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아빠의 엄마가 됐다…아무도 돕지않는 '영케어러'
입력: 2022.01.30 00:00 / 수정: 2022.02.06 10:58

중3 때 쓰러진 아버지, 조현병까지…정부 지원 전무한 상태

지난달 19일 서울 관악구의 한 음악 연습실에서 음악자 김울(29) 씨를 만나 인터뷰를 나눴다. /정용석 기자
지난달 19일 서울 관악구의 한 음악 연습실에서 음악자 김울(29) 씨를 만나 인터뷰를 나눴다. /정용석 기자

[더팩트ㅣ정용석 기자] 탈출하듯 상경해 서울살이 6년 차에 접어든 2018년 어느 날.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졌다는 병원의 연락이 왔다.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며 홀로서기도 힘들었던 26살 청년은 그날부터 부모의 보호자가 됐다.

"아버지를 책임져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막했어요. 아무도 보호자가 되는 법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질병을 앓고 있는 가족을 돌보는 청년, '영 케어러'(Young Carer) 김율(29) 씨 얘기다.

서울 관악구의 한 지하 연습실에서 <더팩트>와 만난 김 씨는 15살 때부터 4년 동안 아버지와 단둘이 지냈다. 중학교 3학년 때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버지는 일터에 나가지 못했다. 가스와 전기가 끊겼고, 급식비가 밀리기 시작했다. 용돈 생각은 사치였다.

중학교 3학년이 가장이 됐다. 김 씨는 학교에서 배식 봉사를 하며 끼니를 떼웠다. 담임선생님의 도움으로 매월 20만 원, 한 장학재단의 지원을 받아 생활비로 썼다. 방학이 오면 결식아동 쿠폰으로 산 라면을 아버지와 나눠 먹으며 굶주림을 달랬다.

가장의 무게를 오래 견디진 못했다. 아버지의 폭력이 시작됐다. 김 씨에게 집안 물건을 던지고 폭언을 했다. 아버지를 돌봐주는 주변 어른도 기관도 없었다. 우울감과 무기력증이 찾아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뭘 하고 싶냐고들 묻잖아요. 다들 대학 진학과 여행 생각에 들뜬 친구들과 달리 저는 집을 탈출하는 게 꿈이었어요."

김 씨는 20살이 된 어느 날 가방 하나를 들고 서울로 올라왔다.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어도 마음은 편했다. 때리는 아버지도, 굶는 일도 없었다.

지난달 19일 서울 관악구의 한 음악 연습실에서 만난 음악가 김율(29) 씨. /정용석 기자
지난달 19일 서울 관악구의 한 음악 연습실에서 만난 음악가 김율(29) 씨. /정용석 기자

하지만 김 씨가 폭력적인 아버지를 용서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랫동안 앓아왔던 아버지의 병명이 추가로 발견됐기 때문이다.

조현병. 김 씨를 향한 폭력도, 집이 쓰레기장이 되도록 방치했던 것도 모두 알고보니 이 때문이었다.

"어릴 때는 판단이 서지 않아 아파서 저런 행동을 했다고 생각지 못했어요. 병명을 듣고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사라지기 시작했죠."

영 케어러들이 겪는 문제로 금전적 어려움을 우선 꼽을 수 있지만, 김 씨는 고립감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갑자기 미혼모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보호자가 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는데 갑자기 제가 부모의 부모가 됐으니까요."

김 씨는 아버지의 간병에 대해 논의할 제도적 창구나 소통할 사람을 찾기가 힘들었다. 요양병원을 찾는 법부터 간병을 위한 지원책까지 혼자서 알아봐야 했다. 누구 하나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또래 친구들이 피보호자일 때 부모의 보호자가 됐다.

김 씨는 "노인성 질환에 대한 정보 등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도움이 컸을 것"이라며 "영 케어러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전문상담원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원 규모 자체도 문제다. 정부는 2022년까지 간호·간병통합 10만 병상을 확충하겠다고 했지만, 지난해 8월 기준 6만여 병상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공보험인 노인장기요양보장제도는 부모가 65세 이상인 경우만 지원받을 수 있어 청년 간병인들에겐 요원한 제도다.

그간 받았던 스트레스 때문일까. 김 씨는 5개월 전 갑상샘암 판정을 받아 투병 중이다.

"아버지의 보호자가 되려면 나부터 살아야죠. 재발의 두려움이 있지만, 건강을 잘 챙기려 합니다."

김율 씨가 자작곡 이 세상의 모든 나에게를 부르는 장면. /유튜브 채널 김율의 시선 갈무리
김율 씨가 자작곡 '이 세상의 모든 나에게'를 부르는 장면. /유튜브 채널 '김율의 시선' 갈무리

문제는 국가는 누가 영 케어러고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모른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영 케어러에 대한 실태조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상이 불분명하니 지원도 어렵다.

이들에 대한 법적 정의도 명확치 않다. 영국, 호주, 일본 등 선진국은 영 케어러들에 대한 법적 정의를 마련하고 보조금 등을 지원하고 있다.

그나마 최근 국회에서 영 케어러 실태조사 및 지원을 명문화하기 위한 ‘청소년복지 지원법’ 개정안이 발의한 점이 유일한 기대사항이다.

이제야 지원에 나서는 지자체도 차츰 생겨나고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는 '영케어러 케어링 지원사업'을 시범 실시했다. 부모의 간병비 뿐만 아니라 영 케어러의 자기계발 비용도 지원한다.

아직은 열악한 실태지만 김 씨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꿈이 있어서다.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와 음악 활동을 하고 싶었다는 그는 최근 본인이 작사·작곡한 음반을 냈다. 곡에는 아버지를 보살피며 느꼈던 애환와 그와 같은 영 케어러로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위로가 담겼다.

"너의 약한 모습 그대로 존재해도 된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구나. 슬플 때는 울고 화가 나면 소리 쳐. 충분히 아파해도 괜찮아 (중략) 용서하는 일도 화해하는 그 날도 다시 받아들이는 순간도. 너의 마음이 허락하는 딱 그만큼만"(김율 '이 세상의 모든 나에게')

yo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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