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연로함'이 공소유지 정보?…尹 주장 조목조목 깬 법원
입력: 2021.10.17 00:00 / 수정: 2021.10.17 00:00
윤석열(사진) 전 검찰총장의 징계 사유 중 가장 주목을 받았던 판사 사찰 의혹에 대해 법원이 위법한 정보 수집이라고 판단했다. /이선화 기자
윤석열(사진) 전 검찰총장의 징계 사유 중 가장 주목을 받았던 '판사 사찰' 의혹에 대해 법원이 '위법한 정보 수집'이라고 판단했다. /이선화 기자

징계 취소소송 판결문 보니…"위법성 부정할 수 없다"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법원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핵심 징계 사유인 '판사 사찰' 의혹을 '위법한 정보 수집'이라고 판단했다. 문건 내용을 일일이 언급하며 "공소유지와 무관하고 수집 경위도 부적절하다"라고 조목조목 비판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정용석 부장판사)는 최근 윤 전 총장이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낸 정직 2개월의 징계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청구를 기각했다. 법무부에서 내세운 징계 사유가 대부분 사실이고, 절차상 위법성도 없다는 이유다.

재판부는 특히 '판사 사찰' 의혹을 놓고 공소유지를 위해 이미 공개된 정보를 모았을 뿐이라는 원고 측 해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특정 판사가 편향된 정치적 성향을 가졌다고 오인하도록 악용될 위험성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일선 공판검사가 재판에 제출한 증거자료에서 수집한 정보가 포함되는 등 수집 경위도 매우 부적절하다고 꼬집었다.

137쪽 분량의 판결문을 보면, 윤 전 총장이 검찰총장이던 지난해 2월 작성된 '주요 사건 재판부 분석'이라는 문건에는 국정농단과 사법농단 사건 등을 담당한 재판부는 판결 전력부터 법정 언행, 평판까지 담겼다.

재판부는 문건 내용은 개인정보보호법상 '개인정보'라고 전제했다. 법률상 개인정보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뿐만 아니라 '다른 정보와 결합해 알아볼 수 있는 정보'까지 포함한다. 재판부는 "문건 내 정보는 법적 개인 정보다. 수집 과정에서 정보 주체인 판사의 동의를 받지 않았음도 명백하다"라고 밝혔다.

다만 대검찰청 예규는 범죄 수사와 공소유지를 위해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윤 전 총장 측은 공소유지를 위한 정보 수집은 대검 소관 업무로 문건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공소유지를 위해 불가피한 개인정보, 즉 해당 정보를 수집하지 않고는 공소유지가 불가능한 개인정보가 아닌 경우 수집이 허용되지 않는다"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문건 속 내용을 일일이 지적했다. 문건에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 전임 재판장이던 김미리 부장판사를 놓고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나 합리적이라는 평가'라고 적혔다. 재판부는 "판사가 특정 연구회에 가입한 사정이 공소유지를 위한 불가피한 정보라고 볼 수 없다. 게다가 우리법연구회 출신 판사는 특정 정치적 성향을 가진 것처럼 언론보도가 다수 이뤄진 바 있어 이러한 정보가 수집된 건 더욱 부적절하다"라고 판단했다.

또 다른 판사에 대해서는 양승태 대법원 시절 '물의 야기 법관 리스트'에 포함됐고 전날 과음해 당직 날 심문에 불출석한 적이 있다고 쓰였다. 재판부는 "물의 야기 법관 정보는 (법관) 기피사유 판단을 위해 필요한 정보라고 볼 여지도 있지만 술을 마셔서 영장심사에 불참했다는 부분은 무관하다"라고 봤다. 물의 야기 법관 리스트는 사법농단 사건 재판의 주요 쟁점이다. 재판부는 해당 재판의 공판검사에게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보인다며 "정보수집 경위가 매우 부적절하다"라고 질타했다.

이밖에도 문건에는 대통령과 대학 동문이라거나 대학 시절 농구 실력으로 유명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한 판사에 대해서는 '비고'란에 '연로해 보이는 느낌'이라는 외양 묘사까지 쓰였다. 재판부는 각 내용을 놓고 "이러한 개인정보와 공소유지의 관련성을 찾기 어렵다"라고 꼬집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정용석 부장판사)는 최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낸 정직 2개월의 징계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청구를 기각했다. /이새롬 기자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정용석 부장판사)는 최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낸 정직 2개월의 징계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청구를 기각했다. /이새롬 기자

재판부는 문건 제목부터 등장하는 '주요 사건' 분류 기준에도 의구심을 품었다. 각 판사 정보에도 '주요 판결'이라며 그 판사가 선고한 판결 일부를 소개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전교조 재판 등 '정치적 사건'이 다수다. 재판부는 "해당 판사판결 중 주요 판결을 선정한 기준을 전혀 알 수 없다"라며 "주요 판결에는 민감한 정치적 사건이 다수 포함돼 있고 판결 요지도 임의로 기재됐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해당 판사가 편향된 정치적 성향을 가진 걸로 오인하도록 악용될 위험성이 있다"라고 우려했다.

윤 전 총장 측은 공개된 정보를 모았을 뿐이라고도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문건은 민간에서 작성된 것이 아니라 공권력 행사를 통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국가기관인 검찰에서 작성된 것으로 이미 공개된 정보를 수집했더라도 위법성을 부정할 수 없다"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윤 전 총장이 정보 수집을 지시했다는 증거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원고는 작성완료된 문건을 보고받고도 개인정보를 삭제 혹은 수정하도록 하지 않고 반부패·강력부 및 공공수사부에 전달하도록 지시했기 때문에 검찰총장으로서 직무권한을 행사해 직무 범위를 벗어난 부당한 지시를 한 것"이라며 검사징계법상 징계사유에 해당한다고 봤다.

윤 전 총장 측은 선고 하루만인 15일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윤 전 총장 측 대리인은 선고 직후 입장문을 내 판사 사찰 의혹을 놓고 "주요 사건 공소를 담당하는 검찰의 직무상 필요한 업무 수행으로 이미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적법한 업무수행이었다는 이유로 혐의 없음 결정을 했다"며 1심 판결에 오류가 있다고 반박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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