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치는 검찰…"기억 없다"는 '이재용 문건' 작성자
입력: 2021.06.04 00:00 / 수정: 2021.06.04 00:00
서울중앙지법 형사25-2부(박정제·박사랑·권성수 부장판사)는 3일 자본시장법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부정 거래행위·시세조종)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삼성 관계자 10명에 대한 네 번째 공판을 열었다. /남용희 기자
서울중앙지법 형사25-2부(박정제·박사랑·권성수 부장판사)는 3일 자본시장법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부정 거래행위·시세조종)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삼성 관계자 10명에 대한 네 번째 공판을 열었다. /남용희 기자

증인신문 3회만에 주신문 마무리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이른바 '프로젝트G' 문건을 작성한 전 삼성증권 팀장이 세번째 증인신문에서도 작성 지시자 등 핵심 질문에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일관하거나 모호한 증언만 되풀이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2부(박정제·박사랑·권성수 부장판사)는 3일 자본시장법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부정 거래행위·시세조종)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삼성 관계자 10명의 네 번째 공판을 열었다.

지난 공판에 이어 이날도 전 삼성증권 기업금융팀 팀장 한모 씨의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한 씨는 프로젝트 G 문건 작성자로, 검찰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골자인 이 부회장의 승계 작업에 관여한 인물로 본다.

검찰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공표된 뒤 상황을 집중적으로 신문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합병 공표 뒤 엘리엇 매니지먼트 등 삼성물산 주주가 반대하자, 이 부회장 등은 합병 정당화를 위한 명분과 논리를 개발하는 등 대응 전략을 짰다.

한 씨는 엘리엇 매니지먼트에 대응하는 문건을 만들기 위해 미래전략실과 논의했다는 사실을 시인했지만 누가 지시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미래전략실 요청으로 문건을 작성했냐는 검사의 질문에 한 씨는 "요청이 있어서 검토했을 것 같기는 한데 그게 미래전략실이었는지 모르겠다. 회사(삼성물산)였을 수도 있고 미래전략실이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답했다.

누구에게 작성 요청을 받았고 작성한 뒤 누구에게 보고했냐는 질문에도 "여러 곳에서 논의했다. 미래전략실, 회사에서도 했고 여러 논의를 했다"며 "처음 누가 (작성을) 요청했는지는 기억 안 난다"고 대답했다.

검찰은 합병에 부정적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보다 많은 의결권을 확보하기 위해 삼성물산 스스로 자사주를 매각하거나 엘리엇 매니지먼트에 부정적인 여론을 조장했다고 보고 있다. 이날 검찰은 이러한 아이디어의 출처를 물었으나 한 씨는 "명확하지 않다"면서도 "삼성물산이 우호적인 의결권을 확보하기 위해 매각을 충분히 생각할 수 있었을 것 같고 외부에서 기사도 많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에 검찰은 '답변을 명확히 해달라', '증인 기억에 누군가의 아이디어로 만든 방안인가'라고 추궁했다. 한 씨는 "우리(삼성증권)도 당연히 생각할 수 있었던 안"이라며 "다만 외부 얘기로 아이디어를 넣은 건지, 우리만의 아이디어였는지 기억 안 난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 부회장의 승계를 위해 그의 지분이 많은 제일모직의 기업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한편, 삼성물산의 가치는 낮게 평가되도록 했다고 의심한다. 이날 공판에서 검찰은 '삼성물산은 망가지는 회사'라는 내용이 담긴 한 씨의 이메일을 그 근거로 제시하며 표현의 출처를 물었으나 한 씨는 "정확하게 어떻게 됐는지는…너무 오래돼서 (기억 안 난다)"라고 답했다.

검찰이 "증인이 쓴 이메일이다"라고 몰아세우자 한 씨는 "계속 주가가 빠지고 사업 상황이 좋지 않다는 전체 상황을 제가 너무 간단하게 압축적으로,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른바 프로젝트G 문건을 작성한 전 삼성증권 팀장에 대한 증인신문이 지난달 초부터 총 세 차례 이뤄졌지만, 작성 지시자 등 핵심 질문에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일관하거나, 모호한 증언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덕인 기자
이른바 '프로젝트G' 문건을 작성한 전 삼성증권 팀장에 대한 증인신문이 지난달 초부터 총 세 차례 이뤄졌지만, 작성 지시자 등 핵심 질문에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일관하거나, 모호한 증언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덕인 기자

한 씨는 이 부회장 등의 자본시장법 위반 사건 첫 증인이다. 지난달 6일부터 격주 열리는 재판에 증인 출석해온 한 씨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를 넘겨 진행되는 재판에서 '마라톤 증인신문'에 임하고 있다.

지난달 6일 첫 증인신문에서 한 씨는 프로젝트G 문건 작성 경위를 묻자 "프로젝트G에서 G는 '지배구조'(governance)에서 따왔으며 삼성그룹 지배구조를 어떻게 개선할지 아이디어를 모아 정리한 문건"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20일 프로젝트G의 '업데이트 버전'인 '지배구조 조정 검토' 문건이 추가로 제시되면서 증언은 모호해졌다. 검찰은 2014년 7월 이건희 회장의 건강이 악화돼 승계 작업을 본격화할 필요성이 생기자, 미래전략실이 한씨에게 기존 프로젝트G 문건을 토대로 이 문건을 작성하도록 지시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한 씨는 작성 경위와 배경을 묻는 검찰의 질문에 "당시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요청에 따라 문건을 작성한 것 같다. 이런 것을 검토할 때는 미래전략실과 대응했다"라면서도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문건에는 상속세 재원 조달 건이 △이 부회장의 1인 승계 △이 부회장·이부진 호텔신라 회장·이서현 삼성공익재단 이사장 등 삼남매가 모두 상속받는 경우로 구분됐다. 법정 상속 시 이 회장과 이 이사장이 삼성전자 지분을 취득한다고도 적혔다.

이를 두고 검찰은 '왜 주요 변수로 기재했느냐'고 물었지만 한 씨는 "배경은 잘 모르겠다.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하기 위해 가정하고 검토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약 한 달가량 진행된 한 씨에 대한 검찰 측 주신문은 이날 공판에서 마무리됐다. 이날 재판 말미 막 시작된 변호인 측 반대신문은 다음 재판부터 본격화될 전망이다.

이 부회장 등은 경영권 승계 작업의 일환으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 등으로 지난해 9월 기소됐다. 구체적으로는 자본시장법상 부정 거래 행위 및 시세 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가 적용됐다.

다음 재판은 10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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