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 넘보던 '정보검찰', 죽느냐 사느냐
입력: 2021.10.04 00:00 / 수정: 2021.10.04 03:42
고발사주 의혹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입건한 손준성 검사가 논란의 고발장을 쓰거나 전달한 적이 없다고 거듭 부인했다. 2020.12.10. /뉴시스
'고발사주 의혹'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입건한 손준성 검사가 논란의 고발장을 쓰거나 전달한 적이 없다고 거듭 부인했다. 2020.12.10. /뉴시스

중수부서 시작해 총장의 '눈과 귀'로…'고발사주 의혹'에 존폐 기로

[더팩트ㅣ장우성 기자] 이명박 정부 당시 검찰은 미국 중앙정보국(CIA)를 모델로 검찰의 정보활동을 강화하려고 했다. 이 대통령이 2009년 광복절 기념사에서 '지방선거를 앞둔 토착비리 근절'을 천명한 뒤였다. 그 중심에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실(범정)이 있었다.

좀더 거슬러 올라간 1997년 기아사태. 김선홍 기아그룹 회장이 법정관리 수용 요구에도 물러서지 않을 때였다. 대검 중수부는 김 회장을 내사 중이라고 대놓고 언론에 흘려줬다.

"김선홍 회장이 왜 버티는지 혹시 자신이나 주변인물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닌가, 범죄정보과(범정의 전신)에 범죄가 있는지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박순용 당시 대검 중수부장의 공개 발언이었다.

CIA까지 넘볼 정도였던 범정은 12년 후 '고발사주 의혹' 사건을 맞아 후예인 수사정보담당관실이 존폐를 걱정할 상황에 놓였다. 대검 중수부 범죄정보과 출범으로 따지면 26년 만이다. 한마디로 '격세지감'이다.

그동안 경고등은 여러번 켜졌다. 김태정 전 검찰총장은 1999년 중수부 범죄정보과와 공안부의 정보기능을 합쳐 대검에 범정을 설치하고 힘을 실어준 산파였다. "DJ정부가 제2의 중앙정보부를 만들려한다"는 비판에도 개의치 않았다. 대신 옷로비 사건, 조폐공사노조 파업유도 사건 등에 휘말려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기는 했지만 역대 검찰총장 출신 중 유일하게 구속되는 불명예를 남겼다. 그러나 검찰총장들은 '범정'을 경계하는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사실상 애지중지했다. 총장의 '눈과 귀'라는 말은 그래서 나왔다.

대검찰청 자료사진 / 더팩트 DB
대검찰청 자료사진 / 더팩트 DB

범정에 본격적으로 칼을 들이댄 건 문재인 정부였다. 박근혜 정부도 중수부를 폐지하면서도 손을 대지 않았던 범정이었다.

문무일 총장이 2018년 2월 수사정보정책관실로 이름을 바꾸고 주요인물 동향정보 수집기능을 없애 범죄정보 분석에만 집중하도록 했다. 30~40명에서 15명 안팎으로 규모도 줄였다.

그러나 검찰의 직접수사 기능 축소, 대검의 위상 변화 추진에 따라 문제의식은 여전했다. 그 결과물이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 이후 발표된 제2기 법무검찰개혁위원회의 6차 권고안이다. 뼈대는 △수사정보정책관 즉시 폐지와 관련 근거규정 삭제 △서울중앙지검 반부패부 수사정보과·수사지원과 등 폐지 △검찰보고사무규칙 내 관련 조항 개정 등이었다.

그러나 권고는 수용되지 않았다. 당시 권고안에 관여한 한 법무검찰개혁위 위원의 말이다.

"문무일 총장이 규모를 많이 줄였지만 그때 뿐이었다. 수사정보정책관으로 바뀌고 14명이었던 조직이 권고 당시 32명으로 늘어났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관련 훈령이나 예규도 비공개였다. 간접적으로 반론이 들려왔다. 국정원 국내정보 기능도 폐지되고 경찰이 독점하는데 (검찰 정보기능을) 다 잘라내면 어떻게 하느냐. 이제는 (과거처럼 권한을) 남용하지도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당시 범정이 검찰총장의 조직장악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고 한다. 검사와 수사관의 비위·동향정보를 축적해 사건 배당 등에 활용한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사실을 떠나 일선 검사들은 정보를 수집할 수밖에 없는데 그 관할조직을 사실상 검찰총장 직속으로 두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데는 의견이 일치했다.

