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에게 폭행을 당한 택시기사가 사건 영상을 지운 경위에 대해 "이 전 차관의 부탁을 크게 의식한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피해자의 자발적 의사에 따라 영상을 삭제한 것이라는 이 전 차관 측 주장에 부합하는 증언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2부(조승우·방윤섭·김현순 부장판사)는 19일 오후 특정범죄가중법상 운전자폭행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전 차관의 공판을 열어 피해 택시기사 A 씨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A 씨는 "뒷좌석에 있던 손님(이 전 차관)이 욕을 하길래 '저한테 욕하시는 겁니까'라고 반문하니 세게 멱살이 잡혔다. 그래서 112에 신고했다"라고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당시 이 전 차관의 상태에 대해서는 "제가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는데 술이 좀 많이 된 걸로 보였다"라고 기억했다.
이후 A 씨는 사건 당시 상황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을 이 전 차관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로 전송했다. 이에 이 전 차관은 '고맙고 미안하다'라고 답장을 보낸 뒤 직접 보고 사과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A 씨는 "제가 휴무라 제 동네로 오시라고 해서 (이 전 차관을) 만났다"며 "진정성 있게 사과하셨다. 저도 다친데도 없고 술 먹고 실수한 정도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합의하는 과정에서는 영상 삭제 관련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고도 덧붙였다.
합의 한 시간 뒤 이 전 차관은 A 씨에게 전화해 사건 영상을 지워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A 씨는 "제가 '왜 지워야 하느냐, 남한테 안 보여주면 된다'라고 완강히 이야기했다"라고 말했다.
A 씨는 합의 다음날 진행된 경찰 조사에서 블랙박스 영상이 없다고 진술했다. 해당 영상을 전송한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퇴장하는 방식으로 파일을 삭제하기도 했다. 검찰은 이를 놓고 이 전 차관이 피해자에게 증거인멸을 교사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이날 공판에서 A 씨에게 경찰에 영상의 존재를 알리지 않고 삭제한 이유를 물었다. A 씨는 "합의도 했고 제게도 리스크가 있는 거라 안 보여주려 했다. 동영상이 없다고 했는데 (경찰이) 보자고 할까 봐 삭제했다"라고 답했다. 이 전 차관의 부탁이 아니냐는 이어진 질문에는 "약간의 작용은 했겠지만 크게 의식하지는 않았다"라고 대답했다. 검찰이 '이 전 차관이 처벌받을까 봐 삭제한 것 아니냐'라고 거듭 캐물었지만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이 전 차관 측은 운전자 폭행 혐의에 대해 심신 미약을, 증거인멸 교사 혐의에 대해서는 증거를 인멸할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 후보로 거론되던 시점이라 영상이 외부에 퍼질 것을 우려했을 뿐 수사를 방해할 의도는 없었다는 설명이다. 피해자가 영상을 지운 것 역시 이 전 차관의 부탁보다 피해자의 자발적 의사에 따른 행동이라고 보고 있다.
이날 변호인은 "증인이 조사받는 동안 이 전 차관의 영상을 지운 이유는 동영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거짓말한 게 탄로 날까 봐 지웠다고 보면 되는 것이냐"라고 물었고 피해자는 "그렇다"라고 했다. 문제의 영상은 피해자의 휴대전화 갤러리에 그대로 보존돼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 전 차관은 변호사로 재직 중이던 2020년 11월 귀갓길에서 택시기사의 목을 움켜잡고 밀치는 등 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사건 이틀 뒤 택시기사에게 합의금 1000만 원을 건네며 폭행 장면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을 삭제해달라고 요구한 혐의도 받는다.
경찰은 당초 피해를 입은 택시기사가 처벌 불원 의사를 밝혀 사건을 내사 종결했다. 그러나 이 전 차관이 차관직에 임명된 뒤 언론 보도가 나오며 재수사가 이뤄졌고, 검찰은 지난해 9월 특정범죄가중법 위반 혐의로 이 전 차관을 재판에 넘겼다. 단순 폭행죄는 반의사불벌죄지만 특정범죄가중법 위반 혐의는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기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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