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훈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장은 31년간 연구에 매진한 형사법전문가이자 24년간 형사사법개혁을 선도해온 시민사회운동가다./임세준 기자 |
"찬반 논쟁 치우쳐 구체적 논의 부족…공수처 폐지는 성급한 주장"
[더팩트ㅣ장우성 기자] 하태훈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장은 31년간 대학에서 연구에 매진한 형사법 권위자이자 24년간 형사사법개혁을 선도해온 시민사회운동가다.
지난해 8월 형사정책에서 법무정책까지 외연을 확장한 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사실상 첫 원장으로 취임한 뒤 임기 3년간 정책목표 수립, 국정감사 수감 등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새해를 맞았다.
그는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형정원 집무실에서 진행한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형사사법시스템 개혁 1년을 맞아 제도 도입 자체에 높은 점수를 주면서도 본격적 평가는 이르다고 밝혔다.
최근 수사권 조정 후 현장 혼선에 따른 우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향한 비판은 성급한 평가라고 지적했다. 개혁 찬반 논쟁에 파묻혀 구체적 논의가 부족했고 애초 계획보다 후퇴된 형태로 개혁이 시작됐다는 한계를 꼽았다. 다만 공수처에는 국민과 좀더 적극적인 소통을 주문했다.
새해 실시되는 검찰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 제한은 공판중심주의로 나아가는 정상화 과정으로 판단했다.
대선 후 출범할 차기 정부에는 국민적 합의로 도입된 새로운 형사사법시스템을 폐지·축소하기보다는 문제점을 보완해 안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오랜 형사사법개혁운동, 학계 활동 후 처음으로 공공기관장이자 행정가가 됐는데 차이점은.
국책연구기관이기 때문에 30년 동안 연구와 접점이 있다. 학교 연구는 이론이 중점이라면 형정원 활동은 국가정책 입안에 기여하는 연구여야 한다. 성격은 다르지만 연구라는 공통점이 있어 전혀 이질적인 일은 아니다. 다만 국가 정책을 비판하다가 정책의 토대를 마련하는 연구를 하는 입장이 돼 시민단체 시절에 비해 조심스러운 면은 있다.
-연구원의 새해 주요 계획과 3년 임기 중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지난해 5월 정부출연연구기관법이 개정돼 법무정책까지 포괄하는 연구기관이 됐다. 이같은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전환 후 초대 원장인 셈이다. 형사정책 분야는 32년 역사와 전통이 있지만 법무정책은 새롭게 개척해야 한다. 형사정책 분야도 형사사법개혁정책이 시행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개선해나갈 지 연구할 것이다. 수사-기소권 분리 등 남은 개혁과제도 연구가 필요하다.
-검경 수사권조정, 공수처 출범 등 형사사법시스템 변화 1년을 평가한다면.
변화를 평가하기에 1년은 너무 짧다. 본격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이유가 두가지 있다. 우리는 어떤 법과 제도를 바꿀 때 찬반을 놓고 논쟁할 뿐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충분히 논의하지 않는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검찰 사이 사건 이첩 문제 등이 예다. 또 하나는 개혁제도가 제대로 도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수처는 여야 타협과정에서 규모를 상당히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 수사권 조정에서도 6대 범죄는 검찰에 직접수사권을 남겼다. 평가를 하기에는 아직 제대로 개혁이 되지 않았다.
-수사권 조정 후 수사 지연, 실무적 혼선 등 비판적 목소리도 많다.
각 고소·고발 사건을 따로 떼놓고 보면 지연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크게 볼 때 경찰이 수사를 종결하면 피고소·고발인은 절차에서 원칙적으로 해방된다. 예전에는 검찰 단계에서 다시 수사를 받아야 했다. 검찰도 사법통제를 위해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하고 시민위원회를 가동하는 등 여러 절차를 밟다보니 과정이 길어질 수 있다. 아직 통계는 없지만 단순히 지연되고 있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할 건 아니다. 애초 경찰 수사인력 충원, 전문화 등 사전 준비가 필요했는데 도입조차 불투명한 상태에서 새 형사사법시스템이 출범했다. 지난 1년 긍정·부정 측면의 원인을 잘 분석해 제도를 안착시켜야 한다. 국가수사본부 평가, 군·해양경찰, 특수사법경찰 등 다양한 수사기관의 역할도 정립돼야 한다.