조국 전 장관의 후임 추미애 장관은 법무검찰개혁위가 낸 권고안을 모두 살펴봤다고 한다. 수사정보정책관 폐지도 추진했다. 그러나 수사정보담당관으로 축소하기로 절충했다.

우여곡절 속에서도 '범정'이 어떻게든 살아남았던 이유는 뭘까. 검찰 안팎에서는 수사를 하려면 정보수집기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검찰이 범죄정보가 없으면 고소·고발 사건 처리밖에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강력한 여론이 존속의 원동력이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이 직접수사 기능을 갖고 있는 한 정보수집기능은 필요하다. 당장 (정보기능을) 없앤다면 검찰이 아예 공소권만 갖도록 하든지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검찰은 6대 범죄에 한해 직접수사를 할 수 있다.

정부여당의 갈짓자 행보도 문제다. 이 교수는 "중대범죄수사청을 만들어 검찰 수사권을 당장 박탈할 것처럼 하더니 (대장동) 특검을 하자니까 이제 검찰 수사를 믿으라고 한다"며 "도대체 검찰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큰 방향이 잡히지 않았는데 (수사정보정책관 같은) 기관 하나 어떻게 한다고 해결이 되겠는가"라고 질타했다.

김남준 위원장(가운데)이 2019년 9월30일 오후 경기도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열린 제2기 법무·검찰 개혁위원회 발족식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더팩트 DB
김남준 위원장(가운데)이 2019년 9월30일 오후 경기도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열린 제2기 법무·검찰 개혁위원회 발족식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더팩트 DB

하지만 '고발사주 의혹'이나 '총장 장모 사건 대응 문건' 등의 논란은 허투루 넘어갈 일이 아닌 것 또한 분명하다. 검찰의 수사정보 관리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조직을 검찰총장이 사적으로 이용할 가능성은 항상 남기 때문이다.

김남준 변호사(전 법무검찰개혁위원장)는 "범죄정보 기관을 대검에 따로 둘 필요는 없다. 필요한 검찰청 단위로 하면 된다"며 "검찰총장이 사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관이 제도적으로 남아있는 한 위험성은 없어지지 않는다. 줄인다고 해도 결국 살아남고 커지는 게 조직의 생리다. 수사-기소-정보를 한 곳에 둬서는 안 된다. 폐지가 근본적 대책"이라고 말했다.

한 법무검찰개혁위 위원은 최근 고발사주 의혹 기사들을 계속 챙겨보면서 권고안을 만들던 2년 전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고 한다.

"그때 위험하다고 추정했던 일들, 이제는 하지 않는다고 했던 일들을 해왔던 것은 아닌가. 아니 그 이상의 일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의문이 든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수사정보정책관실 존폐를 놓고 입장을 밝히겠다고 예고했다.

다만 법무부와 대검 사이 실제 실무 논의는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대검 관계자는 "법무부에서 공식적인 요청을 받은 것은 없다"고 말했다.

박범계 장관은 폐지로 마음이 기울었지만 김오수 검찰총장은 생각이 다른 것으로 전해졌다. 김 총장은 임채진 검찰총장 시절 범정 범죄정보1담당관을 지냈다. 검찰이 직접수사하는 6대 범죄에는 정보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고발사주 의혹' 사건은 '현직검사가 관여한 정황을 발견'한 상태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이첩됐다. 대검 감찰부의 진상조사도 계속 진행 중이다. 판사 사찰 의혹 뿐 아니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장모 사건을 분석한 문건도 2개나 발견됐다. 어디든 수사정보정책관실의 범죄가 확인된다면 30년을 바라보는 '범정'은 역사 속에 묻힐지도 모른다.

lesli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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