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지법 형사11부(박헌행 부장판사)는 24일 오후 2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업무방해 혐의 등을 받는 백운규(사진)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의 첫 공판 준비기일을 열었다. /이새롬 기자 |
검찰, 수심위 불기소 권고 불수용 뜻 비쳐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월성 1호기 원전 의혹'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첫 재판 쟁점은 까다로운 직권남용죄 법리도, 복잡한 사실관계도 아닌 '공소장 진술'이었다.
검찰은 당장 오늘 공소장 요지를 설명하겠다며 속도를 냈지만 변호인단은 5만 페이지에 달하는 증거기록 열람등사를 마치지 못했다며 반대했다. 검찰은 그동안 백 전 장관에 대한 검찰수사심의위원회 때문에 열람등사를 제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수사심의위원회의 불기소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도 비쳤다. 검찰 수사심의위는 백 전 장관의 배임교사 혐의 추가기소와 수사를 중단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대전지법 형사11부(박헌행 부장판사)는 24일 오후 2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업무방해 혐의 등을 받는 백 전 장관과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등의 첫 공판 준비기일을 열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업무방해 혐의를 받는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도 피고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준비기일은 정식 공판에 앞서 공소사실에 대한 검찰·피고인 양측 입장을 듣고 증거조사 계획을 세우는 절차로 피고인 출석 의무는 없다. 이에 따라 백 전 장관 등 피고인 세 명은 이날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검찰과 변호인은 30분가량 진행된 재판 내내 공소장 낭독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시작은 변호인이 이번 주에야 90여 권, 약 5만 페이지 분량인 검찰 증거기록을 받은 데다 등사 과정만 일주일 이상 소요됐다고 토로하면서부터였다.
변호인 사정을 들은 재판부는 이날 공소사실에 대한 양측 의견을 듣는 건 어렵겠다며 다음 기일에 해당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검찰은 "쟁점 정리를 위해서라도 오늘 공소사실 요지와 기소 취지를 설명해 드리는 게 신속한 재판 진행에 도움 될 거라 생각한다"라며 속도를 냈다.
변호인은 공소장 요지를 검찰만 일방적으로 밝히는 건 부당하다며 반발했다. 공소장일본주의 위반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공소장일본주의란 법관이 피고인에 선입견을 품지 않도록 기타 서류·증거물은 일절 제출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변호인에 따르면 백 전 장관의 공소장은 법원 채택도 이뤄지지 않은 관련자 진술을 길게 나열하는 식으로 구성돼 있다. 변호인은 '진정한 공소장'으로 볼만한 내용은 "맨 마지막 소결, 3페이지뿐"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서원 씨 사건 변호인도 지금과 동일한 주장을 하셨는데 대법원은 공소장일본주의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이 사건 핵심은 청와대·산업부 고위 관계자의 권력 남용으로 범행을 구성하는 공모관계, 범행 경위를 추리고 추려서 작성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양측 공방을 지켜본 재판부는 이날 공소장 의견 진술은 어렵다고 판단해 11월 9일 두 번째 준비기일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으로 먼저 기소된 산업부 공무원 3명의 재판도 맡고 있어 당장 9월에 기일을 잡기 어렵다고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변호인단 모두 고개를 끄덕였지만 검찰은 또 서둘렀다. 9월 중 '특별기일'이라도 잡아 공소사실을 진술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검찰은 "국민적 관심이 지대한 사건이라 최대한 신속하게 진행해야 한다. 재판부 일정이 빡빡하신 건 알지만 특별기일을 지정해서라도 신속하게 공소사실을 인부하고 쟁점을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변호인의 공소장일본주의 위반 지적을 의식한 듯 "변호인께서도 공소장 분석은 이미 다 하신 것 같다. 최소한 공소사실 인부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재판 속행이 다소 늦어지는 대신 11월 9일 하루를 통째로 이 사건 재판에 할애하겠다고 말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모두 6시간 동안 공소사실·증거 인부를 하겠다는 결단이다. 그럼에도 검찰은 "10월에 별도 기일을 지정하면 안 되겠느냐"고 호소했다. 재판부가 "현실적으로 다른 사건 판결서도 작성하고 그러면서 특별기일을 바로 빼기 어렵다"며 고충을 털어놓고 나서야 다음 기일을 둘러싼 논쟁은 일단락됐다.
'월성 1호기 원전 의혹'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첫 재판 쟁점은 까다로운 직권남용죄 법리도, 복잡한 사실관계도 아닌 '공소장 진술'이었다. 사진은 재판이 열린 대전지법 전경. /김성서 기자 |
다음 기일은 정해졌지만 검찰과 변호인은 시간 배분에서도 작은 신경전을 벌였다. 재판부는 재판 말미 "11월 9일 쌍방 변론 시간을 대략적으로라도 배분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지시했다. 이에 변호인은 "검찰 측은 그냥 지금 (변론 시간을) 말씀하시면 되지 않냐. 오늘도 말씀하려고 하셨는데"라고 말했다. 검찰은 "본격적으로 설명하는 절차라면 더 해야 한다. 그래서 정확히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힘주어 말했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이 방대한 만큼 다음 재판 전까지 여유롭게 검토할 수 있도록 쟁점에 관한 의견서를 내달라고 지휘했다. 검찰은 "다음 기일 변호인께서도 (의견서 제출) 미진하지 않고 절차가 잘 진행되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공판이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난 정 사장 측 변호인은 검찰의 '서두름'에 대해 "검찰에서 백 전 장관 배임 혐의 수사와 관련해 심의위에 집중하다 보니 공소를 제기해놓고 저희에게 증거기록을 제공하지 않았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증거기록 열람등사가 늦어져 준비 절차 전반이 밀렸다는 설명으로 풀이된다.
검찰 역시 재판 중 열람등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백 전 장관 심의위 관련 서증이 있어 열람등사를 제한한 건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심의위는 18일 백 전 장관의 배임 혐의에 대해 수사 중단·불기소 권고를 내렸다. 재판부가 최종 입장을 묻자 검찰은 "수심위 권고를 존중하지만 직권남용 혐의가 인정되는 이상 배임도 인정된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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