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택 만찬에 코드명까지" vs "업계 고객관리"[더팩트ㅣ송주원 기자]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직접 접촉했다는 법정 증언이 나오면서 검찰이 이 부회장의 턱끝을 겨누고 있다. 삼성 미래전략실뿐만 아니라 이 부회장이 직접 자문을 받으며 자신의 '승계 작업'에 관여했다고 의심한다. 이 부회장 측은 골드만삭스의 '마케팅'으로 연 1~2회 가볍게 만났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박사랑·권성수 부장판사)는 11일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이 부회장 등의 속행 공판을 열었다. 이날 공판에는 골드만삭스 서울지점 대표 A 씨가 지난 공판(4일)에 이어 증인으로 나왔다.
◆골드만삭스와 자택 만찬…코드명까지 존재
A 씨는 앞서 진행된 검찰 측 신문에서 이 부회장과 골드만삭스 관계자가 만났다고 증언했다. 이 부회장이 골드만삭스에 삼성생명 지분 매각, 삼성물산과 에버랜드(제일모직 전신) 합병 관련 조언을 직접 받았다는 검찰 입장에 부합하는 내용이다. 다만 A 씨는 이 부회장을 비롯해 삼성 측에 '정식 자문'을 해준 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검찰은 양측 사이 오간 '콘텐츠'로 볼 때 단순 마케팅이 아닌 자문이라고 결론을 지었다.
검찰이 자문이라 확신한 이유는 이 부회장 측과 골드만삭스가 직접 주고받은 이메일이다. 주신문 내용에 따르면 2014년 5월 20일경 이 부회장의 비서는 골드만삭스에 삼성생명 관련 문건을 여럿 보냈다. '삼성생명 및 운용 중심의 지주회사 전환 관련 보고서'라는 문건이 첨부된 메일에는 "부회장님께서 아래 자료를 박사님께 보내드리라고 해서 드린다"는 문구도 쓰였다. 검찰은 고 이건희 회장의 병세가 악화되자 이 부회장이 상속세 마련을 위해 삼성생명의 경영권 지분을 외국계 투자자에게 매각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이밖에 검찰은 A 씨가 당시 미국 본사 IB부문 회장 C에게 보낸 "이 부회장과 얘기를 나눴는데 당신이 6월 29일 전에 빨리 서울에 와달라고 요청하고 있다"는 메일, 골드만삭스 관계자가 이 부회장 자택에서 만찬을 하고 다음날 회의를 했다는 정황 등을 공개했다. A 씨는 "당시 회의에 참석했는지 여부부터 기억 안 난다"라고 말했다.
또 골드만삭스는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총수 일가를 '프레젠테이션 투 스타'라는 코드명으로 지칭한 것으로 나타났다. 왜 코드명을 썼냐는 검사의 질문에 A 씨는 "항상 정보에 대한 민감성이 있어서 코드명을 쓰기도 했다"라고 답했다.

◆골드만삭스의 고객 관리…'이재용, 상속세 걱정 안 했다'
이 부회장 측은 C 회장이 오랫동안 여러 기업을 상대로 고객 관리를 해왔으며, 삼성 역시 그가 관리한 고객 중 하나였다고 반박했다. A 씨 역시 '이 재판에서는 골드만삭스가 이 부회장을 위해 일한 양 언급되지만 국내외 유수의 기업과 고객 관계를 유지하고 노력하고 있지 않느냐'는 변호인 질문에 "비슷한 마케팅을 여러 고객과 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검찰이 승계 조언이라 지적한 합병 관련 검토안도 '잠재적 고객'의 이슈를 파악하려는 차원이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골드만삭스가 삼성에 제시한 아이디어에 합병 관련 내용이 있었던 건 잠재적 고객의 이슈를 파악해 여러 아이디어를 제공한 연장선"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에 여러 아이디어를 미리 제공하고 특정 아이디어가 채택되면 정식으로 자문 관계를 맺는 게 업계 특성이라는 설명이다. A 씨 역시 이러한 변호인 주장에 "예전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해오고 있다"라고 동의했다.
이 부회장이 직접 C 회장과 만난 것에는 "C 회장은 보험업 전문가로 이 부회장은 그를 통해 세계 보험업계 동향을 들을 수 있다. 현안이 없어도 1년에 한두 번씩 가볍게 만났다"라고 해명했다. 또 변호인은 C 회장이 사내 관계자에 보낸 이메일을 제시했다. 고 이 회장이 쓰러지자 '상속세 마련을 위해 삼성생명 매각하라'라고 제안했지만 정작 이 부회장은 상속세 관련 걱정이 크게 없었다는 내용이다.
이 부회장 재판은 평소 오후 6시를 훌쩍 넘기지만 이날 공판은 방역 작업으로 오후 5시께 마무리됐다. 9일 이 부회장 재판이 열린 법정을 다녀간 방청객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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