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병원 간호사 사망…응급실 비우고 휴가 떠난 의사들
입력: 2022.08.05 00:00 / 수정: 2022.08.05 00:00

복지부, 현장점검…민건군·동희군 사망 사건 소환

서울아산병원에서 의사가 없어 간호사인 환자가 수술을 받지 못한 채 사망한 사건에 대해 보건복지부가 진상 조사에 착수하며 파장이 거세질 전망이다./서울아산병원 제공
서울아산병원에서 의사가 없어 간호사인 환자가 수술을 받지 못한 채 사망한 사건에 대해 보건복지부가 진상 조사에 착수하며 파장이 거세질 전망이다./서울아산병원 제공

[더팩트ㅣ주현웅 기자]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에 의사가 없어 한 간호사가 수술도 못 받고 사망한 사건에 대해 보건복지부가 진상 조사에 착수하며 파장이 거세질 전망이다.

특히 당시 의사들이 일제히 자리를 비운 이유가 업무 목적의 학회·출장이라고 알려져 왔으나, 실제로는 통상적인 여름휴가로 파악돼 병원의 인력 운용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유사한 사건은 수년 전부터 여러 차례 발생해 복지부가 근본적인 재발 방지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5일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복지부는 전날 오전 송파구보건소와 함께 아산병원 현장점검에 나섰다. 뇌출혈로 쓰러진 간호사가 수술조차 못 받고 사망한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서다.

해당 사건은 지난달 31일 아산병원 직원이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게재한 글을 통해 알려졌다. 한 주 전인 24일 동료 간호사가 일하다 쓰러지게 돼 같은 병원 응급실에 갔으나, 수술할 의사가 없어 다른 병원으로 옮겨진 뒤 결국 숨졌다는 내용이다.

뇌출혈을 앓은 간호사는 개두술(머리를 여는 수술)을 못 받아 사망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난도가 높은 수술이라 국내 최대 의료기관인 아산병원에도 가능한 의사가 2명뿐이라고 알려졌다.

이에 대한병원의사협의회 등은 전날 성명서를 내고 국내 의료 시스템이 문제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개두술 등은 위험부담이 큰데도 진료비가 낮은 탓에 지원자가 적어 전체 인력도 부족하다는 취지다.

서울아산병원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서울아산병원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하지만 아산병원이 응급의료체계의 구멍을 보였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수술 가능한 의사 2명이 사건 당일 전부 여름휴가로 병원을 떠났기 때문이다. 중증 응급환자가 언제든 올 수 있는 환경에서 동시에 자리를 비운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전국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환자가 365일, 24시간 발생할 수 있는 조건에서 학회나 휴가 등의 변수가 존재하더라도 대응할 수 있는 체계는 갖춰놓아야 한다"며 "국내 최고의 상급종합병원인데 수술할 의사가 없어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사실은 매우 비극적"이라고 지적했다.

모 대학병원의 한 의사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며 "국내 최대 의료기관이란 곳에서 수술 가능한 의사가 휴가를 번갈아 가지 않고 동시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시스템 자체가 의아하다"고 말했다.

아산병원 관계자는 "뇌혈관 부분 의료진은 3명이며 수술 담당 2명, 시술 담당 1명으로 구성돼 있다"며 "당시 시술을 맡은 의사가 최선을 다했으나 불가피하게 수술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이번 일이 발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복지부는 일련의 사태에서 정확한 사실관계는 물론 위법 사항이 있었는지도 살펴볼 예정이다.

지난해 (故)김동희 유족과 환자단체들은 양산부산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119구급차로 이송중인 응급 환아 동희 군의 수용을 거부해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에 대해 보건복지부 조사를 통한 원인 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모습./환자단체연합회 제공
지난해 (故)김동희 유족과 환자단체들은 양산부산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119구급차로 이송중인 응급 환아 동희 군의 수용을 거부해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에 대해 보건복지부 조사를 통한 원인 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모습./환자단체연합회 제공

◆민건군·동희군 사건 데자뷰…"근본대책 나와야"

이번 사태는 6년 전 이른바 ‘민건군 사건’과 2년 전 ‘동희군 사건’도 소환했다. 각각 지역의 상급종합병원인 전북대병원과 양산부산대병원에서 발생, 병원의 수용 거부 때문에 환자가 수술을 못 받고 사망한 사건이다.

고 김민건 군은 2살이었던 2016년 9월 30일 전북 전주의 한 도로에서 친할머니와 견인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다. 급히 전북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전원(다른 병원 이송)이 결정됐다.

민건이는 7시간 대기 상태로 있었다. 다른 14개 병원이 전원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아주대병원이 뒤늦게 수술을 결정했을 때는 민건이가 이미 숨진 뒤였다. 사고 당시 민건이를 품에 안은 할머니는 전북대병원에서 6시간 만에 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숨졌다.

전북대병원의 경우 실제로는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감사원과 복지부 등의 조사에서 밝혀졌다. 이에 권역응급의료센터 지정이 3년 동안 취소됐다. 문제가 된 의사는 비상환자 보고를 받고도 학회 준비 등을 이유로 수술을 거부했다고 한다.

고 김동희 군은 편도제거수술 후유증을 앓다 2019년 10월 정신을 잃어 양산부산대병원으로 이송 중이었다. 병원 도착 약 5분 전 ‘심폐소생술 중인 다른 응급환자가 있어 수용 불가’ 통보를 받고 다른 병원을 알아보다 골든타임을 놓쳤다.

5개월 뇌사상태에 빠진 동희는 2020년 3월 11일 5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경남지방경찰청 수사 결과 양산부산대병원에서 심폐소생술 중인 다른 환자는 없었다고 드러났다. 현재 의료소송이 진행 중이며 복지부는 판결이 나오면 적정한 조치에 나설 예정이다.

두 사례의 공통점은 복지부가 사태의 진상 규명 및 처벌 등을 우선하다 근본적인 재발 방지대책 마련에는 미흡했다는 점이 꼽힌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에 따르면 국내 중증환자 전원률은 약 4.7%로 미국의 20배가량으로 추산된다. 전원 환자의 사망률은 최초 병원에서 치료받은 환자보다 3배 정도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더팩트DB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에 따르면 국내 중증환자 전원률은 약 4.7%로 미국의 20배가량으로 추산된다. 전원 환자의 사망률은 최초 병원에서 치료받은 환자보다 3배 정도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더팩트DB

의료 소비자들 사이에선 전원 자체를 줄이고 비상의료 체계를 고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에 따르면 국내 중증환자 전원률은 약 4.7%로 미국의 20배가량으로 추산된다. 전원 환자의 사망률은 최초 병원에서 치료받은 환자보다 3배 정도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이번 서울아산병원 사건에서는 전원 조치라도 했지만 일반 환자 중에서는 그마저 신속히 이뤄지지 않는 일도 많다"며 "상급종합병원의 빈틈 없는 비상의료체계를 보장할 방안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아산병원 사건을 계기로 관련 학회에 제도 개선 사항 의견을 요청했다"며 "회신이 오면 정책적 제도 개선이 이뤄지도록 검토하겠다"고 전했다.

chesco1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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