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대법원은 '서울시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 유우성 씨를 대북송금 혐의로 기소한 사건에 공소기각 판결을 확정했다. 사법부가 검찰의 공소권 남용을 처음으로 인정한 판례다. 유 씨는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더팩트> 편집국을 찾아 심경을 밝혔다. /윤웅 기자 |
'간첩조작 피해자' 유우성 씨 "검사들, 처벌 안 받는다는 확신…사건 잊혀질까 걱정"
[더팩트ㅣ김세정 기자] "검사들은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과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면 제 사건은 또 잊혀지겠죠."
서울시 공무원이던 유우성 씨는 2013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1년 뒤 증거조작이 밝혀졌고 무죄를 선고받았다. 조작에 연루된 국정원 직원들이 재판에 넘겨지고, 검사들은 징계 처분을 받았다. 그러자 검찰은 돌연 2014년 유 씨를 불법 대북송금 혐의로 기소했다. 이미 4년 전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던 사건을 다시 꺼냈다.
지난 10월14일, 대법원은 유 씨 기소는 검찰의 공소권 남용을 인정해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기소 7년 만에 사법부는 공소권 남용을 처음 인정했다. 판결 두 달이 지났지만, 검찰은 유 씨에게 어떠한 사과도 하지 않았다. <더팩트>는 지난 28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편집국에서 유 씨를 만났다.
-공소권 남용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두 달이 한참 지났다.
2014년 기소부터 대법원 판결까지 무려 7년이 걸렸다. 변호사님들 말로는 형사사건을 이처럼 오래 끈 사례가 없었다. 항소심에서도 검찰의 보복적인 수사 의도를 인정해 공소를 기각했다. 피해자는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겠나. 판사들이 검찰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다.
-사법부가 검찰의 공소권 남용을 처음으로 인정한 판례다.
제 사건 뿐 아니라 검찰이 지금까지 공소권을 남용한 사건이 또 있을 거다. 그런데 법원 판단까지 받아낸 사례가 없었다는 게 팩트다. 검찰이 죄 없는 사람들을 기소했을 때 이런 판단을 받을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다. 그런데 재발 방지나 후속조치가 없다는 게 큰 문제다. 처벌받는 사람도 없다. 결국 검찰은 어떤 사람을 선택적으로 기소하고, 괴롭혀도 무사하다는 결론이 판결의 메시지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유 씨는 지난달 24일 대북송금 혐의 사건을 담당했던 전현직 검사 4명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수사해달라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윤웅 기자 |
유 씨를 대북송금 혐의로 기소한 건 안동완 전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 검사(현 서울동부지검 부장검사)였다. 지휘라인은 이두봉 형사2부장(현 인천지검장), 신유철 1차장, 김수남 지검장이었다. 유 씨는 지난달 24일 이들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공수처에 고소장을 제출했는데.
검찰에 고소장을 수도 없이 냈는데 대부분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검사의 잘못을 검찰에 고발하는 것은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꼴이다. 더이상 검찰은 믿을 수 없어 새로 만들어진 공수처에 고소장을 냈다. 물론 제출한 지 한 달이 넘었는데 아무런 연락이 없다.
-고소장을 보면 고발과 수사가 순수하지 않다고 했다.
이미 4년 전 검찰이 스스로 기소유예 처분한 사건이었다. 서울시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에서 조작이 밝혀지고, 검사들과 국정원 수사관들이 조사를 받을 때였다. 보수단체들이 기사 내용으로 검찰에 고발하고, 빠른 속도로 다시 조사가 이뤄졌다. 기사 하나로 기소유예 처분한 사건을 기소할 수는 없다. 그래서 어떤 사주를 받은 기소이자, 피해자를 더 괴롭히기 위한 보복 기소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재판부도 그런 판단을 했다.
