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 '물의야기 법관'…관행과 반헌법 사이
입력: 2021.10.30 00:00 / 수정: 2021.10.30 00:00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9월 서울중앙지법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9월 서울중앙지법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판례 들어 '위헌적이라도 처벌 못해'…당사자 "편법"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서 '물의야기 법관 문건'은 주요 쟁점이다. 대법원 수뇌부에 비판적인 법관을 음주운전·성 비위를 일으킨 법관과 함께 '물의야기 법관'으로 묶어 인사 불이익을 줬다는 혐의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관행이고 브레인스토밍'이라고 주장한다. 명단에 오른 판사는 '편법 인사'라고 맞서지만 임 전 차장은 완고하다.

공소장에 따르면 양승태 대법원 수뇌부는 당시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법관을 '물의야기 법관'으로 분류해 문건으로 정리하고 인사 불이익을 주려고 했다. 법리적으로는 대법원장, 법원행정처장·차장이 직무권한을 남용해 심의관에게 의무 없는 일(관련 문건 작성)을 하게 했다는 혐의다. 임 전 차장은 물의야기 법관 분류는 오랜 관행이자 '통상의 업무'였다고 주장한다. 관행적 업무라 누가 특정 법관을 물의야기 법관으로 분류하라 지시했는지도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임 전 차장은 왜 관행을 강조할까. 직권남용죄에 관한 대법 전원합의체 판례상 처벌을 피할 수 있어서다. 임 전 차장은 최근 공판에서 대법 판례를 들어 무죄를 주장했다. 이 판례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박근혜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계 인사·단체 지원 배제를 지시한 사건 상고심 판결이다. 대법은 김 전 실장 지시가 직권남용은 맞지만 공무원이 명단을 송부하거나 상황을 보고한 행위를 '의무 없는 일'로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사건 이전부터 통상적으로 해온 절차적 행위라고 봤기 때문이다.

물의야기 법관 분류는 오랫동안 이뤄진 관행이라는 임 전 차장 측 입장과 결이 같다. 지시가 부적절했더라도 일선 공무원의 명단 송부·상황 보고는 관행적이고 일상적 업무에 불과해 '의무 없는 일' 범위에 넣고 처벌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최근 임 전 차장 공판에서는 양승태 대법원 시절 물의야기 법관 문건 관련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사진은 대법원. /이새롬 기자
최근 임 전 차장 공판에서는 양승태 대법원 시절 '물의야기 법관 문건' 관련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사진은 대법원. /이새롬 기자

물의야기 법관 리스트에 오른 당사자들은 생각이 다르다. 최근 임종헌 전 차장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모 판사·박모 판사도 그렇다. 이들의 '물의'는 각각 판사회의 의장을 지낸 것,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연루된 대법관 후보를 비판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관행이라 문제없고 지시자도 모호하다'는 임 전 차장 측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문건을 작성한 인사 심의관이 알아서 물의야기 법관을 정했을 리는 없다. 양승태 대법원에 비판적인 판사를 포함하라는 최소한의 암묵적인 지시로 문건이 작성됐다는 게 문건에 적시된 판사들의 생각이다. 임 전 차장 측은 '인사 실무자들은 관행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는 김연학 당시 인사총괄심의관의 증언으로 뒷받침하려 했지만 판사들은 양심에 따른 증언일지 의심한다.

분류 기준도 쟁점이다. 임 전 차장은 '인사에 반영할 만한 언론보도부터 풍문까지 폭넓게 (문건에) 반영했다'는 실무자 증언으로 대신한다. 박 판사는 "적어도 대법관 후보에 관한 의견을 제시했다고 인사 조치를 검토하는 건 맞지 않다"라고 증언했다. 박 판사는 2015년 4월 박상옥 당시 대법관 후보자에 대해 '박종철 사건 연루 검사의 대법관 임명은 6월 민주항쟁으로 민주화를 일군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는 글을 법원 전산망 '코트넷'에 올렸다.

임 전 차장은 또 실무자의 증언을 들었다. 코트넷 등에 '부적절한 게시글'을 올려 법관 윤리를 위반했다고 판단해 물의야기 법관으로 분류했다는 증언이다. 박 판사는 공직 후보자인 대법관을 공개적으로 지지·반대 글을 올렸다. 이는 해외사례를 보더라도 법관 윤리에 어긋나 물의야기 법관 명단에 오를 만하다는 게 임 전 차장 측 주장이다. 반면 박 판사는 "재판 업무에 영향을 주는 사유라면 몰라도 이런 걸 인사 사유로 삼는 건 헌법에 반한다"라고 반박한다.

임 전 차장과 박 판사는 지난 12일 법정에서 피고인과 증인으로 만나 직접 토론 아닌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박 판사: 과연 법관 윤리에 어긋난다고 생각했다면 왜 징계 절차에 회부하지 않고 편법적으로 인사 조치를 검토했느냐.

임 전 차장 : 인사 실무자는 (물의야기 법관 분류가) 징계 회부보다 가벼운 조치라 생각해 종종 그렇게 해왔다.

박 판사 : 그런 생각으로 인사 실무를 하는 건 편법적이다.

임 전 차장 : 박 판사의 증언 내용은 주관적인 법적 견해로 증거가치가 없다. 일부 법관의 독립 등 헌법상 원칙을 침해할 위헌적 내용이 있어도 보고서를 작성하게 한 것은 특정한 안을 검토, 집행 준비를 하게 한 것뿐이라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

ilraoh@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
인기기사
실시간 TOP10
정치
경제
사회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