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징계권 삭제 8개월…'체벌은 범죄' 인식은 아직
입력: 2021.09.23 00:00 / 수정: 2021.09.23 00:00
생후 16개월 된 입양아 정인이를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한 정인이 양부모 결심공판일인 지난 4월14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 조화가 설치돼 있다. /임세준 기자
생후 16개월 된 입양아 정인이를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한 정인이 양부모 결심공판일인 지난 4월14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 조화가 설치돼 있다. /임세준 기자

'징계할 수 있다' 법조항 사라졌지만 '체벌 필요' 부모 많아

[더팩트ㅣ김세정 기자] 생후 16개월 된 입양아가 양부모 학대로 사망한 '양천 아동학대 사건'이 지난해 세상에 알려졌다. 법정에 선 양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양부는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공분을 부른 이 사건을 전후로 여러 대책이 나왔지만,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은 여전히 들려온다.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발간한 '2020년 아동학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총 3만905건의 아동학대 사례 중 가해자가 부모인 경우는 2만5380건으로 82.1%다. 학대로 사망한 아동은 43명이었다. 지난 1월 민법상 자녀 징계권 조항이 63년만에 삭제됐지만 체벌금지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정 전 민법 915조는 '친권자는 그 자녀를 보호,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 조항은 1958년 민법 제정부터 유지됐지만, 부모의 체벌을 허용하는 뜻으로 오인돼 아동학대의 방어논리가 됐다. 이에 법무부가 추진한 개정안이 지난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한국은 세계 62번째 체벌금지국가가 됐다.

징계권이 삭제된 지 8개월이 지났지만, 체벌이 훈육 방법의 하나라는 옛 인식은 여전하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징계권 조항 삭제 100일을 맞아 지난 4월 발표한 인식 조사 결과 과반수인 50.3%의 부모는 '자녀가 잘못하면 훈육을 위해 체벌해도 된다'고 답했다. 민법상 징계권이 삭제된 사실을 모르는 부모는 66.7%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징계권 삭제는 상징성이 있지만 국민 인식 전환이 급선무라고 지적한다.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 이명숙 대표변호사는 "국가 차원에서 부모가 자녀를 마음대로 징계할 수 없도록 하는 상징적 의미"라며 "친권은 권리가 아니라 아이를 보호하는 의무고, 체벌이나 징계를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아동학대로 재판을 받는 부모들은 '학대의 의미는 아니었다'면서 915조의 논리를 자주 내세웠다. 실제 지난해 여행용 가방에 아이를 가둬 숨지게 한 의붓어머니 A씨도 '훈육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항 삭제는 감형을 노린 아동학대 가해자의 변명이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있다. 다만 학대로 사망이나 중상해에 이를 때나 통상 재판을 받고, 그 외는 적용되기 어려워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명숙 변호사는 "징계권 삭제로 학대 자체가 줄어들거나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단어 하나 바꿨다고 사회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라며 "자녀 인권보호 차원에서 체벌을 하면 안 된다는 인식이 퍼져야 한다. 아이를 존중하고, 인격체로 생각하고 체벌을 하지않는 사회문화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언론에 보도되는 아동학대 사건이 심각한 수준이다 보니 내 행위는 학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부모가 많다"며 "부모가 아이를 훈육하더라도 체벌로 해서는 안 된다. 훈육 수단을 체벌로 하는 분들이 많고, 동의하는 국민도 많아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입양 딸인 정인 양을 수개월 동안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양부모에 대한 선고 공판이 열린 지난 5월, 서울남부지법 앞에 모인 한 시민이 정인이의 액자를 품에 안고 사진을 어루만지고 있다. /이선화 기자
입양 딸인 정인 양을 수개월 동안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양부모에 대한 선고 공판이 열린 지난 5월, 서울남부지법 앞에 모인 한 시민이 정인이의 액자를 품에 안고 사진을 어루만지고 있다. /이선화 기자

징계권 삭제 홍보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 교수는 "62개 국가에서 체벌이 금지됐는데 대부분 국가에서 금지 전 엄청난 논란이 있었다"며 "논란이 있었다면 널리 알릴 기회가 있었겠지만 놓친 면이 있다. 대대적인 홍보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심각한 사건이 발생하면 끊임없이 대책은 발표했다. 대책이 없어서가 문제가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가 대책에 담겨야 한다"며 "체벌은 범죄라는 인식이 자리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법 개정을 주도한 법무부는 특별기구를 설치하는 등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 노력 중이다. 박범계 장관은 지난 1월 인사청문회에서 "정인 양 사건 같은 아동학대 범죄가 끊이질 않는다. 법무부에 아동인권 보호를 위한 특별기구를 만들어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만들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실제 박 장관 취임 이후인 2월 아동인권보호 특별추진단이 출범했다. 법무부는 최근 추진단의 운영 기한을 내년 2월까지로 연장했다. TF를 구성해 아동학대 대응 형사사법체계 전반도 점검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아동학대 대응 형사사법체계를 개선하고 관계기관과 소통·협력을 통한 선진적 아동보호체계를 구축해 아동학대가 근절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sejungki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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