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친구 증언도, PC 1호도 '정경심 중형' 못 바꿨다
입력: 2021.08.12 05:00 / 수정: 2021.08.12 05:00
정경심 동양대학교 교수가 지난해 7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정경심 동양대학교 교수가 지난해 7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재판부 판단 유보…일부 무죄에도 중형 유지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이상과 같이 확인서 내용이 모두 허위인 이상 동영상 속 여성, 단지 강의만 듣고 있는 여성이 조민인지는 확인서 허위성 여부에 영향이 없어 따로 판단하지 않겠습니다."

"변호인은 자체 포렌식 결과를 근거로 6월 16일 당시 PC 위치나 표창장 작성 과정을 다투고 있지만 이러한 주장은 앞서 나온 증거만으로 다툴 만한 사안이 되지 않는 것으로 따로 판단하지 않겠습니다."

법원이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게 항소심에서도 징역 4년의 중형을 선고하며 한 말이다. 변호인은 10여 년 전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세미나 영상 속 여학생이 정 교수의 딸 조민 씨라는 점을 입증하려 노력했지만 2심 재판부는 판단 대상으로도 삼지 않았다. 또 변호인은 공소사실상 표창장 위조 도구인 컴퓨터 위치를 자택으로 특정할 수 없다며 자체 포렌식 조사를 벌여 결과를 제출했지만 이 역시 판단 대상이 되지 못했다.

법원은 변호인이 영상 속 여학생의 신원·조 씨의 세미나 참석 여부를 따질 동안 2주 동안의 활동 내용을 따졌다. 변호인이 따로 포렌식 조사까지 벌인 컴퓨터 위치와 위조 방법은 법원에 '표창장 위조 사실을 인정하는데 장애가 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처럼 법원과 변호인은 같은 혐의를 놓고 바라보는 곳이 달랐다.

◆변호인이 '세미나 참석' 입증할 때 법원은 '활동 내용' 고심

서울대 세미나는 동양대 표창장과 더불어 입시비리 의혹의 큰 줄기다. 문제의 인턴십 확인서 내용은 조 씨가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에서 주최한 2009년 5월 15일 국제학술회의를 위해 5월 1일~5월 15일 기간 동안 고등학생 인턴으로 활동했다는 것이다. 변호인은 조 씨가 15일 세미나 당일 참석했다는 점을 입증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당시 촬영 영상을 내보이며 영상 속 여학생이 조 씨라는 주장도 했다.

조 씨의 친구 두 명이 최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정 교수가 함께 기소된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나오면서 새 국면을 맞았다. 조 씨와 어린 시절부터 절친했던 박모 씨는 검찰에서 영상을 보자마자 '오래 봐온 사람으로서 조 씨가 맞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고교 동창인 장모 씨 역시 법정 안팎에서 영상 속 여학생은 조 씨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정 교수 재판은 결심 공판까지 마친 상황이었음에도 변호인은 해당 증언 내용을 정리해 재판부에 제출했다.

하지만 친구들의 뒤늦은 증언은 판단 대상도 되지 않았다. 재판부에게 중요한 건 영상 속 여성이 누구인지, 조 씨가 세미나에 참석했는지가 아닌 '확인서 내용이 얼마나 진실한지'였다. 재판부는 조 씨가 세미나를 위해 확인서에 기재된 기간 인턴 활동을 했는지, 또 확인서 발급자로 기재된 한인섭 당시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장 지도를 받았는지를 심리했고 '조 씨는 해당 기간 인턴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재판부는 "변호인은 조 씨와 장 씨가 2008년 가을부터 조 전 장관의 지도를 받아 세미나를 앞두고 스터디를 했던 점을 반영해 2주보다 더 긴 기간을 인턴 활동에 상응하는 학습을 했다고 주장한다"며 "다른 한편으로 변호인은 피고인 부부는 2009년 6월 조 씨가 한 전 센터장에게 과제를 받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함으로써 조 씨가 확인서에 명시된 기간 어떤 활동을 했는지 전혀 밝히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이런 변호인의 주장은 그 자체로 확인서에 기재된 활동 기간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항소심 쟁점이던 PC 위치는 '판단 보류'

1심에서 동양대 표창장 위조 혐의를 둘러싼 쟁점은 정 교수의 문서 작성 능력, 프린터 출력 기능이었다. 각각 정 교수가 표창장을 위조할 만한 능력이 있는지, 가정용 프린터로도 표창장을 인쇄할 수 있는지에 관한 공방이었다. 검찰은 정 교수는 표창장을 위조할 수 있고, 가정용 프린터로도 표창장을 뽑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그 반대였다. 1심은 검찰의 손을 들었다.

