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과학탐구 영역 생명과학Ⅱ 20번 문항 오류를 제기한 수험생들이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행정법원에서 2022 대학수학능력시험 정답결정처분 취소소송 1심 선고를 마친 후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
법원, 평가원 정답 결정처분 취소…"문제에 명백한 오류"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과학탐구영역 생명과학 II 20번 문제를 놓고 법원이 '명백한 출제 오류'라고 판단했다. 대학 입시와 소송을 병행한 응시생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이주영 부장판사)는 15일 오후 이번 연도 수능 생명과학 II 과목 응시자 92명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상대로 낸 '2022 대학수학능력시험 정답 결정처분 취소소송' 선고기일을 열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문제에는 명백한 오류가 있어 수험생에게 정답 선택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적어도 심각한 장애를 줄 정도에 이른다"며 "이 문제는 대학교육에 필요한 수험생들의 수학 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기본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없어 평가지표로서의 유효성을 상실했다. 문제의 정답을 5번으로 결정한 피고(평가원)의 처분은 위법하다"라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수능시험의 과학탐구 영역은 문제에 포함된 정보를 바탕으로 문제를 해석하는 추리·분석·탐구 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것으로 출제자는 수험생들이 논리성·합리성을 갖춘 풀이 방법을 수립해 정답을 고를 수 있도록 문제를 구성해야 한다"며 "원고를 비롯한 일부 수험생은 비록 피고가 의도한 풀이 방법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지만 충분한 논리성·합리성을 가진 풀이 방법으로 문제 해결을 시도했으나 문제 자체의 오류로 정답을 선택할 수 없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만일 문제 정답을 5번으로 유지한다면 수험생들은 앞으로 수능 시험에서 과학 원리에 어긋나는 오류를 발견하더라도 출제자의 실수인지 의도된 것인지 불필요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라며 "수능시험을 준비하면서 사고력과 창의성을 발휘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기르기보다 출제자가 의도한 특정 풀이 방법을 찾는 것에만 초점을 두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승소 판결 뒤 취재진과 만난 응시생 신모 군은 '부모님 등 가족의 걱정이 많았을 것 같다'라는 물음에 "'굳이 네가 나서야 하니', '네가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할 수 있지 않니'라는 주변의 우려가 많았다. 오늘 재판 결과로만 보면 저희 행동은 옳았다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신 군은 '정해진 방식으로 정답만 맞히면 그만이라고 (학생에게) 가르쳐서는 안 된다'라는 법원 판결 취지에 "수능 시험 모든 문항은 문항 출제 과정에서 여러 방법으로 접근해도 잘 풀 수 있도록 검토돼야 한다"며 "이런 상식적인 생각, 저희 생각을 존중해주셨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함께 선고기일을 방청한 응시생 임모 군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어른들이 실수를 인정하고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으시리라 믿었다"며 "이번 (법원의) 결정에 감사드리고 입시 일정에 힘쓰며 상황을 지켜보겠다"라고 말했다.
10일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2022 대학수학능력시험 정답 결정처분 취소소송' 첫 변론기일에 참석한 응시생이 '공란' 처리된 생명과학II를 제외하면 모두 1등급을 맞은 2022학년도 수능 성적통지표를 취재진에 공개하고 있다. /송주원 기자 |
앞서 이번 연도 수능 생명과학 II 과목의 응시자 92명은 20번 문제에 오류가 있다며 평가원에 문제를 제기했다.
해당 문항은 주어진 지문의 동물 두 집단에 대한 유전적 특성을 분석해 하디·바인베르크 평형이 유지되는 집단을 찾고, 옳은 선지를 구하는 문제다. 출제 오류를 주장하는 응시자들은 지문에 따라 계산하면 특정 집단의 개체 수가 음수(-)가 되는 오류가 있어 문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평가원은 문항 조건이 불완전하더라도 학업성취 수준을 변별하기 위한 평가 문항으로서 타당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응시자들은 2일 법원에 본안소송과 함께 집행정지 신청을 냈다. 법원은 9일 본안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정답 결정을 유예하라며 응시자들의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했다.
평가원은 패소 판결에 승복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강태중 평가원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오늘 법원 판결을 무겁고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책임을 절감한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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