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2일 오전 첫 공판준비기일이 열리는 유시민 이사장의 재판 쟁점은 '발언 대상이 누구인지'와, '의혹 입증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남용희 기자 |
22일 서울서부지법서 첫 재판…'발언 대상'부터 다툴 듯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라디오 방송에서 허위 발언을 해 한동훈 검사장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첫 공판준비기일이 오는 22일로 정해졌다.
유 이사장의 재판 쟁점은 '발언 대상이 누구인지'와, '의혹 입증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유 이사장은 지난해 7월 24일 MBC 라디오 '시선집중'에 출연해 한 검사장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받는다. 유 이사장은 당시 프로그램에서 '2019년 11월말에서 12월 초순쯤 '한 검사장이 있던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 쪽에서 노무현재단 계좌를 봤을 가능성이 높다'고 발언했다. 계좌 사찰 의혹이라는 허위 사실을 유포해 한 검사장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 이사장의 당시 발언을 뜯어 보면 한 검사장 개인이 아닌 대검 반부패강력부라는 검찰 조직에 대한 의혹 제기라는 해석도 있다.
지난 1월 유 이사장이 발표한 사과문에 한 검사장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점도 눈에 띈다. 유 이사장은 당시 사과문에서 "사실이 아닌 의혹 제기로 검찰이 저를 사찰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불러일으킨 점을 검찰의 모든 관계자들께 정중하게 사과드린다"라며 사과 대상으로 한 검사장이라는 특정 인물이 아닌 검찰 전체를 지목했다.
이에 따라 재판 과정에서는 유 이사장의 발언이 한 검사장이라는 특정 인물에 대한 의혹 제기인지, 아니면 검찰이라는 공공기관에 관한 것인지를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의혹 제기 대상, 한동훈 개인인가 검찰 조직인가
만약 유 이사장의 발언 대상이 검찰 조직으로 인정된다면 유 이사장에게 유리하다. 대법원 판례상 대검 같은 국가기관에 대한 의혹 제기는 일부 사실이 아니어도 공익 목적을 인정해 '면죄부'를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1년 9월 대법원은 미국산 소의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해 정운천 당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 'PD수첩' 제작진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당시 대법원은 PD수첩의 보도를 놓고 일부 허위를 인정했지만 "국민의 먹을거리에 대한 정부 정책이라는 공공성·사회성을 지닌 사안을 대상으로 한 보도로 공직자들의 명예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데다 악의적 공격으로 보이지 않는 점 등을 감안하면 제작진을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정부 또는 국가기관은 항상 국민 감시와 비판 대상이 돼야 하며 형법상 명예훼손죄 피해자가 될 수 없다"고도 판시했다.
법원이 유 이사장의 발언 대상을 한 검사장으로 보더라도 쟁점은 남는다. 한 검사장을 어느 정도의 의혹 제기는 감수해야 하는 공적 인물로 볼 것인지, 유 이사장의 의혹 제기에 한 검사장의 명예를 실추시킬 고의성이 있었는지다. 서초동의 한 중견 변호사는 "공공기관이 민간인을 사찰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공인의 이름을 거론한 사건을 민사도 아닌 형사소송에서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검찰이라는 국가기관에 대한 의혹 제기를 너머 한 검사장 개인을 비방할 목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엄격히 증명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유 이사장에게 면죄부를 줄 정도로 한 검사장이 '공적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익명을 요청한 또 다른 중견 변호사는 "명예훼손 대상이 공인이라면 면죄부를 받는 것이 우리 법원 동향"이라면서도 "대통령이나 국가기관장이 아닌 간부 개인을 '공인'으로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내다봤다.
라디오 방송에서 허위 발언을 해 한동훈(사진) 검사장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재판이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이동률 기자 |
◆조국-우종창, 이내창 사건 재판이 주는 교훈
유 이사장은 사과문 앞머리에서 "누구나 의혹을 제기할 권리가 있지만, 그 권리를 행사할 경우 입증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저는 제기한 의혹을 입증하지 못했다"라며 "그 의혹은 사실이 아니었다고 판단한다"라고 썼다. 의혹을 제기했지만 입증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사과문에서는 의혹을 제기하고도 입증하지 못했다고 책임을 인정했지만, 재판에서는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사실 확인을 위해 충분히 노력했음에도 입증하지 못했다면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국정농단' 사건 담당 판사와 부적절한 식사 자리를 가졌다는 의혹을 제기한 혐의로 기소된 우종창 전 월간조선 편집위원은 명예훼손 혐의로 항소심에서도 유죄를 선고받았다.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우 씨가 이러한 내용의 제보를 토대로 의혹을 제기한 뒤 사실 확인을 위해 얼마나 '진지한 노력'을 했는지 살폈다. 그러나 심리 결과 우 씨가 폭로 뒤 법원 공보판사에게 취재협조문을 보냈을 뿐이라고 판단한 재판부는 "사실 확인을 위한 진지한 노력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을 내렸다.
우 씨의 판결문에서 엿볼 수 있는 명예훼손죄의 쟁점은 또 있다. 피고인이 의혹 제기 당시 그 내용을 진정 사실로 인식하고 있었는지다. 재판부는 △우 씨가 의혹 제기 순간에도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발언한 점 △유명 언론사에서 20년가량 기자 생활을 하고도 신원미상 제보자의 말만 듣고 의혹을 제기한 점 등에 비춰 자신이 제기한 의혹이 허위임을 인식했다고 판단했다.
반대로 허위사실이라도 의혹 제기 당시 그 내용이 사실임을 확신했다면 처벌할 수 없다는 판례도 있다. 이내창 중앙대 안성캠퍼스 총학생회장 의문사 사건을 두고 '고인이 사망 직전 안기부 요원과 동행했다'는 허위 내용을 보도한 혐의로 기소된 한겨레 기자 A 씨는 "기사 내용을 진실이라고 믿고 보도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1994년 무죄를 확정받았다. 당시 A 씨는 안기부 추적대상에 오른 끝에 거문도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이 씨의 사망 경위를 취재 중이었다. 그는 안기부 직원 B 씨가 여수에서 거문도로 가는 배에 탑승해 이 씨와 동행하는 걸 봤다는 목격자의 증언을 듣고 문제의 기사를 보도했다. A 씨의 기사 가운데 안기부 직원의 동행을 제외한 다른 내용은 모두 사실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판례를 종합할 때 유 이사장 역시 의혹 제기 당시 그 내용이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사정이 있었는지가 관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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