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진당 재판 종착역…개운치 않은 '사법농단'의 그늘
입력: 2021.05.02 00:00 / 수정: 2021.05.02 08:17
2014년 헌법재판소 정당 해산 결정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옛 통합진보당 김미희(왼쪽부터), 김재연, 오병윤, 이상규 전 의원이 29일 오전 국회의원 지위확인 소송에서 최종 패소 판결을 들은 뒤 서울 서초구 대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2014년 헌법재판소 정당 해산 결정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옛 통합진보당 김미희(왼쪽부터), 김재연, 오병윤, 이상규 전 의원이 29일 오전 국회의원 지위확인 소송에서 최종 패소 판결을 들은 뒤 서울 서초구 대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법원행정처 개입에 재판 독립성 침해…상고심도 희비 교차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이현숙 옛 통합진보당 전북도의원이 지위 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최종 승소했다. 헌법재판소의 정당해산 결정이 난 지 햇수로 7년, 이에 따른 도의원직 퇴직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지 6년 만이다.

헌재 결정으로 '의원직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낸 건 이 전 의원만이 아니었다. 전국의 통진당 의원들은 일제히 지위 확인 소송을 법원에 접수했다. 이 통진당 소송 건들은 '양승태 대법원'이 부당하게 개입한 것으로 조사된 대표적인 재판이다. 2017년부터 불거진 '사법농단' 사태의 한 축인 셈이다.

◆대리인은 부끄럽고 당사자는 의심스럽다는 하급심

양 전 대법원장 등은 대법원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헌재 결정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재판에 개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통진당 소송의 경우 헌재가 의원직 상실을 결정했지만 그 권한은 헌재가 아닌 법원에 있다는 점을 못박으려 했다는 것이다. 이 전 의원의 소송 역시 이렇듯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재판 중 하나였다.

이 전 의원은 2014년 12월 헌재 결정으로 의원직을 잃자, 이듬해 1월 전주지방법원에 전라북도를 상대로 퇴직처분 취소 등을 구하는 소송을 냈다. 법원행정처는 담당 재판장이었던 방창현 부장판사와 사법연수원 동기 사이인 심의관을 통해 '각하가 아닌 본안 판단을 하라'는 취지로 재판에 개입했다. 방 부장판사는 2015년 9월 16일로 예정된 판결을 같은 해 11월 25일로 변경하고 원고 청구를 인용했다. 법원행정처는 재판부 심증을 미리 파악한 '통진당 비례대표지방의원 행정소송 예상 및 파장 분석' 등의 문건을 생산해 윗선에 보고했다.

과정이 어찌 됐든 이 전 의원은 재판에서 이겼지만, 승소 판결이 나오기까지 자신의 소송에 대법원이 개입했다는 사실은 몰랐다. 5년 뒤 사태의 '행동대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2020년 7월 21일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이 전 의원은 불쾌함을 드러냈다. 그는 "정치적으로 좌지우지됐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 분노했다. 시민으로서 과연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을까 의심이 들게 했다"고 증언했다.

이날 재판에는 당시 이 전 의원의 법률대리인이던 이재화 변호사도 증인으로 나왔다. 이 변호사는 법률가로서 선고가 두 달이나 미뤄지자 '법적 고려 외의 고려'를 하고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소장과 입증 자료 등이 법원행정처로 넘어간 정황을 듣고 "재판부만 봐야 하는 자료인데 (법원행정처로 보고된 건) 명백한 법관 독립 침해"라고 지적했다. 자신의 이름도 등장하는 법원행정처 내 재판 개입 문건을 보고는 "여의도, 국회에서 비서실장이 전략실에서나 쓰는 문건이지 법적인 문건이 아니다. 법률가로서 부끄럽다"고 말했다.