유 씨는 판결 이후 검찰에서 단 한마디의 사과도 듣지 못했다. 그는 "국회 법사위에서 법무부 장관이나 검찰총장에게 관련 질문을 했을 때 조사하고, 조치한다고 했지만 실제로 일어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언론에다가 이야기만 한 것이다. 안타깝다"고 심경을 전했다. /윤웅 기자 |
유 씨는 아직 검찰에서 단 한 마디의 사과도 듣지 못했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10월1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이두봉 지검장은 끝내 사과를 거부했다. 과거 유 씨를 변호했던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사과 요구에 이 지검장은 "대법원 판결을 존중해서…업무처리에 유의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만 답했다. 김오수 검찰총장도 국정감사에서 사과 요구를 받자 "판결문 등을 살펴보고 적절한 조처를 하겠다"며 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검사는 처벌받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이같은 발언이 나온 것이라고 유 씨는 해석했다.
검찰사무를 관장하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국회 예산결산특별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공소권 남용에 매우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진상조사 계획은 검토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당장 신속하게 (진상조사를 지시할) 그럴 사안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소위 '악의성'은 조금 더 조사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유 씨는 "대체 어떤 조사가 더 필요하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판결 이후 검찰에서 연락은 없었나.
없었다. 국회 법사위에서 법무부 장관이나 총장이 조사하고, 조치한다고 했지만 실제 아무 것도 없다. 언론에 이야기만 한 것이다. 예전에도(서울시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개인적으로 연락이 온 적도 없었고, 총장이 사과했지만 언론에 했을 뿐이다. 사과 이후엔 조치가 있어야 한다. 그 당시 검사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검찰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조사하고 기소할 수 있다. 이번 판결에도 공소권은 계속 남용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두봉 지검장의 국정감사 발언을 봤나.
봤다. 국민들은 잘못하면 검찰에 기소되고, 처벌받고, 징역에 처한다. 그런데 검사들은 잘못해도 처벌을 안 받는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누구보다도 법을 지켜야 하는 검사들이 판결로 규명됐는데도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언론에서도 더는 언급도 안 될 것이고, 또 잊혀질 것이다. 당사자들만 안타깝고 분통이 터진다.
유 씨는 검사들이 '사과를 안 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조작에 가담하고, 나쁜 짓을 했던 검사들이 오히려 결말이 더 좋은 사례가 훨씬 많다. 그런 사례를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윤웅 기자 |
-검사들이 사과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검사들도 국민들과 똑같이 처벌을 받는다면 사과할 것이다. 검찰이 처벌받은 사례는 극소수고 오히려 더 잘된다. 양심적 검사들보다 조작에 가담하고, 나쁜 짓을 했던 검사들이 잘 나간다. 로펌에서 전관예우로 돈을 벌거나 아니면 국회의원이 된다든가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간첩조작에 가담했던 검사들도 정직 1개월만 받았다. 한 달 휴가다. 그래서 국회의원이 국감장에서 아무리 사과하라고 해도 안 한다.
-'악의성'에 조사가 더 필요하다는 법무부 장관의 발언은.
판결문에 공소권 남용이 적시됐는데 그보다 명확한 증거가 있나. 확실한데 왜 조사에 시간을 끄나. 그러다가 결국 사건은 잊혀진다. 왜 일반인들과, 법집행자에게 적용되는 법의 잣대가 다를까. 더 엄격히 법을 지켜야 할 사람들이 법을 악용하고, 권력을 남용해도 처벌받지 않는다.
-공수처 수사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검찰처럼 봐주기식 수사가 아니라 사건을 제대로 규명하고, 재발을 방지할 좋은 선례를 남겼으면 좋겠다. 대법원 판단에만 7년이 걸렸는데 조사부터 기소에 사법부 판단까지 하면 대체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결국, 관련자들은 잊히고, 각종 인맥을 이용해 빠져나갈 것이다. 그러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테니 참 안타깝고, 걱정된다. 조사를 신속히 해서 규명됐으면 좋겠다.
sejungkim@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