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대·20대 국회 때 이미 도마에…대법은 모두 '시민 손'
2020년 11월 2021년도 예산안과 관련해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의 자리에 중 특활비 문서검증 관련 예상답변 문서가 놓여 있다. /남윤호 기자 |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청와대·검찰의 특수활동비 지출 내역을 공개하라는 판결이 잇달아 나오면서 이목을 끌고 있다. 다만 '특활비'를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은 20여 년 전에도 있었다. 대법원은 2004년 15대 국회 특활비를 공개하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고, 이러한 기조는 최근 판결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22년 전인 2000년 5월, 참여연대는 전년도 국회 예비금과 위원회 활동비 지출내역 등을 공개해달라며 정보공개 청구를 했으나 일방적으로 요약된 정리본만 받았다. 참여연대는 내용을 구체화해 다시 청구했으나, 아예 '정보 비공개 결정'이라는 회신이 왔다. 이에 참여연대는 국회의 정보공개 거부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법원에 소송을 냈다.
2003년 7월 법원은 참여연대의 손을 들었다. 당시 법원은 정보공개법상 '공개될 경우 국가안전보장·국방·통일·외교관계 등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할 우려가 있는 정보'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하려면 "비공개로 보호되는 이익이 국민의 알 권리와 국정에 대한 국민의 참여 및 국정운영의 투명성을 희생해야 할 정도로 커야 한다"라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특활비에 대해 "이를 희생하면서 비공개 정보로 해야 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라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이듬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시민단체 지난한 소송…'성완종 리스트'가 불러온 특활비 논란
국회 특활비는 10여 년 뒤 다시 소송에 휘말렸다. 참여연대는 2015년 5월 국회사무처에 2011~2013년 특수활동비 세부지출내역 정보공개를 청구했는데, 국회는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경비로서 국회 본연의 의정활동이 위축돼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비공개결정을 했다. 사건을 받아든 법원은 "기밀유지가 필요하다고 볼 만한 내용도 없고, 공개해도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국회 측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10여 년 사이 특활비를 둘러싼 불미스러운 사건도 터졌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연루 의혹을 받았던 홍준표 당시 경남지사와 '입법 로비' 의혹을 받았던 신계륜 옛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의혹의 대상인 금품의 출처를 "특활비"라고 해명하면서 특활비 유용 논란이 불거졌다. 법원은 "특활비는 구체적 내역 심사 없이 총액이 편성되고 지출 증빙도 생략할 수 있어서 편성부터 집행까지 아무런 통제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고, 실제로 국회 특활비가 부당하게 집행된 사례가 발견돼 문제의식이 대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활동은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것이 아닌 한 원칙적으로 국민에게 공개해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 판결 역시 2018년 5월 대법에서 확정됐다.
법원은 최근 영부인 의전비용을 비롯한 청와대 특활비 관련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더팩트DB |
5년이 지난 올해, 검찰과 청와대 특활비에 대한 법원의 판단도 같았다. 법원은 지난달 11일 시민단체 '세금도둑 잡아라'가 검찰총장·서울중앙지검장을 상대로 특활비 등 정보공개 거부 처분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법원은 2017년 1월~2019년 9월 검찰총장·서울중앙지검장이 지출한 특활비·특정업무경비·업무추진비의 집행정보와 지출 증빙서류를 제3자의 사생활과 관련한 부분을 제외하고 모두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국회가 의정활동 위축을 주장했다면 검찰은 수사기밀 보호를 항변했다. 그러나 법원은 "수사과정에서 소요되는 경비를 공개한다고 해서 수사활동 기밀이 유출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배척했다. 특정업무경비와 업무추진비에 대해서도 식대·행사 비용이 주를 이룬다며 "수사 업무에 직접적 장애를 줄 고도의 개연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라고 봤다.
한국납세자연맹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도 법원은 시민의 손을 들었다. 연맹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 뒤 지금까지의 특수활동비 지출 내용 △영부인 의전 비용 △청와대 내 워크숍 도시락 가격 및 구매 업체 관련 정보 공개를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법원은 개인 정보·외국인 정보·의사결정 과정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할 우려가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다. 이밖에 정보공개법에는 공공기관 정보는 공개 대상이라는 전제와 함께 '다른 법률 또는 법률이 위임한 명령'에 의해 비공개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이 있는데, 대통령비서실이 법률 등이 아닌 내부 훈령을 근거로 비공개 결정을 한 것은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대통령기록물 지정 대상이라 공개할 수 없다는 주장도 적법한 비공개 사유가 아니라고 봤다.
'국민 알 권리 보장과 투명한 운영을 위해 공개하라'는 일관된 판결이 20여 년째 나오고 있지만 최근 판결이 상급심에서도 반드시 유지된다는 보장은 없다. 한 중견 변호사는 "청와대와 검찰은 각각 국가안보와 범죄 수사를 책임지는 기관으로, 입법·대민 활동을 하는 국회와 달리 봐야 한다"며 "불법 유용 논란이 터지지 않는 이상 정보 공개보다 보호의 필요성이 더 크다는 판단이 (상급심에서) 나올 가능성도 있다"라고 전망했다. 검찰은 법무부 지휘 아래 항소했고, 청와대는 항소 기한이 아직 남았다. 청와대가 항소한다면 판결과 상관없이 특활비 정보는 영영 공개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문 대통령 임기가 끝나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되면 비공개 대상이 된다. 박근혜 청와대 특활비 공개 소송도 1심에서 승소했지만 이 같은 이유로 상급심에서 각하됐다.
ilraoh@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