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있지만 일정한 수입이 없는 한국인 아버지와 한국어가 서툴지만 딸과 친근한 외국인 어머니. 누가 아이의 양육을 맡아야 할까./더팩트 DB |
대법 "한국어 능력 양육권 지정에 중요 요소 아냐"
[더팩트ㅣ장우성 기자] 집이 있지만 일정한 수입이 없는 한국인 아버지와 한국어가 서툴지만 딸과 친근한 외국인 어머니. 누가 아이의 양육을 맡아야 할까. 대법원은 어머니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한국인 A씨와 베트남인 B씨의 이혼 소송에서 큰딸(5)의 양육권을 부친 A씨에게 준 원심을 깨고 사건을 전주지법에 되돌려보냈다고 17일 밝혔다.
A씨와 B씨는 2015년 혼인신고를 마치고 이듬해 큰딸, 2년 뒤 작은 딸을 낳았지만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2018년 B씨는 큰딸을 데리고 가출해 별거를 시작했고 부부는 서로 이혼과 친권·양육권 청구 소송을 냈다.
1,2심은 이혼 청구를 인용하면서 부친을 친권자이자 양육자로 지정했다. B씨가 기본적 한국어 소통능력이 부족하고 거주지와 직장이 안정적이지 않아 양육능력에 의문이 있다고 판단했다. B씨가 직장생활을 하면 한국어를 쓰지않는 외할머니가 양육을 돕게 돼 아이의 언어 습득과 교육이 더 걱정스럽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한국어 실력이 양육의 중요 조건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국내 공교육 등 미성년 자녀가 한국어를 배울 기회가 충분하고 B씨의 한국어 실력도 노력하면 나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B씨의 변호인은 상고심에서 의뢰인과 나눈 문자메시지를 제출해 모친의 한국어 실력이 나아졌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양육권 지정에 한국어 능력을 고려하면 출신 국가를 차별하는 결과를 낳게된다고도 우려했다.
원심도 인정했을 만큼 B씨와 큰딸은 친밀도가 높고 부부가 별거한 2년 동안 평온하게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대법원이 현재의 양육상태를 바꿔 A씨 친권·양육자로 지정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품은 이유다.
부친이 자기 소유 집이 있기는 하지만 경제활동을 하지않고 있는 반면 모친은 직장과 적지만 고정수입이 있고 월셋집을 마련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를 친권·양육권자로 지정해도 실제 큰딸과 같이 살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고 봤다. 자녀가 미성년이라도 의사능력이 있으면 자신이 인도를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A씨는 B씨가 양육권을 가지면 양육비를 줄 의사가 없다고 밝히기도 해 자칫 A씨는 양육권 의무를 덜고 B씨가 도맡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셈이다.
원심이 양육권을 놓고 실질적 심리를 다하지 못했다고도 지적했다. 판결에 참고한 가사조사관의 조사보고서를 보면 혼인파탄의 책임자를 가리는데 집중했고 양육자 지정을 위한 직접조사는 부족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작은딸은 별거기간 A씨가 양육해왔고 B씨도 권리를 뚜렷하게 주장하지 않아 A씨에게 친권·양육권을 준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양육 상태 변경을 가져오는 양육자 지정에 고려돼야할 요소가 무엇인지, 외국인 배우자의 양육 적합성 판단에 한국어 소통능력이 어떻게 고려돼야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선언한 판결"이라며 "다문화가정 존중과 아동의 복리라는 차원에서 가정법원 양육자 지정에 중요한 원칙과 판단기준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leslie@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