항소심에 이르러 떠오른 화두는 정 교수의 문서 위조에 사용된 강사휴게실 PC 1호다. 검찰은 정 교수가 2013년 6월 16일 자택에서 해당 컴퓨터를 사용해 문서를 위조했다고 보고 있다. 반면 변호인은 자체 포렌식을 통해 범행 당일로 지목된 시기에 컴퓨터가 경북 영주 동양대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에게 컴퓨터 위치보다 중요한 건 컴퓨터 속이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해당 컴퓨터의 '백업' 폴더 등에는 표창장을 만드는 과정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파일들이 발견됐다. 파일명은 △총장님 직인.png △총장님 직인.jpg △(양식)상장[1].pdf 등이다. 마지막 수정시각은 공소사실상 범행 날짜와 같은 2013년 6월 16일 오후 4시 20~58분이다. 당시 조 씨의 인적사항과 학년이 정확하게 표시돼 있고, 표창장 가운데 발급자 명의와 총장 직인이 합쳐진 하나의 그림 파일로 삽입된 사실에 비춰볼 때 표창장을 만든 주체도 동양대 직원이 아닌 정 교수로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강사휴게실 PC 1호에 저장된 파일들은 표창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임이 분명하다. 위 파일들을 작성할 때 사용한 PC가 어느 것이든, 작성 장소가 어디이든 간에 피고인이 보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백업해둔 파일 중 하나라는 점에 의문이 없다"며 "수상자인 조 씨의 인적사항이 정확하게 표시돼 있고 발급자 명의·총장 직인 부분이 결합된 하나의 그림 파일로 삽입된 점에 비춰 표창장 재발급을 부탁받은 동양대 직원이 파일을 만들었다는 건 합리적이고 이성적 추론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체적 포렌식 결과를 근거로 PC 사용 위치나 구체적 작성 방법을 다투는 변호인의 주장은 앞서 본 증거들에 의해 위조 사실을 인정하는데 장애가 될 수 없는 것들"이라고 덧붙였다.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공소장이 국회에 제출된 2019년 9월 17일 경북 영주시 동양대학교 정 교수 연구실 앞 복도에 적막감이 돌고 있다. /뉴시스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공소장이 국회에 제출된 2019년 9월 17일 경북 영주시 동양대학교 정 교수 연구실 앞 복도에 적막감이 돌고 있다. /뉴시스

◆사모펀드 혐의 일부 무죄에도 징역형 유지

1심 유죄 판단이 뒤집힌 혐의도 있다. 2018년 1월 군산공장 가동 예정이라는 호재성 정보를 오촌 시조카 조모 씨에게 미리 듣고 2차 전지 개발업체 WFM 실물 주권 10만 주를 사들인 혐의(미공개 중요정보 이용)다. 정 교수는 해당 거래를 통해 2억 2000만 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본 것으로 조사됐다. 법정형이 가장 높은 혐의로 대법원 양형기준상 최대 징역 6년으로 형이 가중될 수 있다.

쟁점은 정 교수의 주식거래 상대방이 공장 가동이라는 정보를 알고 있었는지였다. 1심은 주식거래 상대방을 WFM 최대 주주인 우국환 씨로 봤다. 우 씨는 수사기관 등에서 해당 정보를 알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1심은 우 씨의 증언 등을 토대로 해당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반면 항소심은 정 교수에게 주식을 판 매도자를 우 씨가 아닌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코링크PE)로 판단했다. 코링크PE 실운영자로 지목된 이는 다름 아닌 시조카 조 씨였다. 조 씨는 공장 가동 정보를 정 교수에게 전한 인물이다. 재판부는 이미 같은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 주식을 사들인 행위를 처벌할 수 없다고 보고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부당이득 규모가 큰 혐의에서 무죄 판단을 받으며 벌금은 5억에서 5000만 원으로 대폭 줄었지만 징역형에는 영향이 미미했다. 양형 이유를 보면 재판부는 정 교수가 공직자의 배우자라 미공개 정보를 접할 수 있었고, 정 교수 스스로 이를 의식하고 있었다고 꼬집었다. 코링크PE 직원에게 증거인멸을 지시한 사정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정보 취득 과정에서 고위 공직자의 배우자라는 지위를 적극적으로 내세우지 않았지만, 정보 제공자가 이를 의식하는 걸 알면서 묵인한 측면도 있어 죄책이 가볍지 않다"며 "관련 수사가 진행되자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코링크PE 직원들에게 관련 자료를 없애도록 지시하기도 했다"고 질타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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