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소야대 가로막힌 수사지휘권 폐지…훈령 개정 '만지작'
입력: 2022.04.03 00:00 / 수정: 2022.04.03 00:00

'우회로' 선택해 사문화 가능성…편법 논란 예상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회의실에서 열린 경제2분과 국토교통부 업무보고에 방문해 관계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회의실에서 열린 경제2분과 국토교통부 업무보고에 방문해 관계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더팩트ㅣ김세정 기자] 대선 과정부터 논란이 된 수사지휘권 폐지 등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검찰 공약은 '여소야대' 벽을 넘어야 한다. 윤 당선인 측은 야당을 설득하기보다는 대통령령이나 훈령 개정 등 우회로를 선택할 것으로 보이지만 편법 논란도 예상된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 및 검찰 독립 예산권 편성, 공수처법 개정 등 윤 당선인이 발표한 사법 공약을 추진 중이다.

장관 수사지휘권 폐지가 가장 큰 화두다. 검찰청법 8조에는 '법무부 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고 규정한다.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기 위해선 검찰청법을 개정해야 하지만,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172석을 차지하고 있는 국회 상황에서 통과는 어려울 전망이다. 수사지휘권 폐지에 박범계 법무부 장관도 여러 차례 반대 의사를 표명해왔고, 민주당도 반대 입장이기 때문에 20대 국회에서는 폐지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시각이다.

인수위는 법 개정 대신 훈령 개정 카드를 꺼내 들고 있다. 수사지휘권 문제로 법무부의 업무보고를 취소시킬 정도로 핵심 가치로 내세우는 만큼 '우회로'를 택하더라도 물러설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렸다. 인수위 정무사법행정분과 간사를 맡고 있는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30일 "법을 개정하지 않더라도 훈령을 개정할 수 있다. 당선인의 의지가 강하다"고 밝혔다.

훈령은 국회 동의 없이 개정할 수 있다. 상급기관의 훈령은 하급기관 활동에는 구속력이 있지만, 대외적인 법규 성질을 가지고 있지 않아 상위법과 충돌 문제가 없다. 훈령으로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 요건을 엄격하게 해 사실상 사문화시킬 것이라는 분석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어떠한 경우에만 수사지휘권을 발동할 수 있다'는 식으로 절차와 요건을 훈령에 넣으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훈령으로 수사지휘권을 무력화한다면 편법 논란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5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훈령에다가 여러 요건을 넣으면) 사실상 수사지휘권 행사가 어렵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전망과 계획을 하고 있는 것 같으나 문제가 있다"며 "훈령을 통해 법률상 제도나 시스템을 무력화시키는, 법률 위임의 원칙이라는 헌법상 큰 원칙을 훼손시킬 수 있는 부분"이라고 언급했다. 하위법이 상위법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약간의 절차나 요건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지만, 요건을 까다롭게 해서 사실상 행사를 못 하게 한다는 것은 '장관이 수사지휘를 할 수 있다'는 검찰청법의 취지에 반할 수 있다"며 "편법으로 훈령을 만들 필요 없이 대통령이 '수사지휘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해결될 일"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마련된 제20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대회의실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관계자들이 인수위와 간담회를 갖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마련된 제20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대회의실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관계자들이 인수위와 간담회를 갖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훈령을 만들지 않아도 유명무실해질 가능성도 있다. 수사지휘권은 1949년 검찰청법에 규정된 이래 56년 만에서야 처음 발동됐다. 지금까지 수사지휘권은 민주당 집권 때 판사 출신 장관이 4차례 발동했다. 국민의힘 계열 정부, 검사 출신 장관은 발동한 적이 없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훈령으로 수사지휘권을 사실상 폐지시킨다면 논란이 많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당선인의 의지가 수사지휘권을 폐지한다는 것인데 새정부에서 임명될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행사하지는 않을 것이라서 사문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검찰에 독립예산 편성권도 논란이 불가피하다. 현행 정부조직법에 따라 검찰청의 예산편성권한은 법무부에 있다. 정부조직법을 개정해야 하지만 인수위는 대통령령인 직제규정 변경을 통해 가능하다는 해석을 내놨다.

공수처법 24조 폐지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많다. 이창현 교수는 "(공수처법 24조는 우회적으로) 건드릴 수 없다. 우선 수사권한을 공수처에 준다고 했는데 하위 법령으로 그 우선권을 제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국회를 통해 공수처법 자체를 바꿔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위법령으로 통제하려 한다면 헌법재판소로 갈 여지도 있다. 김필성 변호사는 "공수처법 자체를 고치지 않고는 어려울 것"이라며 "훈령이나 대통령령 등으로 기관의 권한을 제한한다면 권한쟁의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6대 범죄로 한정된 검찰 직접 수사범위 확대는 대통령령으로 개정할 수 있다. 다만 인수위는 '검찰권 강화'라는 비판을 의식한 듯 지난달 31일 "검사 직접 수사개시는 검사가 처음부터 수사해야 하는 6대범죄로 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인수위 입장에 변함 없다"고 강조했다.


sejungki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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