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지키고 싶다면' 이동재 편지는 협박 아닌 선처 제안
입력: 2021.07.20 05:00 / 수정: 2021.07.20 05:00
강요미수 혐의를 받아온 이동재(가운데) 전 채널A 기자가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후 취재진을 만나 인터뷰 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강요미수 혐의를 받아온 이동재(가운데) 전 채널A 기자가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후 취재진을 만나 인터뷰 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피해자 공포 주장은 '주관적 판단' 배척…1심 판결문 보니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1심 무죄 판결을 받은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의 편지 가운데 피해자가 가장 고통을 호소한 편지는 '4차 서신'이다. 이전 편지에서는 재산 몰수 가능성이 최대치였다면, 네 번째 편지에서는 암 투병 중인 배우자에 대한 처벌 가능성까지 언급됐다. 법원은 이 전 기자가 검찰과의 친분을 악용한 협박성 편지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오히려 검찰 고위층에 피해자의 사정을 전하겠다는 등 선처를 제안한 편지라는 판단도 나왔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 홍창우 부장판사는 강요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전 기자와 채널A 현직 기자 A 씨에게 16일 무죄를 선고했다. 옥중에서 이 전 기자의 편지를 받은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대표가 현실적인 공포심을 느낀 건 인정되지만 검찰에 대한 영향력을 명시적·묵시적으로 언급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다.

이 전 대표가 현실적인 공포심을 느꼈다고 판결문에 적시된 부분은 4차 서신이다. 해당 서신은 이 전 기자가 '제보자 X' 지모 씨와 통화한 뒤 지난해 3월 10일 이 전 대표에게 보낸 편지다. '가족을 지키고 싶으시다면 이는 향후 전략에 따라 어느 정도 가능할 수도 있는 부분, '사모님을 비롯해 가족·친지·측근분들이 다수 조사를 받게 될 것', '예전 수사에서 부실했던 부분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간다는 것이 이번 수사 목표임에 따라 가족분들이 처벌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앞서 이 전 대표는 법정에서 "가장 공포가 현실로 다가온 편지였다. 내가 어떻게 이용당할지 어떻게 진술을 원하는지 등을 전반적으로 다 느낄 수 있어서 공포감이 극대화됐다"라고 증언했다.

법원 역시 "4차 서신은 가장 분량이 많고 내용도 구체적이며, 특히 당시 암 투병 중이던 배우자 처벌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는 점에서 피해자가 공포심을 현실적으로 느꼈을 만한 내용으로 보인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전 기자가 검찰을 사실상 지배하거나 영향을 줄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양 언동했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편지에서 검찰이 아예 언급되지 않은 건 아니다. 해당 편지에는 '저를 비롯한 채널A 법조팀원들은 많은 검찰 취재원을 보유하고 있다', '저는 다년간의 검찰 취재로 검찰 고위층 간부와도 직접 컨택할 수 있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재판부가 주목한 부분은 편지 중반부다. 이 전 기자는 "아쉽게 느끼실 수도 있겠지만 대표님이 검찰과 공식적인 '딜'을 할 수는 없다. 한국에서 플리바게닝은 불법이며,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적었다. 이외에도 '검찰과 함께 진행할 수 있느냐고 말씀 주셨는데 이 말씀은 공식적으로는 어렵다는 답변을 드린다'는 내용도 담겼다. 재판부는 해당 부분을 들어 "(이 전 기자가) 오히려 검찰과의 연결 가능성을 부정하는 언급을 수차례 했다"고 판단했다.

16일 이동재 전 채널A 기자는 무죄 판결 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무리하게 기소됐으나 법원에서 억울함이 밝혀졌다고 밝혔다. 사진은 수사를 담당한 서울중앙지검(왼쪽)과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이새롬 기자
16일 이동재 전 채널A 기자는 무죄 판결 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무리하게 기소됐으나 법원에서 억울함이 밝혀졌다고 밝혔다. 사진은 수사를 담당한 서울중앙지검(왼쪽)과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이새롬 기자

이 전 기자의 편지 내용을 협박이 아닌 '선처 제안'이라고 이해해야 한다고도 봤다. 편지 중 '보도에 발맞춰 검찰 고위층에 대표님의 진정성을 직접 자세히 수차례 설명할 수는 있다'는 내용에 따른 판단이다. 재판부는 '선처 취지'라고 해석하며 "문언적 의미에 비춰 볼 때 이 전 기자가 제보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가족까지 처벌받을 수 있다는 암시를 줬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소사실처럼 취재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검찰 고위층을 통해 무겁게 처벌할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건 피고인에게 지나치게 불리한 방향으로 확장 해석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전 대표가 공포심을 토로한 증언을 '주관적 판단'이라며 배척한 것도 무죄 판결에 작용했다. 이 전 대표는 '2차 서신'을 받은 뒤 "검찰이 목적을 가지고 수사하면 아무리 무죄여도 소명하기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에 또다시 구렁텅이에 빠진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두 번째 편지는 지난해 2월 19일자 서신으로 서울남부지검의 신라젠 수사팀 인력 상황과 재산 몰수 가능성이 언급됐다. 해당 증언을 놓고 재판부는 "이 전 대표의 생각은 사기죄 등으로 징역 12년이 확정된 점 등에 비춰 자신이 종전 사건에서 억울하게 처벌받았다는 주관적인 판단에 기인한 것"이라고 간주했다.

이 전 기자 측은 무죄 판결 직후 "'검언유착' 의혹은 실체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라며 "이성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 지휘로 무리한 수사가 진행됐으나 재판을 통해 억울함이 밝혀졌으니 제보자 X와 MBC, 정치인 사이 '정언유착'은 없었는지 철저히 수사해달라"고 밝혔다.

검찰은 불복에 무게를 두고 항소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서초동의 한 중견 변호사는 "사람을 협박했다는 강요미수죄 사건에서 피해자 심정보다는 가해자가 실제로 검찰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만을 객관적으로 검토한 판결로 보인다"라며 "1심에서 이뤄지지 못한 제보자 X에 대한 증인신문, 관련자 추가 조사 결과가 항소심을 좌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ilraoh@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
인기기사
실시간 TOP10
정치
경제
사회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