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 법무연수원 증원 논란…"혈세낭비, 검찰 신뢰 깎아"
입력: 2022.06.19 00:00 / 수정: 2022.06.19 00:00

검찰 안팎서 목소리…"한동훈 장관 연구실적 밝힐 수 있나" 지적도

법무부는 지난 14일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검사 정원을 기존 4명에서 9명으로 증원하는 내용의 법무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시행규칙 일부 개정령을 입법예고했다. 사진은 충북 진천의 법무연수원. /이선화 기자
법무부는 지난 14일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검사 정원을 기존 4명에서 9명으로 증원하는 내용의 '법무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시행규칙 일부 개정령'을 입법예고했다. 사진은 충북 진천의 법무연수원. /이선화 기자

[더팩트ㅣ김세정 기자] 법무부가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정원을 대폭 증원하면서 고유 기능을 외면한 채 '유배지' 낙인만 강화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지난 정부도 마찬가지였다고 주장하지만 검찰을 더 잘 안다는 현 정부가 똑같은 행태를 확대해서 되겠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지난 14일 '법무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시행규칙 일부 개정령'을 입법예고했다. 입법예고 기간은 15일까지로 단 이틀이었다.

1972년 설립된 법무연수원은 검사와 수사관을 비롯해 보호직, 출입국관리직, 교정직 등 법무·검찰 공무원에 대한 교육과 조사·연구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연구위원은 법무정책과 법무부 소속 공무원 교육과 훈련에 대한 연구 업무를 수행하는 비수사 보직인데 2000년대 들어 검찰 고위직들의 '유배지'로 인식돼왔다.

2002년 '이용호 게이트' 수사 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김대웅 전 광주고검장이 기소되자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전보됐다. 당시 법무부는 연구위원 한 자리에 검사장급을 임명할 수 있도록 직제를 개정했다. 이어 2009년 민유태 전 전주지검장이 '박연차 게이트' 연루 의혹을 받자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발령했다.

주식부당거래 의혹을 받았던 진경준 전 검사장도 2016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자리에 있다가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전보됐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2020년 채널A 사건으로 연구위원 자리로 옮겼다.

법무연수원의 연구위원은 7명이다. 4명은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일반직 공무원이나 검사가 가고 나머지 3명은 교수나 외국 법률가 자격자를 둔다. 법무부의 입법예고는 검사장급 4명의 자리를 5명 더 늘려 9자리로 만드는 것인데 추가 좌천 인사가 단행될 전망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16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자리를 꼭 늘리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법무연수원은 유일하게 법무행정과 법제를 연구하는 곳이다. 직제개편을 통해 우수한 자원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감찰이나 수사를 오래 받는 고위급 검사 숫자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 분들이 장기간 직접 국민을 상대로 수사하거나 재판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세종-서울간 화상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세종-서울간 화상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법조계와 검찰 안팎에서는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근무 경험이 있는 한 법조계 인사에 따르면 연수원은 일손이 모자랄 만큼 업무가 많지는 않다고 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인원을 두 배로 증원한다면 기관의 설립 목적과 다른 의도가 있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법무부는 개정이유에서 "법무행정 서비스 향상을 위한 연구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증원한다"고 설명했지만, 한 장관이 취임 다음 날 단행한 인사 면면을 봐도 연구와는 동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성윤 고검장과 이정수, 이정현, 심재철 검사장 등 지난 정부에서 요직을 거친 검찰 간부들을 모두 연구위원으로 전보시켰다. 지방고검에 전보된 이종근 검사장과 정진웅 차장검사는 정원 제한을 피해 파견 형식으로 우회로를 택해 연수원에 근무하도록 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감찰이나 수사, 재판받는 사람을 일선에 둘 수 없다는 말도 맞지만 그렇다면 적당한 방법으로 징계를 하거나 해임을 해야 한다. 연구 역량을 키우기 위한 것이 아니고 다른 목적이니까 굉장히 부적절하다"며 "연구위원으로 보내면서 국가 세금만 낭비하는 상황인데 한동훈 장관 본인부터 법무연수원 시절 무엇을 연구했는지 이야기할 수 있나"라고 말했다. 한 장관은 2020년 좌천성으로 1년 동안 법무연수원에 근무한 바 있다.

검찰 내부에서도 5명 증원은 '굉장히 이례적'이라며 갸우뚱하는 분위기다. 한 검찰 간부는 "(고위직 검사들이) 연구위원으로 가서 무슨 연구를 하겠는가. 실제 연구했던 내용을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연수원 사정에 밝은 한 변호사는 "검사들에게 새로운 법 경향, 판례 등을 교육한다는 측면에서 검사수를 늘리는 것은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고위직 검사들의 법무연수원행을 뻔히 좌천이라고 인식하는 상황에서 인원까지 늘리면서 추가 인사를 하겠다는 것은 연수원 고유 기능 자체를 상실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정부에서도 좌천성 인사로 법무연수원을 활용했으니 '해도 괜찮다'는 반응은 더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있다.

서초동의 변호사는 "합수단 1호 사건 등에 유사수신 이야기가 나오지 않나. 이같은 신종 범죄에 어떤 법률을 적용하고, 어떻게 수사를 해야 할지 연구하는 곳이 법무연수원"이라며 "지난 정부도 일부 검사를 좌천성으로 법무연수원 발령을 냈다고 주장하는데 검찰 이해도가 더 높은 현정부 인사들이 사실상 똑같은 행위를 확대하는 꼴이라 더 부적절하다. 검찰이 더 신뢰받는 기관이 될 수 있는지, 검찰 스스로의 미래를 깎아 먹는 것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sejungki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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