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사건의 형사화" 지나친 범죄화 우려도
김건희(사진) 씨의 '허위 이력'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일각에서는 김 씨에게 사기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남윤호 기자 |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배우자 김건희 씨의 '허위 이력' 의혹이 불거지면서 사기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사기죄란 사람을 기망해 재산상 이익을 취한 범죄인데, 김 씨가 허위 이력으로 고용주를 기망해 급여를 받았다는 시각이다.
통상 사기죄라 하면 큰 사업을 한다며 화려한 언변으로 사람을 홀려 거액을 뜯어내는 '사기꾼'을 떠올리기 쉽지만 법정에 서는 '사기죄 피고인'들은 꽤 다채롭다. 이에 따라 법조계에서는 김 씨에게도 사기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처벌이 가능할지는 의견이 나뉜다.
◆'신비의 세계' 무속 신앙, 때로는 사기?
사기죄 사건에서는 무속인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엉터리 굿 등으로 재산을 편취했다는 것이다. 한 판결문에서는 굿을 "논리의 범주에 있다기보다 영혼·귀신 등 정신적이고 신비적인 세계"라고 봤다. 굿은 효과가 신통해도 논리적으로 근거를 댈 수 없다. 이 '신비의 세계'를 논리적인 법원은 어떻게 볼까? 사람의 신체에 위해를 가하는 굿을 했다면 현대 사회에서 절대 용인할 수 없지만 모호한 경우도 있다. A 씨는 임신이 안 된다는 고객에게 '고환이 하나밖에 없는 사람도 임신을 했다. 삼신할머니에게 비는 굿을 해야 한다'며 2000만 원을 지불하라고 하는 등 3억 원 상당의 굿값을 요구했다. B 씨는 가족의 정신질환을 상담하는 고객에게 액운을 쫓아야 한다며 기도비로 2억 가까운 금액을 요구했다.
언뜻 보기에 모두 허무맹랑한 말이지만 판결은 엇갈렸다. 최종적으로 A 씨는 무죄, B 씨는 유죄다. A 씨는 신내림을 받아 무속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고 고객인 피해자가 굿으로 마음의 위안을 받은 점 등을 이유로 혐의를 벗었다. 반면 B 씨는 신내림을 받지 않았다. 액운을 쫓는다는 행위도 골프공에 이름을 적어 골프채로 치는 것이었다. 하급심은 B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대법원은 "전통적 관습에 의한 무속행위나 통상적인 종교행위의 형태라고 볼 수 없다"라며 파기 환송했다. 피해자가 정신적 위안을 받았더라도 B 씨에게 기망당한 결과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법원은 △행위자가 신내림을 받은 전업 무속인인지 △굿 등이 전통적인 관습·통상적인 종교 행위의 범주에 속하는지를 무속 행위와 사기를 구분하는 지표로 삼고 있다.
◆돈 빌려줬는데 못 갚은 연인을 사기죄로 고소하면
연인·부부도 사기죄 피고인과 피해자로 법원에 온다. 대부분 연인의 부탁으로 거액을 빌려줬으나 돌려받지 못해 재판까지 오는 경우다. 관계 특성상 사기죄 성립요건인 기망과 재산 처분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결혼했다면 더 까다롭다. 사기죄는 친족상도례(친족 사이 발생한 재산범죄에 형을 면하는 제도) 적용 대상이다. C 씨는 아버지가 사망해 상속 관련 소송을 해야 한다며 사실혼 관계의 피해자에게 신용카드를 받아썼다. C 씨의 아버지는 사실 생존해 있었고, 소송비로 쓴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1·2심 모두 이를 인정했지만 친족상도례를 적용해 사기죄를 무죄로 판단했다. 대법은 혼인신고를 했어도 진실된 부부로 볼 수 없다면 친족상도례 적용 대상이 아니라 사기죄로 처벌할 수 있다며 원심을 뒤집었다. C 씨가 애초 금전 편취를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접근해 혼인신고를 한 점, 동거할 집과 함께 쓸 가구를 마련하지 않은 점 등 세부적 상황을 살폈다.
