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재판 '오비이락'…3심 내내 '사법농단'과 묘한 인연
입력: 2021.07.22 05:00 / 수정: 2021.07.22 09:56
징역 2년이 확정된 김경수(사진) 경남지사의 재판은 공교롭게도 2017년 초 드러난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의혹과 궤를 같이했다. /이선화 기자
징역 2년이 확정된 김경수(사진) 경남지사의 재판은 공교롭게도 2017년 초 드러난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의혹과 궤를 같이했다. /이선화 기자

'양승태 키즈'가 법정구속…3심 주심은 재판개입 의혹 당사자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실형이 확정된 김경수 경남지사의 재판에서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건과 묘한 인연이 눈에 띈다. 첫 법정구속, 보석 석방, 실형 확정 등 김 지사 재판에 굵직한 선을 그은 법관들은 사법농단 공소장의 등장인물이었다.

김 지사의 '댓글 조작' 의혹은 2017년 3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경기 파주에 불법 선거사무소가 개설됐다는 제보가 들어오면서 시작됐다. 포털사이트 '네이버' 역시 수사를 의뢰하고 허익범 특별검사가 임명되면서 수사는 본격화됐다. 이 과정에서 김 지사가 드루킹 김동원 씨 일당의 댓글 조작에 관여하고, 지방선거를 도와주는 대가로 일본 센다이 총영사직을 제안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특검은 컴퓨터등장애업무방해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2018년 8월 김 지사를 불구속기소 했다. 김 지사가 처음으로 마주한 재판장은 성창호 부장판사였다. 그는 2019년 1월 김 지사의 댓글 조작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한 뒤 법정구속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역시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10개월·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1심 선고 뒤 김 지사 측은 "재판장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특수관계인 것이 이번 재판에 영향이 있지 않을까 주변에서 우려했는데 현실로 드러났다"며 판결에 반발했다. 성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 인사심의관 등 요직을 거쳐 양승태 전 대법원장 비서실에서 근무해 이른바 '양승태 키즈'로 불렸다.

약 두 달 만에 상황은 급변했다. 2019년 4월 김 지사는 법원의 보석 허가로 석방됐다. 반면 김 지사를 구속한 성 부장판사는 사법농단 연루자로 지목돼 불구속기소 됐다. 재판 업무에서도 배제된 성 부장판사는 같은 해 5월부터 피고인으로 법정에 섰다. 그 역시 첫 재판을 앞두고 '여당 인사에게 실형을 선고해 검찰이 정치적으로 기소한 것'이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내 검찰 기소에 반발했다.

다만 재판에서는 김 지사보다 운이 좋았다. 성 부장판사는 2016년 영장전담 업무를 할 당시 '정운호 게이트' 관련 수사 기밀을 법원행정처에 누설한 혐의를 받았다. 실제로 관련 영장 정보를 상관인 신광렬 당시 형사수석부장판사에게 보고한 사실은 인정됐지만, 실무에 따른 보고로 보인다며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다만 성 부장판사의 2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8부는 "영장 담당 판사의 구체적 행동준칙이 정해진 바 없어 이런 사태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것이 사건의 원인"이라며 "피고인들의 형사책임과 별개로 법원 구성원 모두가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심에서 김경수 경남지사를 법정구속한 성창호(사진) 부장판사는 2019년 3월 사법농단 연루자로 지목돼 불구속기소 됐다. /뉴시스
1심에서 김경수 경남지사를 법정구속한 성창호(사진) 부장판사는 2019년 3월 사법농단 연루자로 지목돼 불구속기소 됐다. /뉴시스

김 지사의 2심을 맡아 보석을 허가한 재판장 역시 사법농단 사태에서 거론됐다. 김 지사의 2심 첫 재판장은 차문호 부장판사였다. 차 부장판사는 양승태 대법원 시절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하는 판사를 설득해달라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부탁을 받고 회유를 시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내용은 임 전 차장의 공소장에 적시됐다. 당시 상고법원 도입은 양승태 대법원의 숙원사업이었고, 차 부장판사가 회유를 시도한 판사는 그의 사촌 동생인 차성안 전 판사(현 교수)였다.

서울중앙지검은 김 지사의 2심 시작을 앞두고 참고자료 형태로 차 부장판사를 비롯한 사법농단 연루 법관 66명의 비위 내용을 대법원에 통보했다. 차 부장판사는 이를 의식한 듯 2심 첫 공판에서 "송구한 마음과 사법 신뢰를 위해 이 재판을 맡고 싶지 않았다"라는 속내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피고인으로서 우려가 된다면 언제든 법관 기피 신청을 하라고 안내하는 한편 "법관이기 전에 사람이라 상처받고 평정심을 잃기도 하지만 이 사건에서는 공정성을 전혀 잃지 않고 재판하겠다"라고 약속했다.

요란한 시작이었지만 차 부장판사는 인사이동으로 김 지사의 2심을 끝맺지 못했다. 후임 함상훈 부장판사는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지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이동원 대법관이 지난해 8월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사법농단 혐의를 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59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이동원 대법관이 지난해 8월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사법농단' 혐의를 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59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김 지사는 상고심에서 또 사법농단 공소장에 등장하는 인물을 마주했다. 주심을 맡은 이동원 대법관은 사태의 '연루자와 피해자 사이'에 껴있는 인물이다. 2019년 3월 대검이 대법원에 통보한 사법농단 연루 법관 66명의 비위 내용을 통보하면서, 참고자료 명목으로 추가 기재한 관련자 10명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이 대법관은 양승태 대법원이 개입한 대표적인 재판으로 꼽히는 옛 통합진보당 행정소송 항소심을 담당했다.

공소사실상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 개입 방식은 담당 재판장 접촉과 문건 전달이다. 이 대법관 역시 2016년 3월 이민걸 당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으로부터 문건을 받았다. 의원직 상실 여부는 법원만이 결정할 수 있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이 대법관은 지난해 8월 임 전 차장의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문건을) 읽지 않았으면 더 떳떳할 텐데 면목이 없다"고 심경을 밝혔다. 다만 문건을 비롯해 어떠한 외부 영향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재판을 마무리했다고 선을 그었다.

이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대법원 2부는 21일 오전 김 지사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김 지사는 관련 절차를 거쳐 수감될 예정이다.

김 지사 재판을 맡은 사법농단 연루자 가운데 유일하게 기소된 성 부장판사 역시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대법원은 사건을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에 배당하고 4월부터 상고 이유와 법리를 검토 중이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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