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도 못 끝낸 양승태·임종헌, 결론은 차기 정권으로
입력: 2022.02.22 00:00 / 수정: 2022.02.22 00:00

전례 없는 '녹취 재판'·재판부 기피 신청에 '느림보'

사법농단 의혹으로 2019년 2월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사진) 사건 1심 결론이 좀처럼 나오지 못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사법농단' 의혹으로 2019년 2월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사진) 사건 1심 결론이 좀처럼 나오지 못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사법농단' 의혹으로 기소된 전·현직 법관들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속속 나왔지만 '키맨'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1심 재판도 마무리하지 못했다. 2017년 문재인 정권이 출범한 해 의혹이 제기됐지만, 1심 결론은 차기 정권에서야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재판 개입과 판사 연구모임 와해 등을 지휘한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1심 재판은 2019년 3월 25일부터 약 3년째 진행 중이다. 오는 23일에는 195차 공판이 열릴 전망이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재판 장기화는 양 전 대법원장의 폐 수술과 독특한 공판 갱신 절차가 결정적이었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20년 초 폐암 의심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폐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주 1~2회 진행되던 재판은 2019년 12월부터 약 두 달간 중단됐다.

지난해 2월 법관 정기 인사로 재판부 구성원이 바뀌면서 '재판 시계'는 더욱 늦어졌다. 양 전 대법원장 측에서 앞서 진행된 증인신문 녹취 파일을 모두 재생하는 방식으로 공판 갱신 절차를 밟을 것을 요구했고 새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후 재판부와 검사, 피고인과 변호인 모두 법정에 앉아 하루종일 녹취 파일을 듣는 전례 없는 '녹취 재판'이 약 7개월 동안 이어졌다. 같은 해 11월 증인신문이 재개되면서 본안 심리도 다시 시작됐다.

양 전 대법원장 사건은 지난해 법관 정기 인사로 재판부 구성원이 바뀌기 전만 해도 '연중 1심 마무리'를 예상했다. 재판부 교체 뒤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새 재판부를 비롯해 검찰·변호인 등 소송 당사자 모두 숨 가쁘게 달리고 있는 만큼, 올해 상반기를 넘겨 1심이 마무리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기소 '1호' 임종헌, 1심 판결은 '꼴찌' 전망

핵심인물인 임 전 차장은 의혹 연루자 가운데 가장 먼저 기소됐다. 2018년 12월 10일 시작된 임 전 차장의 1심 재판은 지난해 12월 14일 126차 공판을 마지막으로 멈춘 상태다.

3년이 조금 넘는 1심 재판 과정에서 임 전 차장은 두 차례 재판부 기피신청을 냈다. 사건을 담당했던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 재판장 윤종섭 부장판사의 공정성을 문제 삼았다. 과거 '사법농단 연루자를 단죄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의혹이 이유였다. 2019년 6월 첫 기피 신청을 냈지만 이듬해 1월 대법원에서 최종 기각됐다. 지난해 8월 두 번째 기피 신청서를 냈지만 재판부는 소송 지연 목적이라며 기각했다. 이에 임 전 차장은 항고했고, 서울고법이 재판부의 기각 결정을 파기환송해 서울중앙지법은 임 전 차장의 기피 사유를 다시 살폈다.

형사소송법상 재판부 기피 신청이 접수되면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재판이 중단된다. 임 전 차장의 재판은 첫 기피 신청 때 약 7개월 동안 중단됐다. 두 번째 기피 신청 때도 두 달 넘게 재판이 진행되지 못했다.

그 사이 재판장 윤 부장판사를 비롯한 배석 판사 2명 모두 서울서부지법 등으로 전보됐다. 기피 대상인 법관이 전보됨에 따라 임 전 차장도 기피신청을 취하했다. 재판이 재개된다고 해도 얼마나 속도를 낼지는 미지수다. 관련 재판이 7개월 동안 공판 갱신 절차를 밟은 만큼 임 전 차장 측도 새 재판부에 비슷한 요구를 할 가능성이 있다. 가장 먼저 기소됐지만 1심 결론은 가장 늦게 나올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기피 대상인 법관이 전보됨에 따라 임종헌(사진)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최근 기피신청을 취하했다./이덕인 기자
기피 대상인 법관이 전보됨에 따라 임종헌(사진)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최근 기피신청을 취하했다./이덕인 기자

◆정석 형사재판인가, 소송지연인가

사법농단 재판을 바라보는 법조계 시선은 복잡하다. 이들의 재판이 장기화된 건 불법도, 편법도 아니다. 양 전 대법원장 사건에서 7개월 동안 진행된 '녹취 재판'은 형사소송법 및 규칙에 명시된 절차다. 그러나 이 절차를 양 전 대법원장 사건처럼 '충실히' 수행하는 경우는 드물다. 통상 공판 갱신 절차는 두세 기일을 넘지 않게 간략히 진행되고, 한 기일만에 끝나는 경우도 많다.

임 전 차장이 두 차례 쓴 기피 신청 역시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제도다. 인용률은 1% 안팎이라 쉽게 꺼내기는 어려운 카드다. 상황이 이런 만큼 일각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 등이 소송 지연을 위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반대로 이들의 재판이 형사재판의 정석이라는 시각도 있다. 재판 편의 등을 이유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제도를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공판중심주의에 입각해 재판이 진행되는 모습은 바람직하게 봐야 한다. 모든 재판 당사자가 이런 재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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