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소송 지연작전' 대법관에 접근한 박근혜정부
입력: 2022.01.08 00:00 / 수정: 2022.01.08 00:00
박근혜(사진) 정부 시절 외교부에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지연을 위해 사법부를 개인적으로 접촉해야 한다는 방안을 검토한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국·과장이 대법관을 직접 만났다는 법정 증언이 나왔다. /이새롬 기자
박근혜(사진) 정부 시절 외교부에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지연을 위해 사법부를 개인적으로 접촉해야 한다는 방안을 검토한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국·과장이 대법관을 직접 만났다는 법정 증언이 나왔다. /이새롬 기자

'사법부 개인적 접촉' 검토…실제 만났지만 말은 못 꺼내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박근혜 정부 시절 외교부에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지연을 위해 사법부를 개인적으로 접촉할 방안을 검토한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국·과장이 대법관을 직접 만났다는 법정 증언이 나왔다. 당시 과장은 강제징용건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고 말했으나, 국장으로서는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정부 입장을 설명할 의도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이종민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속행 공판에는 2013년 외교부 국제법률국 국제법규과장으로 재직한 이모 씨가 증인으로 나왔다.

이 전 과장이 국제법규과장으로 막 부임한 무렵 외교부의 현안은 강제징용 사건 재상고심이었다. 일본 전범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취지로 파기 환송되자, 한·일 청구권 협정의 효력을 유지해야 했던 박근혜 정부가 대법 판결을 번복하기 위해 재판에 개입했다는 것이 양 전 대법원장 등의 공소사실이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 역시 이 사건을 '재판 거래' 수단으로 삼아 정부와 접촉했다고 보고 있다.

재판에서 제시된 문건에는 외교부 역시 피해자의 손을 든 대법 판결을 뒤집으려 한 정황이 나온다. 2013년 8월 자 '강제징용 법률전문가 간담회 결과보고'에는 "대법 판결 확정시 예상되는 외교적 문제점을 적절한 채널을 통해 알리고 신중한 판결을 유도할 노력이 필요함", "현실적 대응방안 마련에 최소한 1년이 요구되는바 조기 선고되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 있음", "대법관 직접 접촉이 어려울 경우 세미나 등 간접적 방법으로 정부 입장 전달 시도" 등의 방안이 담겼다.

검찰이 주목한 부분은 '대법관 직접 접촉이 어려울 경우'라는 문구다. 대법관을 직접 만나 정부 입장을 전달하는 게 외교부의 1차적 목표였다는 의심이다. 대법관을 어떻게 접촉하려 했냐는 검사의 물음에 이 전 과장은 "모르겠다"라고 답했다. 방법은 곧 나왔다. 이 전 과장은 문건이 쓰인 무렵 지도교수였던 A 대법관에게 '인사를 드리러' 갔다. 함께 가자는 이도 있었다. 당시 국제법률국장 강모 씨였다.

검사: 강 전 국장은 A 대법관과 개인적 인연이 전혀 없는데도 증인에게 같이 가자고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전 과장: 국장으로서 대법관에게 그냥 인사드린다는 차원이었을 겁니다. 제 전임자가 A 대법관의 사위인데 사위를 과장으로 데리고 있었으니 기회가 되면 인사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 것 같습니다). 혹시 강제징용 얘기가 나오면 설명드릴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강 전 국장이 내심 강제징용 관련 이야기를 하려고 A 대법관을 만났다는 건 이 전 과장이 검찰 조사에서도 말한 내용이다. 이 전 과장은 "강 전 국장이 강제징용 관련 얘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신경 쓰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당시 실제로 언급하지 않았던 건 분명히 기억한다"라고 진술했다.

검찰은 한·일 청구권 협정의 효력을 유지해야 했던 박근혜 정부가 강제징용 재상고심에 개입했고, 양승태 대법원 역시 이 사건을 재판 거래 수단으로 삼았다고 본다. /남용희 기자
검찰은 한·일 청구권 협정의 효력을 유지해야 했던 박근혜 정부가 강제징용 재상고심에 개입했고, 양승태 대법원 역시 이 사건을 '재판 거래' 수단으로 삼았다고 본다. /남용희 기자

강 전 국장은 같은 해 9월 주철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주재 회의에도 참석한 인물이다. 사무관의 회의 기록에는 '개인적으로 사법부를 접촉하고 대법원장에 문제 제기하라'는 청와대의 제언이 담겼다. 강 전 국장이 주 전 수석에게 '내일도 대법관 한 명 만나기로'라고 말했다는 것이 사무관의 기록이다. 이 대법관이 바로 A 대법관이었다. 강 전 국장은 2019년 관련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강제징용과 전혀 관련 없는 만남"이라고 증언했다.

정리하면 강 전 국장은 대법 판결을 뒤집기 위해 청와대 등과 논의하며 사법부에 개인적 접촉을 시도했고, 옛 부하 직원의 장인이라는 인연을 빌어 이 전 과장과 함께 A 대법관을 만났다. 그러나 이 전 과장의 증언대로 "강제징용의 '강'도 꺼내지 못했다."

삼권분립 사회에서 외교부가 사법부를 개인적으로 접촉해 정부 의견을 전하는 건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이 전 과장은 "당시 외교부 의견을 대법에 직접 전달할 통로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는 통로를 만들어냈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같은 해 12월 차한성 당시 법원행정처장,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과 '공관 회동'을 했다. 윤 전 장관은 공관에서 "국가적 위기 상황으로 사법적 해결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이 전 과장은 이러한 상황은 몰랐다며 "신문을 보고 알았다"라고 했다.

이 전 과장은 현재 국제법률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외교부 국장으로서 대법원을 정례적으로 방문하냐는 검사의 질문에 "없다"라고 답했다. 지도교수인 A 대법관을 자주 찾아가는 사이냐는 물음에도 "아니다. 제가 해외에 오래 있어서"라고 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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