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율 80% 육박…"평결 신뢰도 높여야"
2008년 도입된 국민참여재판 제도에 배심원 만족도는 높지만 항소율은 80%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영화 '배심원들' 스틸컷. /네이버영화 |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2008년 도입된 국민참여재판 제도에 배심원 만족도는 높지만 항소율은 80%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에 참여하는 법조인도 검사의 경우 80.7%가 배심원 이해도에 의문을 갖는 등 국민참여재판에 부정적인 것으로 파악됐다. 전문가들은 제도 활성화를 위해서는 배심원 평결 신뢰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14살 국민참여재판…배심원만 만족하는 제도?
국민참여재판제도는 '국민참여재판법'에 따라 2008년 도입됐다. 국민이 배심원으로 합의부 관할 형사재판에 참여한다는 것이 제도의 골자지만, 법관이 배심원 평결에 따르는 미국·영국 등의 '배심제'와는 조금 다르다. 한국 배심원은 법정 공방을 지켜본 뒤 피고인 유·무죄에 관한 평결을 내리고 적정한 형을 토의해 재판부에 평결을 '권고'한다. 재판부는 이를 참고해 판결을 선고하는데, 배심원 평결과 다른 판단을 한다면 이유를 피고인에게 설명해야 한다. 영미권 배심제와 달리 권고적 효력만 가질 뿐이지만 배심원의 직무수행 만족도는 높다. 법원행정처에서 7월 발간한 '국민참여재판 성과 분석(2008~2021년)' 자료에 따르면 96.6%의 배심원이 직무수행에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88.6%의 배심원이 재판 내용을 대부분 이해했다고 밝혔다. 가장 만족한 절차로는 평결을 논의하는 평의(76.1%)를 꼽았다.
재판 당사자인 검사와 피고인은 국민참여재판 제도를 신뢰하지 않았다. 13년 동안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한 1심 사건의 항소율은 80.9%로 일반 형사재판의 63%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검사 항소율 역시 일반 형사재판은 29.3%에 그쳤지만 국민참여재판에서는 절반에 육박하는 49.4%가 판결에 불복한 것으로 확인됐다. 13년 동안 검사와 피고인 모두 판결에 승복한 비율은 19.1%에 그쳤다. 배심원과 달리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형사정책과 사법제도에 관한 평가 연구'(2019)에 따르면 검사의 80.7%가 "배심원이 선입견이나 감성에 치우쳤다"라고 봤다. 재판의 공정성도 검사의 9.6%만 동의했다. 52명의 검사가 참여한 설문조사에서 국민참여재판을 선호한다고 응답한 검사는 한 명도 없었다.
◆해결책도 배심원에 있다
도입 14년을 맞이한 국민참여재판 제도는 배심원만 만족할 뿐 재판 당사자들은 부정적인 것이 통계에서 나타난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양적 증가에 앞서 배심원 평결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고 봤다. 한 중견 변호사는 "한국 배심원 평결은 법적 구속력이 없지만 법관이 다른 판결을 내릴 경우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하고,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배심원 의견을 존중하라는 것이 지침이라 평결의 중요성이 크다"라고 설명했다.
평결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밤을 꼬박 새우기까지 하는 현행 절차를 다듬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배심원 역시 애로사항으로 장기간 재판을을 가장 많이 꼽았다. 지난해 11월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유명 변호사의 의뢰인 고소건은 11월 9일 오전 11시에 시작해 다음날 새벽 2시에 끝났다. 성경숙 용인대 교수는 '배심원의 직무수행에 따른 정신건강 보호 및 회복을 위한 개선방안'(2017)에서 "대부분 국민참여재판은 1회 공판기일에 판결까지 선고돼 부실한 심리를 우려하는 시각이 있다. 배심원들이 충실한 심리를 했는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고 배심원의 피로를 가중시켜 판단력이 저하될 수 있다"며 "법원은 배심원에게 평의를 위한 충분한 시간을 보장하고, 재판부의 합리적인 재판기일 운영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윤영석 변호사는 '국민참여재판 배심원의 공정한 평결을 위한 제안'(2022)에서 "배심원이 지속적으로 합리적이고 올바른 평결을 내린다면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상승할 것이고 양적 증가도 당연히 따라올 것"이라며 서증조사를 간략화해야 한다고 봤다. 윤 변호사는 "서증조사 시간이 길어지면 공판 시간 전체가 늘어나게 되고 배심원은 체력적, 정신적으로 지치게 된다"며 "국민참여재판이 원칙적으로 1일에 마무리돼야 한다는 점에서 서증조사 시간이 길어지면 공판중심주의 구현에 필요한 증인신문 등이 희생될 수밖에 없다"라고 꼬집었다.
◆성범죄 피해자에 '이중고'를 주는 재판
국민참여재판 제도 도입으로 성범죄 피해자의 인권은 더욱 사각지대에 놓이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상 법원은 성범죄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으면 국민참여재판 '배제 결정'을 할 수 있지만, 13년간 이 같은 사유로 배제된 비율은 18.4%에 불과하다. 피해자는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낯선 배심원 앞에서 피해 사실을 진술해야 하는 압박에 노출된다.
이른바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A 교수 사건'의 피해자는 6월 1심 선고 뒤 "원칙적으로 합의부 사건이 아니라 국민참여재판 대상이 되지 않는데도 피고인은 합의부 이송까지 요청했다. 성폭력처벌법상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데도 재판부는 국민참여재판을 받아들였다"라고 토로했다. 피고인 의사에 따라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 피해자는 사건 장소 사진을 여러 차례 제시받고, 공개된 법정에서 여성 검사와 나란히 앉아 성추행 피해 상황을 재현해야 했다.
피해자는 일부 배심원의 잘못된 선입견과도 싸워야 한다. 다양한 성범죄 형태를 이해하지 못하고 '피해자다움' 등 잘못된 기준 아래 유·무죄를 판단하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A 교수 사건 역시 "유일한 증거인 피해자 진술이 일관되지 않고 번복되는 점, 사건 직후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 등에 비춰볼 때 피해자 진술만으로는 유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1심에서 무죄 판결이 선고됐다. 송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법원에서 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성범죄 사건의 무죄율은 2010년 14%에서 2020년 48%로 증가했다.
법조계에서는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성범죄 피해자 의사를 피고인과 동등하게 존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범죄 피해자 지원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성범죄 피해자 가운데 의사 표현이 힘든 분들도 많은데 반해 피해자 의사를 고려하라는 근거조항의 효력은 턱없이 약하다. 법원은 피해자 의사 확인을 의무사항으로 여겨야 한다"라고 짚었다.
배심원의 잘못된 통념을 교정할 절차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홍진영 전 판사는 '국민참여재판에 따른 성폭력범죄 재판 운용의 실무적 개선방향에 관한 고찰'(2017)에서 "배심원에게 편견과 고정관념을 성찰하고 교정할 수 있는 기회와 정보를 제공하는 한편 편견과 고정관념에 너무 강력하게 사로잡혀 교정할 의지가 없는 배심원을 배제하는 방안이 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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