-개혁의 핵심이었던 공수처는 통신조회 논란 이후 폐지 요구까지 나왔다.
폐지는 굉장히 성급한 주장이다. 20년 논의 끝에 도입한 제도를 제대로 형태도 갖추지 못하고, 시행도 해보지 못하고 1년 만에 폐지한다면 국가적 낭비다. 공수처 출범으로 검찰이 자기들끼리 잘못을 덮기는 어려워졌고 예방효과가 발생했다. 부정적 요소는 개선하면 된다. 공수처가 국민 기대에 부응해야한다는 압박감이 컸다. 성과를 내야 하니 통신조회 논란 등 과거 검경 특수수사 관행을 답습했다. 공수처 수사는 대검 중수부 등이 보여준 검찰 수사와 달라야 한다. 국민은 기존 검찰의 전방위 압수수색, 무차별 소환 등에 익숙해 속도에 답답해 할 수 있지만 이와 다른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수사 인력이 양적, 질적으로 부족하고 파견인력에 의존한 문제도 있다. 판사·검사 등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수사해 기소까지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인력구조다. 정치적 중립성과 비대화를 경계하다 보니 일개 지청 규모로 시작했다. 공수처장도 국민과 좀 더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새해부터 검찰 피의자신문조서의 공판 증거능력이 제한된다. 피해자에게 불리하고 피고인에게 절대 유리하다는 우려도 있는데.
피의자신문조서의 절대적 증거능력에 익숙해서 이게 달라지면 다 무죄가 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결국 공판중심주의가 제대로 실현되는 실질적 재판으로 정상화하자는 것이다. 검찰이 직접수사하는 6대 범죄를 특히 문제 삼는다. 그렇게 피의자 진술을 절대시하는 건 증거 없이 자백만 받았다는 말도 된다. 그래서 무죄가 된다면 국가 책임이다. 다만 이를 감당할 사법부의 물적·인적 자원이 확보될 수 있느냐는 문제다. 어느 정도의 재판 지연은 감수도 필요하다. 사실 우리나라 재판 진행은 외국보다 빠른 편이다. 해외는 민형사 모두 장기 재판이 많다. 그래서 중재와 조정이 활성화됐다. 소송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에 쉽게 소송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든 분쟁을 법원으로 끌고 간다. 형사 고소·고발건수도 일본보다 월등히 많다.
하태훈 형사법무정책연구원장 인터뷰 / <사진=임세준 기자 / 20211228 / 서울 서초구 형사법무정책연구원> |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화두였던 검찰개혁의 성과와 한계를 꼽는다면. 사법개혁은 검찰개혁보다 더디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행 1년 남짓에 평가하기는 조심스럽지만 검경수사권 조정, 공수처 설치, 법무부의 탈검찰화 등 제도를 도입했다는 점에서는 굉장한 성과였다. 제대로 작동되는지는 아직 말하기 이르다. 정부가 촛불시민의 가장 큰 요구인 검찰개혁에 치중하다보니 사법개혁에는 소홀한 면이 있었다.
-검사장직선제, 수사-기소 완전 분리 따른 수사청 신설, 기소배심제 등도 개혁과제로 거론돤 바 있다.
일단 현 제도가 안착된 다음에 논의해야 한다. 수사-기소 완전 분리는 장기적으로는 과제지만 현 시스템이 먼저 자리잡아야 한다. 검사장직선제는 수사권 조정이나 공수처 설치가 안 됐다면 좋은 방법이다. 검찰권한이 분산되는 과정에서 실익이 있을까 의문도 든다. 수사청도 관할부처에 논란이 있고 국가수사본부 시행도 얼마 안 돼서 수사청까지 두면 혼선도 우려된다.
-3월 대선 후 출범할 새 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형사법무정책의 과제는.
개혁 제도들의 정착이 중요하다. 일부 평가만 듣고 폐지하거나 축소하면 안 된다. 예컨대 검찰은 제한된 수사권을 다시 가져오고 싶겠지만 국민적 합의로 도입된 것이다. 당장은 아니지만 수사-기소기관을 완전 분리하고 공수처를 병렬 운영하는 체제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서로 견제하면서 독립성과 중립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leslie@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