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의 자유, 시장님 마음대로?…'뜨거운 감자' 감염병예방법
입력: 2021.09.19 00:00 / 수정: 2021.09.19 00:00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6월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감염병예방법 헌법소원 청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 건을 비롯해 헌법재판소에는 10여건의 감염병예방법 관련 헌법소원이 청구돼 있다. /뉴시스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6월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감염병예방법 헌법소원 청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 건을 비롯해 헌법재판소에는 10여건의 감염병예방법 관련 헌법소원이 청구돼 있다. /뉴시스

헌법소원도 '침해 직접성 없다' 각하…"입법부가 나서야"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국내에 상륙한 지 2년을 바라본다. 갖가지 방역 수칙의 법적 근거가 되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도 잇따라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에 오르고 있다.

방역 당국과 지방자치단체장이 감염병 예방을 위해 집합 금지 조처 등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한 49조가 쟁점이다. 법조계에서는 집회·시위의 자유 제한 등 기본권 침해 여지가 있는 만큼 행정·입법부에서 시급히 법을 다듬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헌재 전자헌법재판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1월 20일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뒤 모두 11건의 감염병예방법 관련 헌법소원이 청구됐다. 이 가운데 10건이 49조가 대상이다.

49조는 "질병관리청장,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은 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모든 조치를 하거나 그에 필요한 일부 조치를 해야 한다"라고 규정한다. 대부분 지자체에서 행하고 있는 마스크 착용·시설 폐쇄 명령과 집합 금지 조처 등이 이 조항의 '각 호'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이처럼 현행 감염병예방법은 각종 방역 수칙 마련과 집행을 지자체에 맡기고, 지자체 고시를 어기면 같은 법률 벌칙 조항에 따라 형사처벌하는 구조다.

이러한 '위임 구조'는 각하 결정으로 이어진다. 각하란 청구 자체가 적법하지 않아 본안 판단없이 심판을 종료하는 절차다. 10건 가운데 심리를 마친 4건 모두 헌재의 판단은 각하다. 2건은 청구 취지가 명확하지 않아 각하됐지만 마스크 착용과 출입 명부 작성이 위헌적이라고 주장한 나머지 2건은 '기본권 침해의 직접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각각 각하됐다.

헌재는 각 결정문에서 각하 이유로 "기본권 침해의 직접성이란 법률조항 그 자체로 자유의 제한 등 법적 지위 박탈이 생긴 경우인데 이 사건 심판 청구는 직접성 요건을 갖추지 못해 적법하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마스크 착용·출입 명부 작성을 명령한 건 감염병예방법 49조 자체가 아닌 지자체 고시라 헌재가 판단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지자체 고시로 범죄화

가장 큰 화두는 감염병예방법 49조를 근거로 한 집회 금지다. 집회결사의 자유는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이지만 지자체 고시에 따라 범죄가 될 수 있다. 법이 아닌 고시다 보니 '금지 기준'을 둘러싼 논란도 들끓는다. 원주시는 7월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를 적용하면서 집회 기준에만 4단계로 격상하고 1인 시위만 허용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집회 하루 전에 일어난 일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원주시의 이러한 조처에 "집회·시위에만 4단계를 적용한 건 집회·시위의 자유 등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한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최근 감염병예방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되면서 논란은 더 거세지는 모양새다. 15일 양 위원장의 구속적부심마저 기각되자 민주노총은 입장문을 내고 "코로나를 핑계로 집회와 시위에만 기본권을 제약하는 '코로나 계엄'에 맞서겠다"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6월 양 위원장 구속 건과는 별개 10인 이상 집회를 금지한 서울시 고시는 위헌이라며 헌법소원도 청구한 상태다.

양경수(사진) 민주노총 위원장이 감염병예방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되면서 방역과 집회·시위 자유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뜨겁다. /임영무 기자
양경수(사진) 민주노총 위원장이 감염병예방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되면서 방역과 집회·시위 자유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뜨겁다. /임영무 기자

법조계에서는 집회결사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제한하는 중대한 조항인데도 집행 권한을 지자체장에게 포괄적으로 위임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감염병 종류, 감염 위험 정도에 따라 탄력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어서 (방역 수칙을) 법률로써 미리 규정하는 건 어렵기 때문에 방역 당국이나 지자체장에게 위임한 건 문제라고 볼 수 없다"라면서도 "다만 인원 제한 등 아무 기준 없이 모든 판단을 지자체에 전적으로 맡겨놔 심각한 상황이 아니어도 집회 등을 무조건 제한할 우려가 있다"라고 진단했다.

지자체에 '백지위임'한 조항, 행정·입법부가 먼저 나서야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집회결사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본 중 기본이기 때문에 제한하려면 명확한 요건과 규정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제정돼 있지 않다. 이는 사실상 백지 위임으로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라고 짚었다.

집회 금지도 결국 지자체 고시에 따른 처분이라 '기본권 침해 직접성 부족'을 이유로 각하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헌재가 본안 판단에 들어가 위헌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1년 이상 걸릴 확률이 높다. 헌법소원 청구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각하나 합헌이 아닌 위헌 결정을 받으려면 꼬박 몇 년은 걸린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헌재 판단과 따로 행정부·입법부가 움직여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헌법연구관 출신 노희범 변호사는 "집회 특성상 한 번 제한당하면 불복 소송을 제기해 승소해도 현실적으로 구제되기 어렵다. 입법개선을 통해 명확한 기준과 형평성 있는 조치가 이뤄지도록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라며 "헌재 결정을 기다리면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국민 기본권은 지금 이 시간에도 침해되고 있어서 행정·입법 전문가들이 빨리 나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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