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혜 변호사는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동물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분명한 생명이며 생명을 침해하는 행위는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더팩트 DB |
알고 보면 고양이는 오랜 세월 한국인과 가까이 지내 왔다. 조선 19대 왕 숙종은 부왕 현종의 능에 갔다가 노란 털을 가진 고양이를 보고 한눈에 반해 '금덕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애지중지했다. 17대 왕 효종의 딸 숙명공주는 고양이를 워낙 좋아해 부모에게 '네 동생은 (아기 베개에) 수를 놓고 있건만, 너도 고양이말고 남편과 가까이 지내라'는 잔소리를 듣기도 했다. 옛날 신문에서도 이따금 고양이의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고양이는 길거리는 물론 보금자리에서도 학대에 노출되는 등 척박하게 살아간다. <더팩트>는 8월 8일, 국제동물복지기금에서 정한 세계고양이의날을 맞아 그들의 고통을 헤아려 본다. 마지막 편에서는 동물권 보호를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김지혜 PNR 변호사를 만나봤다. <편집자주>
[인터뷰] 김지혜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PNR 변호사
[더팩트ㅣ주현웅 기자] '동물 학대행위를 방지해야 하는 이유는 사회·생태적으로 가장 미약한 존재에 대한 폭력이기 때문이다. 이는 고통을 느끼는 생명체에 대한 존중으로 연결되고, 나아가 우리 사회의 사회적 약자·소수자에 대한 존중과 보호로도 연결될 수 있다.'
지난해 5월 법원이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4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며 밝힌 양형 이유 중 일부다.
김지혜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PNR 변호사가 거듭 읽는 판결문이다. 동물 학대에 따른 처벌이 '솜방망이'에 그쳐온 관행을 깬 판례이자 자신의 생각과도 일치하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지난 5일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동물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분명한 생명이며 생명을 침해하는 행위는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모두가 알지만 현실에서는 외면당하는 진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김 변호사는 "더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동물 학대 관련 상담을 많이 받아요. 그때마다 마음이 아파요. 우리나라에서 동물의 법적 지위는 사물이잖아요. 그러니 동물을 학대해도 마땅한 처벌이 안 이뤄지는데다, 기껏해야 ‘재물손괴죄’로 벌금 정도거든요. 동물도 생명, 상식 아닌가요."
그런데도 힘을 낼 수 있는 바탕은 PNR 동료들 덕분이다. 미국의 동물권 옹호 변호사단체 ‘NhRP’(Nonhuman Right Project)에 영감을 얻어 만든 PNR은 국내 동물권 신장을 위해 변호사 등 여러 전문가가 지난 2017년 설립한 비영리 단체다.
김 변호사는 "단체가 설립된 후 동물권에 관심 있는 변호사, 동물 분야 전문가, PNR의 뜻을 지지하는 시민분들이 계속 늘고 있다"며 "동물권을 위한 소송과 입법 제안 및 교육 등 여러 활동에 계속 활력을 더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지혜 변호사는 최근 입법예고된 동물보호법안은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지혜 변호사 제공 |
최근 법무부는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항을 추가한 민법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김 변호사 역시 이 개정안이 꼭 통과되길 기대한다. 언뜻 법의 문언만 바뀌는 듯 비치지만, 의미와 여파는 동물권 확대에 큰 역할을 할 것이란 게 그의 생각이다.
"예컨대 영화나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강아지. 사람 품에서 잠든 모습이 나왔다면, 촬영장 사람들이 기다려준 끝에 찍은 장면인 걸까요. 마취제 등을 투입해 연출한 사례를 접한 적이 꽤 있어요. 충격이었죠. 동물도 존중받아야 할 생명체라는 인식을 공유했다면 결코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에요."
다만 개정안이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다. 2항에 추가된 문구 때문이다. ‘동물에 대해서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물건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는 내용이다. 김 변호사는 "현재처럼 동물을 물건에 준해 대우할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라며 "보완할 법률이 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즘 김 변호사의 가장 큰 고민은 ‘규제 없는 사설 동물보호소’, ‘기업의 동물실험’, ‘펫숍(pet shop)에서 반려동물 거래’ 문제 해결이다. PNR 차원에서도 입법 제안에 나설 예정이다.
일부 사설 동물보호소의 깜깜이 운영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사설보호소에 들어간 동물들이 분양 갔을 때 후속 조치가 확인이 안 된다"며 "실제로 분양을 제대로 간 건지, 업자한테 간 건지, 안락사가 된 건지 확인할 길이 없다"고 꼬집었다.
동물실험 이야기가 나오자 유독 목소리가 컸다. 김 변호사는 ‘동물대체시험법안 촉진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는 PNR이 ‘러쉬코리아’ 등과 함께 꾸준히 제정을 촉구해 온 법이기도 하다. 동물실험을 일체 금지하고 대안기술 개발과 보급 및 이용 등을 촉진시켜야 한다는 내용이 뼈대다.
"통계로 확인되는 실험동물 수만 봐도 2016년 약 287만 마리에서 2020년 약 414만 마리로 약 44% 증가했어요. 사람에게 필요하다는 이유로 동물의 생명을 침해하는 일은 반드시 지양해야죠. 생명윤리와도 밀접한 영역인데, 정말 많은 분들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반려동물을 상품처럼 진열하고 판매하는 펫숍도 마찬가지다. PNR은 당장 펫셥 관련 규제를 담은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 제출할 계획이다. 동물을 경매장 혹은 번식장 등에서 구입한 다음 판매하는 행위를 제한하고 직접 키웠을 때 분양을 허용하자는 것이다.
"보기 좋게 입양이라고 표현하지만, 결국엔 반려동물을 전시하고 돈을 매겨 사고파는 거죠. 우선 번식장 등에서 인위적으로 동물을 낳는 데 대한 허가제를 도입하고, 궁극적으로는 직접 키운 동물의 분양만 용인되는 게 옳은 방향입니다."
chesco12@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