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성남도개공 사장 "이재명 지시라길래 사표 냈다"
입력: 2022.04.02 00:00 / 수정: 2022.04.02 00:00

'사기사건 연루로 사퇴' 고 유한기 진술에 "핑계" 반박

황모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이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 로비 특혜 의혹 사건 1심 18차 공판에 증인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황모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이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 로비 특혜 의혹 사건 1심 18차 공판에 증인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대장동 의혹'의 핵심 증인인 초대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이 대형 건설사를 컨소시엄에 넣자고 주장했다가 사직서 제출을 강요당했다고 증언했다. 자신의 사직은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지시했다고도 주장했지만 구체적인 근거를 대지는 못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이준철 부장판사)는 1일 유동규 전 성남도개공 기획본부장과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 남욱 변호사 등의 속행 공판을 열었다.

이날 공판에는 초대 성남도개공 사장을 지낸 황모 씨가 증인으로 나왔다. 황 씨는 대장동 개발사업 당시 자신은 '바지사장'에 불과했고 유 전 본부장이 성남시를 배경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증언했다. 황 씨는 "(유 전 본부장이) 인사 전횡을 하고 출·퇴근도 마음대로 했다. 시설관리공단 이사장이 주재하는 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다"며 공단과 공사가 합병된 뒤에도 비슷한 일이 계속됐다고 말했다. 사장으로서 유 전 본부장에 조치를 취할 수 없었냐는 검사의 물음에 "어차피 유 전 본부장 본인의 뜻이 아니라 엄청난 권한을 지휘부에서, 시청 쪽에서 줬으니 저러지 않을까 생각했다"라고 대답했다. 지휘부를 구체적으로 묻자 "성남시장이 됐건, 정책실장이 됐건"이라고 답했다.

2013년 9월 취임한 황 씨는 임기 3년에 한참 못 미치는 2014년 연말~2015년 연초 무렵부터 사직서 제출을 강요받았다고 밝혔다. 지금은 고인이 된 유한기 당시 성남도개공 개발사업본부장이 '충성을 맹세하는 의미에서 시청에 사직서를 내라'라고 했다는 것이다. 황 씨는 "말을 잘 따르겠다, 사업을 잘하겠다는 의미였다"라고 설명했다. 이듬해 2월 공모지침서 공고 직전 황 씨는 유한기 전 본부장이 출력한 사직서에 서명을 하게 된다. 황 씨는 "공모지침서가 당장 나가야 하는데 대형 건설사를 컨소시엄에 넣으라 한 게 이 전 시장 지시와 반대되니 제가 걸리적거렸던 것"이라며 "(유한기 전 본부장이) 시장님 지시고, 다 얘기된 거니 사표를 내라고 해서 (사직서에) 사인을 해줬다"라고 말했다. 성남시로서는 화천 대유와 같은 민간 사업자에게 이익을 몰아줘야 하는데, 대형 건설사를 컨소시엄에 넣자는 황 씨의 의견이 거슬려 사직을 종용했다는 주장이다.

대장동 재판이 한창 진행 중인 서울중앙지법. /이새롬 기자
대장동 재판이 한창 진행 중인 서울중앙지법. /이새롬 기자

이어진 유 전 본부장 측 반대신문에서 변호인이 품은 의문은 크게 두 가지였다. 유 전 본부장의 전횡부터 사표 제출 과정에서 임명권자인 이 전 시장에게 직접 건의한 적 있냐는 것이다. 황 씨는 "(이 전 시장에게 관련 보고를) 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라고 토로했다. 이 전 시장이 오지 말라고 했냐는 물음에 "그건 아니지만 입사할 때부터 전횡이 있었어서 가서 따지고 그럴게 아니었다. 사기업에 있을 때도 오너가 얘기하면 다 들었다"라고 말했다. 재판부가 다시 자초지종을 묻자 "여러 정황을 봤을 때 유 전 본부장이 실세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시장님께 그런 얘기를 할 수도 없었다"며 "조직이 희한하다. 정책실장도 차상위가 컷 해서 만나지 못한다"라고 해명했다. 수직적인 분위기 때문에 지자체장과 접촉하기 힘들었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황 씨는 사직서 제출 역시 이 전 시장에게 직접 지시받거나, 만나서 낸 건 아니라고 밝혔다. 사직서에 서명을 한 뒤에도 이 같은 일을 이 전 시장 측에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또 다른 의문점은 유한기 전 본부장의 생전 진술이다. 유한기 전 본부장은 수사기관에서 '황 씨가 사기사건에 연루된 사실을 알아 황 씨의 명예를 고려해 사퇴를 권했다'라고 말했다. 황 씨는 당시 사기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었다면서도 "아니다. (유한기 전 본부장이) 핑계로 한 이야기라 생각된다"라고 선을 그었다. 사기 사건으로 기소돼 유죄가 확정된 것에도 "사기 사건이 아니다. 사기 친 사람을 도와주려다 아직 돈을 못 받고 있다"라고 해명했다. 유한기 전 본부장은 당시 자신의 연루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라며 "그런 호재가 있으면 (유한기 전 본부장이) 사퇴 종용을 하면서 한마디라도 하지 않았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이 전 시장과 정진상 전 성남시 정책실장은 황 씨에 대한 사퇴 종용에 연루된 혐의로 고발당했으나 최근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황 씨는 이날 공판에서 이와 관련해 "녹취록이 있는데 왜 증거가 없다고 하는가. 말도 안 된다"라고 했다. 황 씨에게 사퇴를 요구한 인물로 지목된 유한기 전 본부장은 지난해 12월 검찰 수사를 받던 중 극단적 선택을 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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