 사망한 공무원에 대해 법원이 고인의 중과실이 없는 업무상 재해라고 판단했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 /이선화 기자
회식 후 귀갓길에 무단횡단 중 교통사고로 사망한 공무원에 대해 법원이 고인의 중과실이 없는 업무상 재해라고 판단했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 /이선화 기자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회식 후 귀갓길에 무단횡단 중 교통사고로 사망한 공무원에 대해 법원이 고인의 중과실이 없는 업무상 재해라고 판단했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장낙원 부장판사)는 유족 A 씨 등이 인사혁신처장을 상대로 낸 '순직유족급여(가결중과실) 결정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A 씨 등) 승소로 판결했다.

A 씨의 배우자 B 씨는 2020년 6월 회식 후 귀가하던 길에 집 근처 도로를 건너다 승용차에 치여 사망했다. 유족은 인사혁신처에 순직유족급여 지급을 청구했다. 당국은 유족의 청구를 승인하면서도 "회식은 공식적인 행사로 퇴근 중 사고로 볼 수 있으나 (고인이) 무단횡단한 건 안전 수칙의 현저한 위반에 해당해 가결 중과실 적용이 타당하다"라는 전제를 달았다. 이에 유족은 공무원재해보상연금위원회에 심사를 청구했으나 위원회 판단도 같았다.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유족은 고인이 중간관리자로서 회식에서 평소보다 많은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판단 능력을 상실해 무단횡단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사고 차량이 제한속도보다 시속 25.1km를 초과해 사고 차량 운전자의 과실이 더 커 고인에게 책임을 지우는 건 부당하다고 항변했다. 고인의 중대한 과실로 사고를 당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법원은 유족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회식에서 마신 술의 양이 상당하고, 회식 인원 구성상 고인이 과음할 수밖에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사고를 방지할 기대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다.

공무원 재해보상법상 중대한 과실이란 조금만 주의했더라면 사고 발생을 미리 인식해 방지할 수 있었는데도 현저히 주의가 태만해 방지하지 못한 경우에 해당한다. 당시 회식에서 소비된 술의 양은 소주 12병, 맥주 4명에 달했고 참석자 중 3명이 여성이어서 고인은 적지 않은 양의 술을 마셨다. 과음을 막을 상급자의 만류나 제지한 정황도 없었다.

재판부는 "회식에서 정상적인 거동이나 판단 능력에 장애가 발생했고, 고인은 이에 미리 인식해 방지할 능력을 이미 상실했거나 현저히 제한됐던 것으로 볼 수 있다"라며 "사고 발생을 인식하고 이를 쉽게 방지할 수 있었다는 기대가능성을 전제로 한 중대한 과실을 인정할 수 없다"라고 판단했다.

공무원 재해보상법상 중대한 과실은 불가피한 사유가 없음에도 감행된 중대한 법령위반이나 수칙 위반 행위로, 사실상 고의에 준할 정도의 현저한 위반행위를 의미한다. 재판부는 "고인은 직무와 회식으로 불가피하게 만취 상태가 됐고, 이에 따라 정상적인 판단 능력을 상실한 채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무단횡단을 하다 사고에 이르렀다. 그 무단행위 또한 2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과료에 처할 사건으로 중대한 범법행위라 보기 어려워 고의에 따른 법령위반 혹은 현저한 수칙 위반 행위라고 볼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인사혁신처가 1심 패소에 승복하면서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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