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행동, 공무원 중립성에 위배" vs "목소리는 낼 수 있어"
전국검사장회의가 열린 11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김오수 검찰총장이 모두발언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남용희 기자 |
[더팩트ㅣ김세정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문재인 정부 임기 한 달을 남겨두고 검찰 수사권 분리 법안을 추진하면서 전면전이 벌어지는 모양새다. 검사들의 집단행동이 적절한지부터 수사 공정성을 의심받으며 파국을 자초했다는 검찰 책임론이 제기된다. 민주당의 수사권 분리 법안이 속도조절과 심사숙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검찰청은 김오수 검찰총장 주재로 전날(11일) 전국 검사장 회의를 열고 검찰 수사권 분리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김오수 총장은 모두발언에서 "만약 검찰 수사기능이 폐지된다면 검찰총장인 저로서는 더 직무를 수행할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총장직을 걸고 배수진을 쳤다.
대검은 회의가 끝난 직후 "국민적 공감대와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지 아니하고 충분한 논의나 구체적 대안도 없이 검찰 수사 기능을 폐지하는 법안이 성급히 추진된다면 피해는 국민들께 돌아갈 것"이라며 "사법정의와 인권보장을 책무로 하는 검찰 존재 의의가 사라진다"고 강조했다. 일선 검사들도 잇따라 검사회의를 열거나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글을 올려 반대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검사들의 집단적 움직임에 물러설 수 없다는 태도다. 고용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11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 입법을 국기기관이 거부하겠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국가공무원은 법이 정한 범위내에서 직분에 충실해야 한다"며 "직무범위와 권한을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려는 검찰의 행태야말로 무소불위 권력을 가졌다고 여기는 반증"이라고 지적했다.
◆ 집단반발 아니라는 검찰…'추윤갈등'부터 이어진 논쟁
법조계 안팎에서는 검사들의 집단행동이 공직자로서 정당한지 문제를 제기한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지난 7일 법사위 박성준 민주당 의원 대신 기획재정위 양향자 무소속 의원을 사보임하자 바로 다음 날부터 내부망 이프로스에 글을 올리고 검사회의와 입장문이 연달아 발표됐다.
이는 검찰이 2016년 세월호 참사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사들을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해 유죄가 확정된 일과도 비교된다. 2006년에는 모 지방검찰청 7급 직원이 노조 결성을 제안하는 글을 내부망에 올렸다가 직위해제된 일도 있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사 출신 대통령이 나오면서 검찰과 권력의 유착 위험이 커진 상황이다. 이 때문에 검찰의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한 일환으로 수사권을 분리하겠다는 움직임을 국회에서 보이는 것"이라며 "국민의 위임을 받은 국회가 법과 제도를 만들면 공무원들은 따라야 하는데 국회를 겁박해서 권한을 계속 지키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왜 견제를 받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열린 인수위 기획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
문재인 정부에서 검사들의 집단반발은 2020년 '추윤갈등' 국면에도 있었다.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총장을 업무에서 배제하자 전국의 검사들은 이프로스에 글을 올리고 성명을 냈다. 이후 윤 총장은 대통령 후보로 직행, 사상 첫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됐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여성가족부는 부처를 폐지한다는데도 소속 공무원들이 반발한다는 것을 듣지 못했다"며 "정부 부처의 권한을 조정하려는 논의 단계부터 반발하는 것은 검사들을 제외하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되려 검찰개혁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알려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도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11일 출근길에서 기자들과 만난 박 장관은 "이번에 검찰총장부터 법무부 검찰국 검사들까지 일사불란하게 공개 대응하는 것을 보면서 좋은 수사, 공정성 있는 수사에 대해서는 왜 목소리를 내거나 대응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며 "문제의 본질은 검찰 수사의 공정성 문제"라고 강조했다. 집단 움직임 이전에 검찰이 수사를 공정하게 했는지 돌이켜봐야 한다는 뜻이다.