누가 봐도 부당하게 거액을 뜯겼어도 연인 사이의 기망 의사를 입증하기란 쉽지 않다. 공중보건의 D 씨는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만난 여성을 마구 폭행하고 1억이 넘는 돈을 편취한 혐의로 기소됐다. 돈을 빌리면서 '월 1000만 원은 벌 것'이라며 여성을 안심시켰다. 여성이 차 사고를 내 자신의 팔을 다치게 한 점을 들어 '의사 팔을 다치게 한 건 몇천억으로도 보상이 안 된다'며 합리화했다. D 씨는 평소 의사 직업을 자랑하며 피해자와 결혼을 전제로 사귄다고 밝혀 왔으나 교제 기간 중 결혼정보업체에서 다른 여성을 소개받기도 했다. 검찰은 D 씨에게 피해자와 결혼할 것처럼 속여 재산을 편취했다며 사기 혐의를 적용했다. 1심은 폭행 관련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사기죄는 무죄로 봤다. '결혼할 것처럼 속였다'는 공소사실에 "결혼을 전제로 만나도 배우자에 적합한지 알아갈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망으로 평가할 수 없다"라고 판단했다. 나머지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D 씨는 항소해 2심 재판을 받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2015년을 기점으로 사기범이 절도범보다 많아졌다. /이새롬 기자 |
◆허위 이력도 기망이 될 수 있다
허위 이력으로 취업해 사기죄로 처벌받은 판례도 있다. E 씨는 미용학원에 허위 이력이 포함된 이력서를 내 취업했다. 재판부는 E 씨의 사기 혐의를 인정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대법은 지난해 4월 한 회사에 허위 이력을 기재한 서류로 취업한 F 씨에 대해 사기 혐의를 인정하고 실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 씨에게도 사기 혐의를 적용할 만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허위 이력서를 기망, 이에 대한 대가를 재산상 손해로 본다면 사기죄 성립이 가능하다. 최근 사기죄 처벌 범위가 넓어지고 유사 판례도 나와 사기죄 성립 가능성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따져볼 점은 있다. 김 씨가 기재한 허위 이력과 급여 지급 사이 인과관계다. 예컨대 석사학위 소지자만을 뽑는 채용에 없는 학위를 허위로 기재해 채용되고 급여를 받았다면 사기죄의 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석사학위는 사실이지만 학위를 딴 학교 정보에 오류가 있다면 인과성이 다소 약하다. 허위로 기재한 이력이 고용주가 요구한 능력과 동떨어진다면 인과성도 약해진다. 강태근 변호사(법률사무소 신록)는 "허위 이력으로 채용 업무를 방해했다는 인과성은 있지만, 급여를 준 행위는 노동에 따른 대가라 허위 이력과 직접적 인과성은 부족하다"라고 짚었다. 유사 판례 역시 '네일아트 강사' 모집에 네일아트 국가자격증 강의 경력이 있다고 속인 사건이다. 대법 판례에도 '회사가 요구하는' 소방기술 지원 업무 관련 경력이 풍부한 것처럼 행동했다고 명시돼 있다.
◆사기꾼이 많은 걸까 사기죄 피고인이 많은 걸까
안정빈 경남대 법대 교수의 논문 '우리 형법상 사기죄 규정 해석 및 적용과정상의 문제점과 한계'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2015년을 기점으로 사기범이 절도범보다 많아졌다. 한국이 '사기 공화국'이 된 것일까? 일각에서는 처벌 범위가 확장돼 과도한 범죄화를 불러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중견 변호사는 "과거에는 고객이 판단한 무속인의 능력치를 이제 법원이 나서서 판단하고 있다"며 "우리 사회에서 적당히 넘어가는 문화가 사라져 간다. 사기꾼이 많아진 건지, 사기죄 피고인이 많아진 건지 구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하진규 변호사(법률사무소 파운더스)는 "민사사건의 형사화가 우려된다. 빌린 돈을 받지 못하면 대여금·약정금 청구소송 등 민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데 사기죄 처벌 범위가 넓어지니 기망에 따른 재산상 손해라며 형사 고소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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