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늑장 재판'에 두 번 우는 강제징용 피해자
입력: 2021.11.17 11:46 / 수정: 2021.11.17 11:46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 씨가 2018년 10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신일철주금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상고심 판결에 참석, 선고를 마친 후 법원을 나와 기자회견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 씨가 2018년 10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신일철주금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상고심 판결에 참석, 선고를 마친 후 법원을 나와 기자회견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형사판결 나와야 손배소 본격화…국가는 '취하하라'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사법농단' 형사재판이 장기화되면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 소송도 차질을 빚고 있다. 박근혜 정부와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 거래' 관련 형사판결이 나와야 실질적인 재판 진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형사재판은 이례적인 재판 갱신 절차 등으로 3년째 진행 중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3부(홍진표 부장판사) 17일 오전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 씨와 피해자 유족 등 2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첫 변론기일을 열었다.

원고 측 대리인단은 "피해자가 2005년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2012년 대법원의 원고 승소 취지 판결이 있었음에도 (당시 정부와 사법부의) 재판 거래 행위로 재판이 지연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며 "재판 거래는 원고의 기본권을 지키고 수호해야 할 사법부 일원이 한쪽 당사자 이익 또는 국가 이익을 위해 재판의 공정성과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점에서 중대한 불법 행위이자 인권침해"라고 설명했다.

다만 원고 측은 재판 거래 등 혐의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형사재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재판을 미뤄달라고 요청했다. 같은 사안으로 민·형사재판이 진행될 경우 형사판결이 나온 뒤 민사적 문제를 다투는 게 통상적이다. 원고 측은 "두 사람(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의 형사사건 기록을 확보해야만 이를 바탕으로 서증을 제출하고 증인을 신청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저희도 원고가 고령이라 최대한 절차가 진행되길 바라지만 형사재판을 봐야 할 것 같다. 형사판결이 나오면 신속하게 기록을 신청해 증거를 신청하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에 국가 측은 원고가 뚜렷한 증거 없이 손배해상을 청구했다고 지적했다. 국가 측 대리인은 "지금으로서는 원고 주장만 있고 입증이 없는 상태"라며 "재판을 추후지정 상태로 놔두기도 좋지 않을 것 같은데 판결을 내려주시거나 입증할 자료가 있을 때 다시 소를 제기하는 방식이 어떨까 싶다"라고 제언했다. 지금 시점에서 재판 거래로 인한 피해는 주장일 뿐이니 원고 측이 소를 취하하라는 취지로 풀이된다.

원고 측은 "이미 (재판 거래 정황이 드러난) 사법부 내부 진상보고서와 검찰 공소장이라는 증거가 존재한다. 일방적 주장이 아니라 두 국가기관의 조사 자료가 존재하는 상황"이라며 "만약 저희가 형사판결을 기다린 뒤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면 (국가 측이)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냐고 주장했을 가능성도 있다. 지금 상태로 증거가 불충분하고 이대로 (민사재판의) 판결이 이뤄져야 한다는 피고 측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라고 반박했다. 민법은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의 청구권의 소멸시효를 피해자가 손해·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가 발생한 날로부터 10년으로 정한다.

사법 농단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9월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63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사법 농단'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9월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63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재판부는 추후지정 상태로 두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2차 변론기일을 다음 해 5월 18일 오전 10시 10분으로 잡았다.

이 씨 등은 5월 서울중앙지법에 국가를 상대로 1인당 1억 100원씩을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앞서 이 씨 등 4명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2005년 일본제철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재상고심 처리 기간이 5년 넘게 지연되며 2018년 10월에야 최종 승소 판결을 확정받았다. 그 사이 이 씨를 제외한 3명의 피해자는 세상을 떠났다.

이후 사법부가 해당 사건을 박근혜 정부와 거래 수단으로 삼아 고의로 재판을 지연했다는 검찰 수사 결과가 드러났다.

재판 거래 혐의로 가장 먼저 기소된 임 전 차장의 형사재판은 3년을 바라보고 있다. 2019년 재판장이 과거 '사법농단 연루자를 단죄해야 한다'라고 발언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법관기피 신청을 내 8개월 동안 재판이 진행되지 못했다. 2019년 초 재판에 넘겨진 양 전 대법원장의 재판도 이제야 증인신문이 재개됐다. 2월 법관 정기인사로 재판부가 교체된 뒤 지난달 22일까지 이전 재판부의 심리 내용을 다시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통상 검찰과 변호인이 구두로 이전 내용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양 전 대법원장의 재판은 앞서 이뤄진 주요 증인신문 녹음을 일일이 법정에서 청취해 갱신 절차가 늘어졌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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