다만 검찰은 이번 대국민 여론전이 집단행동의 성격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지검장 회의를 마친 후 브리핑에 나선 김후곤 대구지검장은 "집단반발은 절대 아니다. 일반 국민들도 입법관련 의견을 낸다"며 "우리가 모인 것이 집단반발로 보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입법 과정에서 절차적 문제, 내용 문제에 대해 적정한 의견 개진이 필요하다고 봤다"고 반박했다.
◆ "중립성 확보하겠다"고 했지만…논의 제대로 안 돼
대선이 끝난 후 정치권의 수사권 분리 논의에 검찰이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도 있다. 검찰은 대선 직후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 등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수사에 대대적으로 착수했다. 반면 윤 당선인의 측근이 연루된 사건에는 좀처럼 속도를 못 냈다. 채널A 사건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고, 김건희 여사 연루 의혹이 제기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은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휴대전화 잠금도 못 풀고, 주가조작 사건 수사도 진척이 없다. 산업부에 대한 압수수색은 보복성으로 비치면서 국민들에겐 검찰의 수사나 기소가 선택적이고 불공정하다고 보인다"며 "검찰이 국민 신뢰를 받지 못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검찰도 이같은 비판을 의식한 듯 지난 8일 고검장 회의를 열고 "검찰개혁 논의가 반복되는 이유에 대해 스스로 겸허히 되돌아보고 수사의 공정성과 중립성의 실효적 확보 방안을 신속히 마련해 시행하기로 했다"고 밝혔으나 11일 고검장 회의에서는 논의되지 않았다. 민주당의 수사권 분리 법안이 검찰 수사기능을 폐지하는 것인데 수사를 계속할 수 있어야 공정성과 중립성도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후곤 지검장은 "우리가 문제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개혁과 개선은 끊임없이 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수사권을 분리할 정도까지 공정성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검사장 회의에서 박성진 차장검사, 이정수 서울중앙지검장, 심우정 서울동부지검장이 김오수 검찰총장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남용희 기자 |
◆ "신중한 접근 필요" vs "20년도 더 된 논의"
민주당은 이날 의원총회에서 검찰 수사권 분리 추진을 논의할 방침이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수사권 분리는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인 6대 범죄 수사권을 중대범죄수사청이나 경찰 등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게 핵심이다. 검찰은 공소제기 및 유지와 영장청구 업무를 담당한다. 5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하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어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임기 동안 수사권 법안을 통과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 안착한 뒤 입법 논의가 필요하다는 속도조절론이 나온다. 민변 개혁입법위원장인 김남근 변호사는 "수사기관이 기소도 하고, 공소 유지도 하다 보니까 문제가 있어 전문기관이 따로 만들어져야 하고, 우리나라 검찰이 유독 수사하는 것이 많다는 공감대는 있다"면서도 "다만 시간이 걸리는 문제다. 부패 수사를 하려면 전문 수사기관이 발달해야 하는데 이것이 안 된 상태에서 검찰에 손을 떼라고 하면 어려움이 있다. 여러 정권을 거치면서 계속 추진해야 될 과제라는 생각으로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도 "기본적인 방향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것이 맞다"면서도 "만약 수사권을 경찰에 넘긴다면 경찰 권한도 비대해질 것이고 경찰도 견제해야 한다. 거기에 대한 후속 논의가 안되고 있는 것은 문제다. 조금 더 숙고하고, 신중하게 추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추가입법이나 시행령 등을 통해서 보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서보학 교수는 "검찰개혁 논의는 20년 이상 이어져 왔다"며 신속한 수사권 분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검찰은 국민 신뢰를 받지 못했다. 별도의 전문기관을 설립해서 (수사) 임무를 맡기는 것이 맞다고 본다"며 "윤 당선인이 취임 후 검찰개혁 법안을 국회에서 의결한다면 거부권 행사가 예상되는데 그전에 검찰권 남용을 예방하기 위한 법안을 통과시킬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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