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닝페이퍼 보관하는 학생도 있나" 숙명여고 자매 항변
입력: 2021.06.10 00:00 / 수정: 2021.06.10 00:58
서울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 측이 항소심 재판에서 의식의 흐름에 따라 수사해 가능성만으로 유죄 선고를 내렸다며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사진은 2018년 경찰 수사 당시 압수된 시험지 등 증거물들. /뉴시스
서울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 측이 항소심 재판에서 "의식의 흐름에 따라 수사해 가능성만으로 유죄 선고를 내렸다"며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사진은 2018년 경찰 수사 당시 압수된 시험지 등 증거물들. /뉴시스

"가능성만으로 유죄 선고" 1심 정면 반박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교사인 아버지가 유출한 답안으로 공부해 시험을 치른 혐의를 받는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 측이 항소심 재판에서 "의심과 가능성 만으로 유죄 선고를 내렸다"며 1심 판결을 부정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3부(이관형·최병률·원정숙 부장판사)는 9일 업무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쌍둥이 자매의 항소심 속행 공판을 열었다.

이날 공판에서는 검찰 공소사실과 1심 판결에 대한 자매 측 변호인의 의견 진술이 진행됐다. '의심, 가능성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프레젠테이션(PPT)를 준비해 온 변호인은 '경험칙에 반한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 경험칙이란 '일반인들이 통상 행동한다고 여겨지는 것'을 말한다. 변호인은 교사와 학생의 '통상적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답안지를 빼돌려 부정 시험을 치렀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유죄 판결을 선고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이 사건 의혹은 교무부장인 아버지가 시험 답안지를 볼 수 있다는 가능성, 자매가 2학년에 인문·자연계에서 각각 1등을 했다는 의심스러운 성적 향상에서 증폭됐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수사가 진행됐고 재판도 의식의 흐름에 따라 진행됐다"며 이 사건 공소 제기와 재판 과정을 모두 비판했다. 변호인은 또 "(검찰은) 시험지에 의심스러운 흔적을 발견했다며 이를 부정행위와 답안지 유출로 연결해 논리를 전개했고 (법원은) 뭉뚱그려 판결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본격적인 반박은 숙명여고 교무부장이었던 자매의 아버지 현모 씨가 교내 금고에 있는 답안지를 유출했다는 의혹부터 시작됐다. 검찰은 2017년 12월 1~3일 현 씨가 뚜렷한 이유 없이, 즉 공식적으로 초과근무를 신청하지 않고 야근하며 금고 안에 있던 답안지를 유출했다고 본다. 그러나 변호인은 "시험 첫 과목인 수학은 제출 예정일(담당 교사가 답안지를 제출하는 날)이 12월 1일이었지만 4일에 제출됐기 때문에 현 씨가 야근했다는 1~3일에는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다"라고 항변했다.

정황 증거 중 하나였던 '이유 없는 야근'에 대해서도 "검찰과 법원은 현 씨가 특별한 이유 없이 야근했다며 답안지 유출 범행을 의심하는데 경험칙에 반하는 판단"이라며 "일반적으로 공공기관과 사기업 모두 시간외근무수당 지급 문제로 초과근무를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숙명여고 교사들도 초과근무를 신청하지 않고 주말에 근무하는 경우가 다수 있다. 초과근무 신청 없는 시간외 근무는 일상적인 일"이라고 꼬집었다. 교사 등 일선 직장인은 초과근무 신청 절차가 복잡하기 때문에 현 씨처럼 별도 절차없이 야근하는 경우가 통상적이라는 주장이다.

이어 변호인은 "오랫동안 교사로 살아온 아버지가 딸들에게 답을 빼돌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려면 엄격한 사실관계를 파악해야 한다. 단순히 딸이라, 딸을 위해 그렇게 했다는 추정과 의심은 엄중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증거로서 존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변호인은 1심 유죄 증거 가운데 하나인 자매의 '수기 메모장'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표했다. 검찰과 법원은 이를 아버지가 빼돌린 답안지 내용을 적어둔 '커닝페이퍼'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변호인은 "실제 수기 메모장 내용 기재 방식을 보면 이게 커닝페이퍼인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해당 메모장에는 영어 과목의 객관식 문제 답과 서술형 답이 적혀 있는데, 일부 문제는 뛰어넘거나 오답이 적힌 게 상당수라고 변호인은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는 (채점을 위해) 반장이 불러주는 답을 급하게 적은 것이다. 정말 유출된 답안지로 커닝페이퍼를 만든다면 더 효율적으로, 빨리 외울 수 있도록 적었을 것"이라며 "게다가 자매는 이 수기 메모장을 보관하고 있었는데 시험 뒤 커닝페이퍼를 보관하는 부정행위자가 얼마나 있느냐. 이런 건 경험칙에 반한다"고 말했다.

숙명여고 문제유출 사건 수사결과 발표된 2018년 11월 서울 강남구 숙명여고 앞에서 전국학부모단체연합 회원들이 숙명여고 교장, 교사의 성적조작 죄를 인정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숙명여고 문제유출 사건 수사결과 발표된 2018년 11월 서울 강남구 숙명여고 앞에서 전국학부모단체연합 회원들이 숙명여고 교장, 교사의 성적조작 죄를 인정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검찰은 현 씨 부녀가 유출한 답안지로 부정행위를 한 흔적은 매우 많다며 변호인의 주장은 '침소봉대'라고 맞섰다.

검찰은 "강남 유수의 고등학교는 한 번 성적이 형성되면 거의 변함이 없는데 두 딸의 성적은 매우 이례적으로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 의혹이 불거지자 성적히 급하락하기도 했다"며 "내신과 모의고사 성적도 매우 상이한 사실 등 움직일 수 없는 정황 사실을 배제한 변호인 주장은 일종의 침소봉대"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법정 변호사를 비롯해 검사, 판사는 학창 시절 나름대로 최고 성적을 받은 수재들"이라며 "피고인들 입장은 안타깝지만 변호인 주장은 대단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숙명여고 학생이었던 자매는 2017~2018년 모두 네 차례의 숙명여고 교내 정기고사에서 아버지가 반출한 전 과목 시험의 정답을 받아 시험에 응시해 학교 성적 평가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자매의 아버지는 당시 학교 교무부장이었다.

당시 자매 중 한 명은 459명 중 121등에서 인문계 1등으로, 또 다른 한 명은 전체 59등에서 자연계 1등으로 올라선 것으로 조사됐다.

자매는 '실력으로 성적이 오른 것일 뿐'이라며 재판 내내 혐의를 전면 부인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8월 1심 재판부는 자매에게 각각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240시간을 명령했다.

검찰과 자매 측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했다.

앞서 대법원은 자매의 아버지 현 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은 각 정기고사 과목 답안 일부 또는 전부를 딸들에게 반출하고, 딸들이 그와 같이 입수한 답안지를 참고해 정기고사에 응시했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 항소심 공판은 다음 달 23일 오후 2시에 이어진다. 해당 공판에서는 자매에 대한 피고인신문이 진행될 예정이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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