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연구직 행정직 발령…야근 다음날 산책 중 숨져
입력: 2021.05.10 06:00 / 수정: 2021.05.10 06:00
고용노동부에서 정한 근무시간을 넘기지 않더라도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질환으로 사망했다면 산업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새롬 기자
고용노동부에서 정한 근무시간을 넘기지 않더라도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질환으로 사망했다면 산업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새롬 기자

법원 "업무시간 고시, 구속력 없다"…산업재해 인정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고용노동부에서 정한 근무시간을 넘기지 않더라도 업무상 스트레스에 따른 질환으로 사망했다면 산업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이종환 부장판사)는 한 연구소 직원 A 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 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한 연구소에서 22년간 연구개발 업무를 해온 A 씨는 2019년 4월 주말에 산책 중 쓰러져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사망했다. 직접 사인은 대사성 산증(체네 산성이 증가하는 질환)으로, 다발성 장기부전과 심근경색 등도 진단받았다.

유족은 A 씨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유족 급여 등 지급을 청구했으나, 공단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의를 거친 결과 "원고에게 급성 심근경색을 일으킬 만한 업무상 부담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워 업무상 관련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부지급 처분했다.

이에 유족은 공단의 부지급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유족은 재판 과정에서 "고인은 1996년부터 22년 동안 연구개발 업무를 수행하다 2018년 팀장으로 보임돼 생소하고 다양한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급성 심근경색이 발병하기 하루 전까지도 과다한 업무를 수행했다"며 "이러한 업무는 고인에게 큰 부담과 스트레스를 줬고 급성 심근경색은 과로와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유족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고인은 22년 동안 연구개발 업무를 수행하다가 사망하기 10개월 전부터 예산과 인사, 보안, 기술기획 업무를 총괄하게 됐다"며 "고인은 그 전에 담당하지 않던 생소하고 방대한 각종 행정업무를 맡게 됐고, 대외기관까지 상대해야 하는 업무도 다수 있어 연구개발만 해오던 고인으로서는 상당한 부담과 스트레스를 느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A 씨는 사망 직전 기존 조직을 이전·분할하는 조직재구조화 업무를 맡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고인은 조직원의 불만과 반대를 조율하며 지휘부 정책을 관철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거센 항의를 받는 등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결국 고인은 발병 전날까지 조직재구조화 업무를 마무리하기 위해 팀장급 간부직원임에도 2시간 26분 동안 초과근무를 해 작업을 마쳐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업무 관련 스트레스를 겪으며 과중한 업무를 수행한 점은 고인의 급성 심근경색 발병에 상당한 영향을 줬다"고 판단했다.

또 재판부는 "고인이 쓰러진 채 발견된 산길은 가벼운 운동을 겸한 나들이 장소로 적당하다고 소개된 곳으로, 고인 역시 평소 자주 다녔던 길로 보인다. 산행 자체로 심근경색을 일으킬 정도의 중대한 신체적 부담을 주는 활동으로 볼 수 없다"고 봤다.

이 사건의 또다른 쟁점은 고용노동부 고시에 규정된 업무시간이었다. 고용노동부는 주 평균 60시간 이상 근무할 시 심장 질병이 발병할 수 있다고 고시한다. A 씨는 생전 주 44~46시간가량 근무했고, 사망 전날에는 약 10시간 일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이 고시는 업무상 질병을 인정하는데 필요한 사항에 불과해 대외적 구속력을 가지는 법규라 할 수 없다"며 "고인의 업무시간이 고시가 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해도 그 사유만으로 고인의 사인이 업무상 질병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단정하면 안 된다"고 판시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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