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 미수 혐의를 받아온 이동재 전 채널A 기자가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
전·현직 채널A 기자 무죄…첫 의혹 보도 1년 3개월만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검사장과의 친분을 취재에 악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동재 전 채널A 기자가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이 전 기자의 편지로 옥중 피해자가 정신적 압박을 받았다고 인정했지만, 강요미수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름은 '검언유착' 의혹이었지만 '검'과 '언'은 모두 빠지고 피해자의 고통만 남았다.
이 전 기자의 1심 선고는 첫 의혹 보도 약 1년 3개월 만에 이뤄졌다. 이 전 기자는 구속기소 돼 지난해 8월부터 재판받았지만, 그와 유착한 검사로 지목된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수사는 아직 결론도 없다. 한 검사장 수사를 놓고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대립은 극에 달했고, 수사 도중 초유의 '검사 육탄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검'언유착·'권'언유착?…피해자는 "패닉이었다"
검언유착 의혹은 지난해 3월 말 MBC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채널A 기자가 수감자에게 편지를 보내 여권 인사 관련 제보를 해달라며 '협박성 편지'를 여러 차례 보냈다는 것이 골자다. 보도에는 해당 기자가 검찰 고위 간부와의 친분을 과시해 관련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언급했다는 내용까지 포함됐다. 의혹 속 채널A 기자는 이 전 기자와 그의 후배 A 씨, 수감자는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대표다. 이 전 기자 등과 유착한 검찰 간부로는 한 검사장이 지목됐다. 여권 인사는 유시민 사람사는세상노무현재단 이사장인 것으로 조사됐다.
채널A는 자체적으로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조사에 착수했고, 의혹 제기 약 3개월 만에 이 전 기자를 해고했다. 검찰은 같은 해 8월 강요미수 혐의로 이 전 기자를 구속기소 했다. 후배 A 기자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기소 됐다. 한 검사장 역시 수사를 받았지만 기소는 피했다. 지난해 7월 검찰수사심의위원회는 이 전 기자와 한 검사장이 공모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수사 중단·불기소' 권고 결정을 내렸다. 검찰은 압수한 한 검사장 휴대전화 포렌식이 늘어지면서 수사 결론을 아직 내지 못하고 있다. 이 전 기자의 공소장에는 한 검사장과 두 달 동안 327차례 카카오톡을 주고받았다고 적혔지만 공범으로 적시되지는 않았다. 한 검사장은 앞서 이 전 기자에게 이름을 도용당한 피해자라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재판에 넘겨진 이 전 기자는 공익 목적의 정당한 취재로 제보를 강요한 적 없다며 공소사실을 전부 부인했다. 후배 A 기자는 취재 가담 정도도 극히 미미하다고 주장했다. 해당 의혹을 처음 알린 '제보자' 지모 씨가 사전에 MBC 기자와 접촉해 '프레임'을 씌웠다며 "검언유착이 아닌 '권언유착'"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동훈(가운데) 검사장이 5월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정진웅 광주지검 차장검사의 폭행 관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
1심 결과 '검언' 모두 만족한 미소를 지었지만 피해자의 고통은 남았다. 지난해 10월 이 전 기자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이 전 대표는 변호인을 통해 이 전 기자가 편지에서 언급한 검사장이 한 검사장인 걸 알게 됐다며 "남부지검장 정도가 제 상상력의 한계였다. 그런데 이를 뛰어넘어 한 검사장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거의 패닉 상태였다"고 밝혔다. 한 달 뒤 같은 법정 증언대에 선 이 전 대표의 아내는 이 전 기자를 바라보며 "누구나 가족이 가장 소중하고 어떤 어려움에 처할까 두려워하지 않느냐. 그런 가족을 두고 '처벌받을 수 있다'라고까지 말씀하셔서 진짜 두려웠다"라고 말했다.
16일 이 전 기자 등의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은 이 전 대표가 느꼈을 '현실적인 공포심'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 전 기자의 편지 내용을 강요죄 구성요건인 '구체적 해악의 고지'로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 전 기자 등이 검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위에 있고, 취재에 응하지 않을 시 불이익을 주겠다고 명시적·묵시적으로 언급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다만 이 전 기자 등의 행위는 명백한 취재윤리 위반으로 도덕적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질타했다.
◆秋·尹 갈등 불쏘시개…'검사 육탄전'까지
검언유착 의혹은 지난해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사이 갈등의 불쏘시개가 되기도 했다. 의혹이 터진 직후부터 가장 뜨거운 화두는 기자와 접촉한 검사장이 누구인지, 검찰이 '제 식구'를 넘어 고위 간부인 검사장을 상대로 공정한 수사를 할 수 있을지였다. 해당 검사장으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최측근인 한 검사장이 지목되며 의문은 더 커졌다.
추 전 장관과 윤 전 총장의 격돌은 이 전 기자 측이 전문수사자문단 소집을 신청하면서 점화됐다. 추 전 장관은 지난해 6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피의자 측이 전문수사자문단을 요청할 근거가 없고 수사팀이 이의를 제기한 상황임에도 자문단을 꾸린다면 아주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전 기자의 혐의에 대해서도 "언행이 협박에 해당하는지는 단순한 문제로 판례가 충분하다"라며 외부 전문가까지 참여해 자문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
그러나 대검은 이 전 기자 측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에 추 전 장관은 "총장 최측근이 수사 대상"이라며 윤 전 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이후에도 추 전 장관은 검사 술 접대 의혹이 터지자 또 수사지휘권을 발동했고, 같은 해 말에는 윤 전 총장을 직무에서 배제하고 징계를 청구하면서 두 사람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추 전 장관·윤 전 총장이 각각 장관직과 총장직에서 물러나면서 다소 사그라들었지만, 윤 전 총장이 직무배제·징계 청구를 취소해달라며 제기한 행정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다. 징계 취소소송은 19일 첫 변론기일을 앞두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는 물리적 충돌까지 벌어졌다. 검언유착 의혹 수사를 담당한 정진웅 당시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현 울산지검 차장검사)이 지난해 7월 한 검사장의 휴대전화 압수수색에 나섰을 때의 일이다. 정 차장검사는 한 검사장이 증거인멸을 시도한다고 판단해 이를 제지하던 중 함께 넘어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한 검사장은 압수수색에 앞서 변호인 참여를 요청하던 중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서울고검은 지난해 10월 감찰 끝에 정 차장검사를 독직폭행 혐의로 불구속기소 했다. 정 차장검사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은 다음 달 12일 열린다.
ilraoh@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