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빌릴 때 채무가 많았다는 이유만으로 변제능력이 없었다고 판단해 사기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더팩트DB |
대법 "신용상태 알았다면 사기로 볼 수 없어"
[더팩트ㅣ장우성 기자] 돈을 빌릴 때 빚이 많았다는 이유만으로 변제 의사가 없었다고 판단해 사기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에 돌려보냈다고 21일 밝혔다.
A씨는 2015년 옛 회사 동료인 B씨에게 2000만원을 빌려 편취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왔다.
1,2심은 A씨가 월수입도 넉넉지 않고 수억원 빚을 지고 있어 돈을 갚을 능력이나 의사가 없었는데도 수천만원을 빌려 적어도 사기죄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며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A씨의 유죄를 인정한 원심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판례상 사기죄 성립은 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돈을 빌려준 사람이 상대방의 신용상태를 알았거나 돈을 돌려받기 쉽지않다는 위험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면, 빌린 사람이 거짓말을 하지 않은 이상 사기죄로 볼 수 없다.
대법원은 피해자 B씨는 A씨와 오랫동안 교류해 경제적 형편을 알고 있었고 꿔줄 당시에도 "돈을 융통할 곳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원래 돈을 갚기로 한 시점이 됐을 때도 B씨는 돈을 갚으라고 독촉하지도, 변제시점을 조정하지도 않았다. 시간이 지나 A씨가 직장을 잃은 뒤에야 독촉이 시작됐다.
A씨에게 2억원가량의 채무가 있기는 했지만 당장 갚아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에 변제 능력이 없다고 볼 수도 없었다.
A씨가 결국 채무를 갚지 못 했지만 돈을 꾼 지 1년10개월 뒤 닥친 실직이 큰 원인이기 때문에 사기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대법원은 "원심판단은 사기죄의 기망행위, 편취의 범위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며 A씨의 상고를 받아들였다.
leslie@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