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댓글조작, 뒤집힌 진실' 쓴 양지열 변호사 인터뷰
양지열 변호사가 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일대의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
[더팩트ㅣ장우성 기자]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난 사건에 토를 달면 '대법원도 부정하느냐'는 반박이 돌아올 법하다. 양지열 변호사도 책을 쓰면서 의식하지 않았을까. <더팩트>가 인터뷰에서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이다.
"부정한다기보다는 아쉽다는 거죠. 뭐가 다르냐고 할 수 있지만. 이렇게 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김경수, 댓글조작, 뒤집힌 진실' 300쪽 남짓한 책에는 '드루킹 댓글조작 공모 의혹'으로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판결문 분석과 함께 그의 변론을 맡았던 세 변호사의 실명 인터뷰가 담겼다.
책에 담긴 양 변호사의 목소리는 격앙되지 않았다. 인터뷰나 평소 방송 때처럼 오히려 차분하다. 적어도 정치적이지 않다. 무조건 판결이 잘못됐다고, 김경수 전 지사는 결백하다고 강변하지 않는다.
"제 주관적 관점을 배제하더라도 전직 기자이자 법률가로서 여전히 의문인 대목이 있어요. 민사재판과 달리 형벌을 내리는 형사재판은 완전하지는 않아도 70~80%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판결이 나와야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꼭 옳다는 게 아니라 여러분은 납득이 가시는지 묻고 싶었어요."
사법부가 김 전 지사의 유죄를 인정한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문제의 2016년 11월9일. '드루킹' 김동원 씨가 이끌었던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의 파주 사무실에서 댓글순위 조작프로그램인 '캥크랩' 시연회가 열렸다고 인정한 것이다. 근거는 프로그램 개발자 A씨의 네이버 로그기록이었다. 또 하나는 주로 김동원 씨가 김 전 지사에게 전달한 텔레그램 메시지다. 여기엔 정치권 정세 등이 뼈대인 온라인 정보보고와 김씨가 작업한 포털 기사의 URL주소가 담겼다. 정보보고에는 '킹크랩'도 언급됐다.
양 변호사는 두가지 증거를 볼 때 "유죄 의심이 가는 것은 맞다"고 동의한다. 하지만 그만큼 유죄가 아닐 가능성도 적지않다고 반박한다. 이럴 때 '의심스러우면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사법의 대원칙이 왜 적용되지 않았는지를 묻는다.
양지열 변호사가 쓴 '김경수 댓글 조작, 뒤집힌 진실'의 표지/메디치미디어 제공 |
이 사건의 '스모킹건'인 로그기록을 놓고 법정에서 주장은 엇갈렸다. 특검은 김동원 씨와 개발자의 진술을 근거로 16분가량되는 로그기록을 볼 때 시연용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단순 테스트라면 누가 16분씩이나 하겠느냐는 논리도 덧붙였다. 반대로 김 전 지사 측은 댓글 순위 조작 과정은 간단한데 시연회를 했다면 그정도나 시간이 걸릴리가 있느냐고 맞섰다. 김씨와 A씨의 진술에 따르면 김 전 지사가 시연회 내내 질문은커녕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것도 이상했다. 이 때문에 객관적인 전문가에게 로그기록 분석을 맡기자고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양변호사가 가장 아쉬워 하는 대목이다.
"재판부 논리는 전문가에 맡기지 않아도 결론이 뻔하다는 건데 아니죠. 피고인 입장에서는 뒤집을 수도 있는 상황인데요. (김 전 지사에게 적대적인) 드루킹과 킹크랩 개발자의 말만 믿어준 거죠. 그들의 진술도 일관성이 없었어요. 객관적 디지털 증거를 진술에 의존해 판단했습니다. 재판 일정 지연 우려도 전문가 검증을 받지않은 한 이유였는데 감옥에 갈 수도 있는 피고인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죠."
텔레그램 메시지도 다른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일단 김 전 지사는 하루에 수백통의 메시지를 받는 처지에서 드루킹의 메시지 역시 확인만 했을 뿐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실제 김 전 지사가 답 메시지를 보낸 적도 드물었다. 정보보고도 조악한 내용이 많았다.
양 변호사는 "절대적으로 제 말이 옳다는 게 아니라 특검의 주장 역시 절대 옳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라며 "특검과 김 전 지사의 주장이 뭐가 그렇게 차이가 났는지 모르겠다. 재판부는 의심스러우면 피고인의 이익에 따랐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희생양을 찾기보다 구조에 눈을 돌린다. '백 명의 죄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라'는 금언보다는 '죄인을 놓치면 안 된다'는 '유죄 추정의 원칙'에 더 기울 수밖에 없는 근본적 문제를 짚는다.
판사수의 절대 부족도 이유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판사 1인당 사건은 464건이다. 한국과 사법시스템이 비슷한 것으로 알려진 독일의 5배 수준이다. 사건을 면밀히 들여다보기 보다는 검찰의 공소장을 얼개로 판단하기 쉬운 한계가 있다. 기본적으로 검찰을 신뢰하는 법원 문화도 한 몫한다. 양 변호사는 "한국 검찰은 법조 엘리트들로 구성되면서 준사법기관으로 규정된다. 검찰은 사명감으로 일하지만 변호사는 대가를 받고 일하는 존재로 보는 인식도 깔려있다"며 "검찰이든 법원이든 법전에 쓰인 범죄에 해당하는지만 초점을 맞춰 법의 형식논리에 사로잡힐 뿐 개별 사건의 특성을 깊게 들여다보지 않는다"고 했다. 수사권의 남용 여지, 판·검사들의 과잉된 정의감 등도 작용한다.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으로 징역 2년형이 확정된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창원교도소 수감에 앞서 부인 김정순 씨와 포옹을 하며 마지막인사를 나누고 있다. /창원=뉴시스 |
이같은 양 변호사의 주장에도 김 전 지사 사건의 결론이 바뀔 확률은 사실상 '제로'다. 자신도 진실은 알 수 없고 반전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다만 유죄의 결정적 증거가 된 네이버 로그기록의 전문가 감정은 아직도 미련이 남는다.
"로그기록이 2심 후반부가 돼서야 법정에 제출됐어요. 구제는 받지 못 하더라도 객관적 기관이 검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사법 절차상 불가능한 일이지만 궁금하네요. 김 전 지사 측이 독자적으로 감정을 맡긴 결과는 이 로그기록을 시연용의 증거로 볼 수 없다고 나왔거든요."
바쁜 스케줄을 쪼개 책까지 펴낸 양 변호사지만 사실 김 전 지사와는 모르는 사이다. 방송사에서 한두 번 마주친 정도다. 다만 집필 과정에서 수감 중인 김 전 지사와 간접적으로 간단한 소통을 하면서 느낀 점은 있다. 출간 계획을 알리자 김 전 지사가 A4 4장 분량의 의견을 전해왔다고 한다. 옥중에서 스크랩한 사법개혁 주제 기사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판결이 억울하다거나 힘들다는 말을 한 마디 할 법도 한데 전혀 없었다.
어렵게 인터뷰한 김 전 지사 변호인들도 양 변호사에게 인상을 남겼다. 변호인은 자신의 의뢰인이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시지만 변호사가 의뢰인을 자백시키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렇게 해봤자 소용없다고요. 하지만 김 전 지사 변호인들은 지금도 굉장히 안타까워하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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