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불법출금' 현직 검사 "야반도주하는데 다른 방법 있나"
입력: 2022.06.11 00:00 / 수정: 2022.06.11 00:00

이규원 재판서 증언…"검찰 신뢰·총장 지위 달린 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1월 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받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남용희 기자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1월 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받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남용희 기자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출국금지 당시 대검찰청에 근무한 현직 검사가 "나중에 잘못되는 걸 푸는 한이 있어도 당시에는 결심이 필요했다"라고 긴박했던 상황을 강조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옥곤 부장판사)는 10일 김 전 차관 출국금지 관련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규원 전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검사, 차규근 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본부장, 이광철 전 청와대 비서관의 공판을 열었다.

이날 공판에는 사건 당시 대검 정책기획과장을 지낸 현직 검사 A 씨가 증인으로 나왔다. 검찰은 출국금지 관련 문건에 내사번호를 기재하라고 말한 인물로 A 씨를 지목했다. 이 검사는 김 전 차관의 출국을 막기 위해 관련 공문서에 허위 사건번호를 쓴 혐의를 받고 있다. A 씨는 이날 공판에서 "내사번호 관련 이야기를 했을 것 같기는 한데 명확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다만 A 씨는 늦은 밤 갑자기 출국을 시도한 김 전 차관을 막기 위해서는 내사번호를 써서 관련 문서를 구비할 수밖에 없었다는 취지의 증언을 했다. 재판부는 봉욱 당시 대검 차장이 문무일 전 검찰총장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도 내사번호 관련 내용이 있는 점을 들어 "증인의 아이디어인가"라고 물었다. 검찰이 확보한 증거에 따르면 봉 전 차장은 2019년 3월 22일 오후 11시 40분경 문 전 총장에게 "윤대진 국장(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에게서 김학의가 출국 수속받는 것을 확인했고 이규원을 통해 내사번호를 부여해 출국금지 조치를 했다"라고 문자로 보고했다. A 씨의 기억이 모호하기는 하지만 내사번호 부여가 A 씨의 생각이라면, 이 같은 생각을 대검 윗선과 법무부에도 전달했냐는 물음이 담긴 질문이었다.

A 씨는 "제 아이디어라고 하는데 내사번호를 부여해서 출국금지를 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뭐가 있는가.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 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라고 답했다. 재판부가 '누가 생각해도 그 방법밖에 없었다는 것이냐'라고 되묻자 "네"라고 답했다. 또 A 씨는 당시 김 전 차관에 대한 출국금지가 절차상 맞지 않다는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듣지 못했냐는 이어진 물음에 "긴급한 상황이라 조사 경과를 보고받지 못해 알지 못한다"면서도 "일단 야반 도주까지 하려고 하는데 나중에 잘못된 걸 푸는 한이 있어도 당시에는 결심이 필요했다고 보인다"라고 말했다.

재판부가 '출국금지 당시가 아니어도 잘못된 것 아니냐는 반대의견이 제시된 적 있냐'라고 재차 물었지만 A 씨는 "없다. 그때는 다들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내사번호를 받는 건 굉장히 실무적인 일이라 어떤 절차나 결재가 필요한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규원 전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검사 등의 재판이 열리는 서울중앙지법. /남용희 기자
이규원 전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검사 등의 재판이 열리는 서울중앙지법. /남용희 기자

검찰은 긴급 출국금지 요청서에는 수사기관장 관인이 있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김 전 차관에 대한 요청서에는 요청기관으로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서울동부지검 직무대리 검사 이규원)'이라고만 쓰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 검사는 서울동부지검 직무대리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당시 진상조사단이 서울동부지검 청사에 여유 공간에 마련됐기 때문이다. 검찰은 서울동부지검장을 수사기관장으로 보고, 직무대리 검사가 소속 지검장 관인 없이 출국금지 절차를 밟아 위법하다고 공소사실을 구성했다.

이 검사는 진상조사단이 설치된 대검의 승인 아래 절차를 진행했다는 입장이다. 이 검사 측 변호인은 "이 검사가 서울동부지검 직무대리임에도 서울동부지검장 재가 없이 업무를 수행했다는 게 문제가 됐다"며 "긴급한 상황에서 대검 수뇌부의 지시사항을 전달받아 예외적으로 출국금지 업무를 수행하고 적절한 '선조치 후보고'를 했다면 적법하지 않냐"라고 물었다. A 씨는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이날 검찰은 "김 전 차관의 출국금지가 특별하게 다뤄진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원론적인 질문을 던졌다. A 씨는 "국민적 관심이 높았지 않느냐. 검찰의 신뢰와 직결되고 검찰총장 지위까지 문제 삼을 수 있는 일이었다"라고 대답했다. 또 검찰은 "오랜 검사 생활을 한 증인도 제도적인 어려움을 무릅쓰고 김 전 차관을 출국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느냐"라고 의견을 물었다. A 씨는 "신속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이 검사 등은 2019년 3월 23일 오전 12시 20분 인천발 방콕행 저비용 항공사 티켓을 구매해 출국하려는 김 전 차관에 대해 긴급 출국금지 조치를 하는 과정에서 부실한 서류로 절차를 밟은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김 전 차관은 체크인까지 마친 오전 12시 10분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져 나가지 못했고, 3개월 뒤 구속 기소됐다.

김 전 차관은 2013~2014년 '별장 성 접대'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으나 두 차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2019년 이뤄진 재수사로 우여곡절 끝에 재판에 넘겨졌으나 검찰이 핵심 증인을 사전에 면담했다는 논란이 불거지면서 증언 신빙성 부족을 이유로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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