이현숙(왼쪽에서 다섯번째) 전 통합진보당 전북도의원은 2015년 1월 7일 오전 전북 전주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중앙선관위의 퇴직 결정에 대해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및 지방의회 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뉴시스
이현숙(왼쪽에서 다섯번째) 전 통합진보당 전북도의원은 2015년 1월 7일 오전 전북 전주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중앙선관위의 퇴직 결정에 대해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및 지방의회 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뉴시스

◆현직 대법관까지 증인으로 불렀던 재판

피고 전라북도의 불복으로 진행된 항소심 재판은 광주고법 전주재판부 행정1부에서 심리했다. 당시 재판장은 노정희 대법관이었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노 대법관은 재판 마무리를 앞둔 2016년 3월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양형실장·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에게 '본안을 판단한 원심판결을 유지하라'는 내용의 법원행정처 문건 등을 전달받았다. 노 대법관은 같은 해 4월 피고 측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판결을 유지했다.

노 대법관은 사건 당사자인 이 전 의원의 증인신문이 진행된 지 약 두 달 만에 같은 재판 증인으로 나왔다. 노 대법관은 이 전 양형실장 등과 2016년 3월경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문건을 받아 읽은 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이 전 양형실장이 통진당 소송 이야기를 꺼내긴 했다고 기억했다. 노 대법관은 "지방 근무는 어떠냐는 등 일상적 안부 인사를 나눴고, 국회의원과 지방의회 사건은 주요 쟁점이 다르다는 식의 가벼운 얘기를 했다"면서도 "사건을 구체적으로 얘기하는 건 부적절하다 생각했고, (이 전 양형실장이) 먼저 사건 얘기를 꺼내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노 대법관에게 연락을 취한 두 사람은 '사법농단 첫 유죄' 판결을 선고받은 피고인들이다. 다만 노 대법관에 연락을 취한 행위는 유죄로 판단되지 않았다. 노 대법관이 문건을 받은 적 없다고 증언했을뿐더러, 이들의 연락으로 판결이 바뀌는 등 조작되지 않았다는 이유다. 1심 재판장이었던 방 부장판사도 이들과 함께 기소돼 재판을 받았지만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 심증을 법원행정처에 누설한 것은 사실이지만 추상적인 내용에 불과해 공무상비밀누설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이유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2020년 7월 21일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이현숙 전 통합진보당 의원은 정치적으로 좌지우지됐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 분노했다. 시민으로서 과연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을까 의심이 들게 했다고 증언했다. 사진은 2018년 10월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한 임 전 차장의 모습. /임세준 기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2020년 7월 21일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이현숙 전 통합진보당 의원은 "정치적으로 좌지우지됐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 분노했다. 시민으로서 과연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을까 의심이 들게 했다"고 증언했다. 사진은 2018년 10월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한 임 전 차장의 모습. /임세준 기자

승소지만 '정치적으로 좌지우지된', '의심이 들게 한' 판결은 29일 대법원에서도 확정됐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29일 이 전 의원이 전라북도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한 원심을 확정했다. 헌재의 통진당 정당 해산 결정이 지방의회 비례대표 의원의 당연 퇴직 사유가 될 수 없다는 판단이다.

대법원은 이 전 의원의 옛 동료들 손까지 들어주지는 않았다. 대법원 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같은 날 김미희·김재연·오병윤·이상규·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이 국가를 상대로 낸 국회의원 지위 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모순되게도 이들의 1심을 맡은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반정우 부장판사)는 "이들의 의원직 상실은 헌재가 헌법 해석·적용에 대한 최종 권한으로 내린 결정으로, 법원은 이를 다투거나 다시 심리·판단할 수 없다"며 소송을 각하했다. 법원행정처 입장에 정면으로 반하는 판결로, 2심에 이어 상고심에서도 이러한 판단이 유지된 것이다. 반 부장판사의 근무 평정에는 "일부 사건에서 객관적인 여러 사정 검토가 부족한 채 자신의 주관을 강하게 반영했다고 보이는 경우가 있음" 등의 인색한 평가가 달린 것으로 조사됐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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