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판결] 검찰 수사관행에 제동 건 법원…사법농단 법관은 희비교차
입력: 2021.12.31 00:00 / 수정: 2021.12.31 00:00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5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덕인 기자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5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덕인 기자

'댓글조작' 김경수 실형 확정…'위안부' 피해자 승소 판결도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2021년 법원에서는 많은 유의미한 판결이 나왔다. 증인 사전면담과 제3자의 저장매체 제출 등 검찰 수사의 위법성을 놓고 중요한 판례를 만들었다. '국가 면제론'을 고수하며 재판 절차에도 불응했던 일본의 이중성을 지적하며 일제강점기 위안부 피해자의 손을 든 판례도 나왔다.

올해에도 '사법농단' 사건 재판은 계속됐다.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등은 첫 유죄 판결을 선고받았다. 탄핵 기로에 섰던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는 헌법재판소의 각하 결정으로 구사일생했다.

'댓글 조작' 공모 혐의로 기소된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3년여 법정 공방 끝에 징역 2년을 확정받아 수감됐다. 다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벗었다.

◆"증인 사전면담, 회유 가능성 배제 못해"…김학의 파기환송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이흥구)는 지난 5월 특정범죄가중법 위반(뇌물)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김 씨에게 뇌물을 건넨 건설업자 최모 씨가 증인신문에 앞서 검찰과 사전면담을 한 사실이 결정적이었다. 대법원은 "최 씨가 증인신문 전 검사와 사전면담을 하는 과정에서 회유나 압박, 답변 유도나 암시 등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지난해 6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청와대 감찰무마'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전직 특별감찰반원도 검찰과 사전면담을 한 것으로 드러나 재판부에게 지적을 받았다. 검찰은 당시 검찰사무규칙에 원활한 증인신문을 위해 신문 사전면담이 가능하다고 규정돼 있다고 해명했다. 대법원은 이 같은 검찰의 '불편한 수사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이밖에 대법원은 수사기관이 제3자에게 저장매체를 제출받을 때 피의자의 의사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피의자 참여권 보장은 자녀 입시비리 의혹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재판의 주요 쟁점이기도 했다. 검찰은 관련 증거가 담긴 동양대 강사휴게실 PC를 정 전 교수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았다. 정 전 교수의 1·2심 재판부는 PC를 임의제출한 조교를 '보관자'로 볼 수 있다며 증거로 채택했지만, 같은 혐의로 기소된 조 전 장관의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PC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김학의(왼쪽) 전 법무부 차관이 9월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첫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김학의(왼쪽) 전 법무부 차관이 9월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첫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사법농단 법관 첫 유죄로 '재판 개입' 형사처벌 길 열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윤종섭 부장판사)는 3월 '사법농단' 사태에 연루된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과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에게 각각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사태에 연루된 법관 중 첫 유죄 판단이다.

그동안 법원은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 개입 행위를 사실로 인정하면서도 직권남용죄로 처벌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장 등 사법행정권자에게 애초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권한을 남용해 다른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범죄인 직권남용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판시다. 그러나 형사합의32부는 대법원·법원행정처가 판사의 명백한 잘못을 지적할 권한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법관의 업무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거나, 장기 미제 사건을 방치하며 간단한 사건만 처리하는 등 '명백한 잘못'이 있으면 이를 지적하는 데 그쳐야 한다고 제한했다.

◆헌재, 사상 첫 법관 탄핵심판 각하…"재판 개입, 위헌성 중대" 지적

헌법재판소는 10월 사법농단 연루자인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심판 청구를 재판관 5(각하) 대 3(인용) 대 1(절차종료)의 의견으로 각하했다. 탄핵심판은 공직에서 파면해야 하는지 따지는 절차인데, 임 전 부장판사가 2월 임기 만료로 공직에서 퇴임했기 때문에 절차가 필요하지 않다는 이유다.

반면 유남석 헌재소장을 비롯해 이석태, 김기영 재판관 등 3명은 임 전 부장판사의 행위가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라는 청구 인용 의견을 냈다. 임 전 부장판사는 양승태 대법원 시절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 부장판사로 일하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을 보도한 외신 기자의 명예훼손 혐의 사건 재판 등에 개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유 소장 등 3명은 "탄핵심판에서까지 면죄부를 준다면 재판 독립을 침해해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추락시킨 행위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을 용인하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드루킹 댓글 조작 혐의로 기소된 김경수(가운데) 경남도지사가 지난해 11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재판에서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 혐의에 징역 2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무죄를 각각 선고받은 뒤 법원 앞에서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드루킹 댓글 조작' 혐의로 기소된 김경수(가운데) 경남도지사가 지난해 11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재판에서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 혐의에 징역 2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무죄를 각각 선고받은 뒤 법원 앞에서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드루킹 의혹' 김경수 징역 2년 확정…선거법 위반은 무죄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7월 이른바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에 연루돼 기소된 김경수 전 경남지사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무죄가 확정됐다.

김 전 지사는 '드루킹' 김동원 씨 일당과 공모해 2016년 11월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매크로 프로그램인 '킹크랩'으로 여론을 조작한 혐의(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과정에서 김 씨 측에게 일본 센다이 총영사직을 제안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도 받았다.

1·2심 재판부 모두 댓글 조작 혐의는 유죄로 판단했으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1심 유죄, 2심 무죄로 엇갈렸다. 김 전 지사 측은 재판 내내 킹크랩의 존재도 알지 못했다며 모든 혐의를 부인했지만 대법원에서도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보석으로 풀려났던 김 전 지사는 실형 확정 판결에 따라 수감됐다.

◆"한국 재판 피고 못 선다"던 일본…자국 법에 '국가면제 예외' 설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김정곤 부장판사)는 1월 고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일본은 '국가는 다른 국가 재판에 피고로 서지 않는다'는 '국가면제 원칙'을 이유로 위안부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 재판에 불응해왔다. 이에 재판부는 "국가면제 이론은 국제 질서 변동에 따라 계속 수정되고 있으며 여러 국가의 국내법에서 국가면제가 인정되지 않는 예외사유를 정하고 있는 점에 비춰 보면, 국가면제 이론은 항구적이고 고정적 가치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국가면제론을 고수한 일본 역시 국가면제 원칙이 배제되는 예외 사유를 자국 법에서 규정하고 있다고도 꼬집었다. 재판부는 "이 사건 행위는 일본에 의한 계획적, 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이자, 일본에 의해 불법 점령 중이던 한반도 내 우리 국민에 대해 자행된 행위"라며 "국가의 주권적 행위라고 할지라도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고 예외적으로 한국 법원에 피고에 대한 재판권이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라고 판시했다. 패소 판결에 일본은 무대응으로 일관했고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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