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광석 배우자에 '악마, 최순실'…하지만 무죄인 이유
입력: 2021.07.16 05:00 / 수정: 2021.07.16 05:00
가수 고 김광석 씨의 아내 서해순 씨 관련 허위사실 유포 혐의를 받는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가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고 법원을 나서며 소감을 밝히고 있다. /남용희 기자
가수 고 김광석 씨의 아내 서해순 씨 관련 허위사실 유포 혐의를 받는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가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고 법원을 나서며 소감을 밝히고 있다. /남용희 기자

이상호 기자, 민사 패소에도 형사 1,2심 무죄…대법 판단만 남아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가수 고 김광석 씨의 사망에 배우자가 연루돼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던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가 최근 항소심에서도 무죄 판결을 선고받았다. 앞서 이 기자는 관련 민사소송에서 패소를 확정받았다. 이미 민사적 책임이 인정된 상태임에도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참여재판 결론 존중해야"

이 기자는 김 씨와 그의 딸의 사망에 배우자 서해순 씨가 깊이 관여됐고, 김 씨의 저작권을 유족에게서 빼앗아 왔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영화 '김광석'을 제작하고, 기자회견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서 지속해서 의혹을 주장해왔다. 서 씨는 이 기자의 허위사실 적시로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민·형사소송을 제기했다.

형사재판 1심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이뤄졌다. 국민참여재판이란 국민이 배심원으로 형사재판에 참여하는 제도다. 이 사건 국민참여재판은 영화 김광석 단축본을 비롯한 증거를 배심원에게 제시하고 4시간 30분가량 증거조사가 진행됐다. 배심원 7명은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내렸고 재판부 역시 이를 받아들였다.

1심 재판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이뤄진 건 항소심에서 득이 됐다. 2심 판결문을 보면 "국민참여재판 배심원의 무죄 평결을 받아들인 원심의 판단은 존중할 필요가 있다"라고 여러 차례 명시됐다. 해당 재판부의 독창적 판단은 아니다. 대법원은 2010년 한 강도상해 사건 상고심에서 "국민참여재판 배심원이 심리 전 과정에 참여해 만장일치 의견으로 무죄 평결을 내리고 재판부 역시 그대로 채택했다면 항소심에서 (1심 판단에) 명백히 반대되는 사정이 나타나지 않는 한 존중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악마'·'또 다른 최순실'이 면죄부 받은 이유

이 기자는 2017년 8월 SNS에 "또 다른 최순실(최서원 씨의 개명 전 이름)을 저는 보았습니다"라고 기재한 혐의(모욕죄)도 받는다. 같은 해 9월 기자회견에서 서 씨를 '악마'라고 지칭한 것도 공소사실에 포함됐다.

재판부는 이러한 표현을 모욕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해당 표현이 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자신의 의견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것일 뿐이라는 이유다. 2003년 한 시청자가 방송에 출연한 교사를 두고 시청자 의견란에 '학교 선생이 자식을 변명의 방패로 쓰다니 정말 대단하다'는 글을 올려 모욕죄로 기소된 사건 상고심 판례를 따른 것이다. 당시 대법원은 "상당히 모욕적 언사"라면서도 "여러 사정을 종합하면 방송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고 강조하던 중 사용된 표현"이라며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해당 판례를 인용하며 "피고인은 김 씨 부녀 사망에 관한 의혹을 해소하고 수사를 촉구하기 위해 글을 게시하고 기자회견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강조하는 과정에서 일부 부적절한 표현을 사용했지만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비판의 한계를 넘었다고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김광석 사망 의혹, 제기할 만하다"

그렇다면 법원은 이 기자의 의혹 제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판단했을까. 1·2심 재판부는 모두 '이 기자가 의혹을 제기할 만했다'고 봤다. 이 기자는 크게 △김 씨의 사인은 타살로 서 씨가 유력한 혐의자라는 점 △김 씨의 딸 사망에도 서 씨가 연루됐다는 점을 주장했다.

김 씨 사망에 서 씨가 연루됐다는 의혹에 대해 재판부는 "피고인은 김 씨 사망 관련 내용을 나름대로 취재한 결과를 토대로 의혹의 핵심인 서 씨의 해명이 충분치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이 사안을 공론화했다"며 "김 씨의 대중음악사적 위치와 영향력을 고려할 때 대중의 공적 관심 사안에 해당한다"고 봤다.

김 씨의 딸 사망을 둘러싼 의혹 제기에 대해서도 1심 재판부는 "서 씨가 딸의 사망 당시 함께 있었고 그동안 사망 사실을 알리지 않거나 숨겨온 것은 사실"이라며 "피고인이 의문을 제기한 시기 역시 공소시효 만료가 임박한 시점으로, 긴급하게 의혹을 제기할 사정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피고인의 표현은 딸의 사망에 서 씨가 가담한 것이라는 의혹 제기에 불과하고 허위성 인식(의혹이 허위라는 인식)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1·2심 재판부는 모두 이 기자가 (가수 김광석 사망) 의혹을 제기할 만했다고 봤다. /뉴시스
1·2심 재판부는 모두 '이 기자가 (가수 김광석 사망) 의혹을 제기할 만했다'고 봤다. /뉴시스


이 기자의 의혹 제기에 대한 민·형사 재판부의 시각이 극명하게 다름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민사 재판부는 이 기자의 의혹 제기가 합리적이지 않고, 서 씨가 큰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며 1억 원의 배상 책임을 확정했다.

같은 사안에 민·형사 판단이 나뉘는 일은 드물지 않다. 가수 김현중이 옛 여자친구와 벌인 소송전에서도 여자친구의 손해배상 책임은 인정됐지만, 형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민사는 개인 사이 과실을 따지고 형사는 범죄 성립과 처벌이 필요한지를 따진다"며 "형사재판은 행위 고의성을 엄격히 따지기 때문에 민사재판과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기자의 명예훼손 등 혐의 사건은 대법원 판단만 남겨뒀다. 검찰은 13일 무죄 판결에 불복해 상고장을 제출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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