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공판기일→공소제기 7일…박범계 전 장관 "검사스러운 생각"
1회 공판기일 후 국회에 제출되던 공소장이 앞으로는 공소제기 일주일 후 제출된다. /이선화 기자 |
[더팩트ㅣ김세정 기자] 1회 공판기일 후 국회에 제출되던 공소장이 앞으로는 공소제기 일주일 후 제출된다. 국민 알권리를 보장한다는 의의는 있지만 피고인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국민 알권리와 피고인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국회 자료요구에 따른 공소장 제출 시기를 '공소제기일로부터 7일 후'로 앞당겼다.
추미애 전 장관 시절 제정된 법무부 내부지침에 따라 공소가 제기된 사건의 공소장 전문은 1회 공판기일 이후 공개됐다. 피의자가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공개된 재판정에서 공소사실이 드러나는 1회 공판기일 전에는 공소사실 요지만 제공해왔다. 1회 공판기일 후에는 공소장 전부를 법령에 따라 요구하는 국회의원에게 보냈다.
◆ "국민 알권리 위해" vs "3일 만에 방어권 행사 불가능"
법조계에서는 국민 알권리를 위한 적절한 조치라는 의견과 피고인의 권리가 여전히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공존한다.
한 현직 검사는 "공판준비기일도 있고, 구속기소 하는 경우에는 1회 공판기일이 금방 열리지만 불구속 기소하면 오래 걸린다"며 "국민의 알권리도 있으니까 공소장 공개 시점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여러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지난 2일 국민 알권리와 피고인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국회 자료요구에 따른 공소장 제출 시기를 '공소제기일로부터 7일 후'로 앞당겼다. 사진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동률 기자 |
또 다른 검사는 "공소제기 후 7일이라는 시점은 상황이나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본다"며 "예전에는 피고인이 자신에 대한 공소사실을 알기도 전에 보도돼 법정 방어는 물론 언론 대응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 있었다. 공개 시기를 앞당기긴 했지만 최소한 피고인이 자신이 공소사실이 어떻게 구성됐는지 받아본 뒤에 공개됐다는 점에서 (이전 정부에서 했던) 공소장 공개 시점을 늦추는 취지 자체는 어느 정도 인정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반대 의견이 있었다. 법무부는 공소제기 후 3~4일이 지난 시점에는 피고인에 공소장이 송달되기 때문에 공소장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상태라서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변호인들은 공소제기 후 일주일은 반론권 보장이 되긴 어려운 기간이라고 지적한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7일 후에 피고인은 공소장은 볼 수 있어도 수사 기록을 못 본다. 피고인의 방어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검찰의 주장이 공개되는 것"이라며 "7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지켜지려면 사실상 (재판 전에) 공소장을 비공개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면서도 "1회 공판기일 후는 피고인이 공소사실 중 '이 부분은 이렇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점이다. 그런데 7일은 피고인의 반론권 보장이 사실상 안 된 상태라고 봐야 한다. '너네는 받았으니까 공개하겠다'는 식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 박범계 "여론 재판 통한 방어권 침해 우려…1회 공판기일, 기소 후 7일 큰 차이"
추 전 장관 시절 도입된 이 지침은 시기상 논란도 불렀다. 당시 울산시장 선거 청와대 개입 사건의 공소장을 비공개하면서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다. 기소 이후면 개인정보만 제외한 공소장 전문이 국회에 제공되던 오랜 관행이 중단된 계기가 하필 정권 의혹 사건이었던 셈이다.
국회증언감정법과 충돌되는 면이 있는데도 국회와 논의없이 법무부 일방적으로 시행하면서 분란을 더 키웠다. 잘못된 관행이더라도 국회가 중심이 돼야지 행정부 자의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다른 대형 사건 때는 기소 직후 공소장 내용이 공개돼도 문제를 삼지 않다가 정치적 사건에만 유독 단호해진다는 비판도 받았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판기일 전에 공소장이 공개되면) 결국 재판도 받기 전에 검찰이 기소의 정당성을 강변하려는 낙인찍기, 여론 재판을 통해 방어권이 침해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문제가 있다"고 언급했다. /남윤호 기자 |
다만 시기나 진정성을 떠나 공소장 공개가 수사기관 중심의 '인권침해'라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문재인 정부에서 마지막 법무부 장관을 지낸 박범계 의원은 공소장 공개 시기를 앞당긴 것을 두고 "검사스러운 생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의원은 장관 재임 시절인 지난해 5월 '김학의 출국금지 사건'으로 기소된 이성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측이 공소장을 받기도 전에 실명까지 그대로 유출되자 "기소된 피고인이라도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 또는 개인정보와 같은 보호해야 할 가치도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박 의원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공소장을 공개해선 안 된다는 건 인권 침해적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1회 공판기일이 되면 공개재판을 받게되니 공개를 안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그때는 재판장 주재 아래 검사와 피고인이 대등한 자격으로 기소가 옳은지 공개·공식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 무기가 대등해진다"라며 "(공판기일 전에 공소장이 공개되면) 결국 재판도 받기 전에 검찰이 기소의 정당성을 강변하려는 낙인찍기, 여론 재판을 통해 방어권이 침해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피고인에 공소장이 송달된 상태라서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법무부의 주장을 두고도 "기소 직후에 공개하는 것이나 일주일 뒤에 공개하는 것이나 차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피고인이 공소장을 받았다고 해서 방어권이 행사되는 것이 아니다. 피고인이 언론에 '내가 억울하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검찰이 '이 사람은 이런 죄를 지었으니 문제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설사 준비기일이 오래 걸려 늦더라도 1회 공판기일과 기소 직후 7일은 차이가 크다"고 강조했다.
◆"확인되지 않은 진술 사실처럼 보도…공소장 단정적 표현방식 바꿔야"
공소장 공개는 언론과 떼놓을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검찰과 언론의 영향력과 피고인의 대응능력은 현격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언론을 통해 공소사실이 일방적으로 알려지면 국민참여재판의 경우 배심원, 또 재판부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공소장에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나 진술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 내용은 피고인 측의 반대신문을 통해 검증돼야 하는 것인데 마치 사실처럼 보도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검찰이 이제 티타임도 하지 않나. (피고인이 공소장을 받은 상태라고 하더라도) 검찰이 갖고 있는 영향력과 반론권 등 피고인 측의 능력은 기본적으로 차이가 많이 난다"며 "미국은 공소장 공개가 더 빨리 되지만 '검찰의 주장이고, 입증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돼 있다. 반면 우리 공소장은 단정적 표현이 많이 쓰여 있어 공소장 작성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또 검찰의 언론 영향력에 상응할 정도로 피고인 측에 조금 더 많은 반론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sejungkim@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