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는 지난 5일 서울 서초구 민변 사무실에서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소장인 이상희 변호사(왼쪽)와 시민운동가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을 만났다. *이 인터뷰는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진행됐음./남용희 기자 |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5주년…'22년 우정' 이상희·안진걸 소장
[더팩트ㅣ김세정·송주원 기자] "턱없이 모자라고 너무 늦은 수임료이지만 이제서야 조금이라도 내게 됐습니다."
지난달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발신인에 적힌 이름은 참여연대 시절부터 오랜 기간 민변과 인연을 이어온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 총선 낙선운동부터 광우병 촛불시위 등 안 소장이 번번이 법적 어려움에 부닥칠 때마다 민변 소속 변호사들은 팔을 걷고 공익변론에 나섰다. 안 소장은 고마운 마음을 담은 '늦은 수임료' 1000만원을 센터에 기부했다.
센터는 지난 4월21일 출범 5주년을 맞았다. 개별 회원 변호사가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익변론을 맡아오던 민변은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을 위해 2016년 센터를 설립했다. 회비로 운영돼 후원금을 일절 받지 않는 민변과 달리 센터는 시민의 자발적 후원으로 조성되는 '시민변론기금'을 운영한다. 안 소장은 변론기금 기부로 뒤늦게나마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민변의 지원을 잊지 않아 주셔서 감사했어요." 센터의 소장 이상희 변호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더팩트>는 지난 5일 서울 서초구 민변 사무실에서 안진걸 소장과 이상희 변호사를 만났다. 20년 넘게 끈끈한 우정을 이어온 두 사람의 대화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의 첫 만남은 2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안 소장이 1998년 12월 참여연대의 문을 두드렸을 무렵이다.
안진걸 소장이 5일 서울 서초구 민변 사무실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
"제가 참여연대에서 일하기 시작할 때 처음 만났어요. 이 변호사가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단에서 실행위원으로 있을 때죠. 그때만 해도 제가 구속되거나 압수수색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죠. 사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만 해도 권력을 비판해도 연행하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대놓고 수배하고, 참여연대 사무실은 두 번이나 압수수색 당했어요. 그때마다 우리 민변 변호사님들이 도와주셨어요." (안진걸 소장)
시민운동가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마다 민변 변호사들은 발 벗고 나섰다. 2000년 총선시민연대 활동,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등이 대표적이다. 변호사들은 이들이 야간집회로 기소되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해 위헌 결정까지 이끌어냈다.
하지만 안 소장은 한 푼도 안 받고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그들에게 말로만 고맙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전하려고 해도 민변은 후원프로그램조차 없었다. 그런데 유일하게 변론센터는 후원을 '허용'해줬다. 이렇게 마음 한 쪽에 쌓아둔 부담감을 조금 덜어냈다.
"마침 올해 5주년이길래 '더 늦어지면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기부했어요. 사실 수임료대로 기부했으면 몇십억을 내야 하지만. 하하." (안진걸 소장)
센터는 연평균 6000만원 정도의 기금을 사용한다. 각 변론에 50만~200만원 정도 실비만 지원해도 빠듯하다. 안 소장이 전한 변론기금 1000만원은 공익변론 10건을 지원할 수 있는 수준이다. 센터에 상당한 힘이 된다.
이상희 변호사는 지난해 공익인권변론센터에 본격적으로 합류했다. /남용희 기자 |
공익변론을 더욱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센터가 설립됐지만, 재정 문제 역시 무거운 고민이었다.
2016년 민변 설립 30주년을 맞아 공익 소송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진행하자는 뜻을 모아 센터가 설립됐다. 그간 공익변론 변호사들은 자기 시간과 물질적 희생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산더미같은 사건기록 '종잇값'도 만만치않은데 최소한 실비 정도는 지원해야할 필요성도 절실했다.
"공익사건은 주로 사회적 약자가 당사자니까 비용부담이 안 되는 분은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시간도 오래 걸려요. 변호사들이 오히려 나서서 당사자를 설득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최소한의 비용은 센터에서 지원하자는 이유로 출범한 거죠." (이상희 변호사)
센터는 출범 이후 280건의 사건을 맡았다. 변론을 지원받은 시민은 5476명이다. 변호사들이 직접 변론사건을 신청하거나 시민들이 요청한다. 시민단체가 사건을 맡아달라고 요청할 때도 있다. 센터의 사무국에서 사건 기본 쟁점을 정리한 다음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운영위원회로 사건을 보내 변론지원을 결정하는 시스템이다.
센터는 올해 설립 5주년을 맞아 '10대 주요 공익인권변론사건'도 발표했다. 280건 중 중요한 사건들을 골라서 구성한 10대 사건을 놓고 설문조사를 했더니 3위가 검정고시 출신 수험생에게 교대 수시의 문턱을 낮춘 사건, 2위가 국가보안법 위헌 소송 및 재심 사건, 1위가 낙태죄 위헌 결정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을 딱 하나만 꼽아달라는 부탁에 이상희 변호사는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안진걸 소장(왼쪽)과 이상희 변호사가 5일 서울 서초구 민변에서 열린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
최근 안 소장도 센터에 공익변론 사건을 하나 제안했다. 권리금계약서를 안 썼다는 이유로 상가임차인이 억울하게 권리금 1300만원을 한 푼도 못 받은 사건이다.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 재판부는 기각했다.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안 소장이 센터에 사건을 제안하자 3명의 변호사가 팀까지 꾸려 달려왔다.
이 정도 소송은 기본 수임료가 500만~600만원 수준이다. 소상공인이 1300만원 권리금 때문에 그 절반 이상을 변호사 비용으로 쓰기는 엄두를 내기 힘들다. 사회적 약자가 살면서 크고 작은 사건에 휘말릴 때 내 일처럼 여기고 억울함을 풀어주는 변호사, 그들이 모여있는 곳이 센터다.
"공익변론에서 선배 변호사들이 쌓은 노하우를 후배 변호사들이 이어받아야 해요. 그래서 센터가 하는 일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디지털도서관'입니다. 민변이 발간한 자료나 주요사건을 전부 축적해놔요. 일종의 공익소송 인프라를 구축하고 이어주는 가교 역할이랄까요. 후배와 선배 사이, 또 민변과 소송이 필요한 시민 사이를 잇는 것이죠. 저희는 법을 무기로 사회변화에 참여하는 거예요. 전문가로서 지식과 능력을 갖추고 활동할 수 있도록 집중하겠습니다." (이상희 변호사)
*이 인터뷰는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진행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