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 베트남 마을 사람들 죽이고 집 불태웠다"
입력: 2022.08.09 19:14 / 수정: 2022.08.09 19:14

한국 상대 손배소 재판서 첫 현지인 증언…"총 쏘고 수류탄 던져"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열린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 사건 국가배상소송 관련 기자회견에서 원고 응우옌티탄 씨가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열린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 사건 국가배상소송 관련 기자회견에서 원고 응우옌티탄 씨가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군인들이 퐁니 마을에서 사람들을 죽이고 집을 불태우는 모습을 봤습니까?"

"네. 한국 군인들이 고함을 치고 있었습니다."

"위장한 '베트콩'이 아니라 한국군이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었습니까?"

"얼굴이 달랐습니다. (대리인단을 가리키며) 여기 계신 분들처럼 생겼습니다. 눈과 얼굴로 구별했습니다."

베트남전쟁 당시 남베트남 민병대원으로 근무한 응우옌득쩌이(82) 씨가 한국 법정에서 한국 군인들의 학살 현장을 목격했다며 기억 속 참상을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 박진수 부장판사는 9일 오후 베트남인 응우옌티탄(62) 씨가 한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변론기일을 열었다.

이날 기일에는 베트남전쟁 당시 남베트남 민병대원으로 근무한 득쩌이 씨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뤄졌다. 득쩌이 씨는 1968년 2월 12일 한국군이 퐁니 마을 주민을 죽이고 있다는 무전을 듣고 마을 입구로 이동해 망원경으로 학살 행위를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한국군은 고함을 치며 마을 사람들에게 총을 쏘거나 수류탄을 던졌으며, 집을 불태웠다고 한다. 한 주민의 집 마당에 모인 사람들에게 총을 쏘고, 사람들이 쓰러지자 수류탄을 던지는 모습을 봤다고도 밝혔다.

득쩌이 씨는 마을 사람들을 죽인 군인이 한국군인 걸 어떻게 알았냐는 질문에 대부분 남성으로 구성된 대리인단을 가리키며 "여기 계신 분들처럼 생겼다. 눈과 얼굴(의 생김새)로 구별했다"라고 답했다. 당시 길거리와 가게, 식당 등에서 한국군을 마주친 일이 많아 군인들이 고함치는 소리를 듣고 한국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고도 덧붙였다.

군인들이 물러간 뒤 득쩌이 씨는 미군과 함께 마을에 들어가 구조 작업을 했다. 득쩌이 씨의 기억에 따르면 마을 곳곳에 시체 더미가 있었고, 불에 탄 시신들이 섞여 있었다. 득쩌이 씨는 "가슴과 한쪽 팔이 잘린 여성을 발견했는데 아직 살아 있었다. 하지만 다낭으로 호송하고 나서 죽었다"라고 기억했다. 법정 스크린을 통해 해당 여성이 쓰러져 있는 사진과 구조 작업을 하고 있는 미군의 사진이 제시되기도 했다.

이 사건 원고이자 조카인 티탄 씨의 피해에 대해서도 "복부에 총상을 입고 창자가 보이는 상태였다. (원고의) 오빠는 옆구리와 엉덩이에 총상을 입어 의식이 없었고 죽을 듯이 위급한 상태였다"며 "원고의 집은 불타 연기만 나고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티탄 씨의 어머니와 남동생, 집에 놀러 온 손님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고 증언했다. 티탄 씨 남매는 회복한 뒤 득쩌이 씨에게 마을 사람들을 공격한 건 한국군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국군 청룡부대 1대대 1중대 소속 군인들은 베트남전쟁이 진행 중이던 1968년 2월 12일 꽝남성 디엔반현 퐁니 마을에서 비무장 민간인 70여 명을 학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당시 8살이었던 티탄 씨는 한국군이 쏜 총에 복부를 맞아 지금까지 후유증을 겪고 있는 피해자로, 2020년 4월 한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한국 정부는 한국군의 학살 사실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베트남 공산주의 군사조직(베트콩)이 한국군으로 위장해 민간인을 학살했을 수 있고, 한국군이 퐁니 마을 주민을 적으로 오인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다. 지난해 11월 퐁니 마을 작전을 수행한 부대 소속 군인이었던 A 씨가 법정에 나와 학살 당시 상황을 직접 증언했으나 정부 측은 "진술이 일관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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