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상대 위안부 손배 각하…피해자 측 "법원, 왜 있나" (종합)
입력: 2021.04.21 12:45 / 수정: 2021.04.21 12:45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진행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국내 법원에 제기한 두 번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 공판이 끝난 후 이용수 할머니가 법원을 나서고 있다. /남용희 기자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진행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국내 법원에 제기한 두 번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 공판이 끝난 후 이용수 할머니가 법원을 나서고 있다. /남용희 기자

1월 판결과 상반…"행정·입법 정책 선행돼야"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두 번째 소송에서 법원이 "외국의 주권적 행위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며 소 각하 판결했다. 피해자 측은 인권 보장의 최후 보루여야 할 법원이 역할을 저버렸다며 강력히 비판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민성철 부장판사)는 21일 오전 고 곽예남·김복동 할머니를 비롯한 피해자와 유족 등 2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선고 공판을 열고 이같이 선고했다.

재판부는 "대한민국 법원이 피고에 재판권을 갖는지는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 이와 동일한 효력을 갖는 국제관습법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현시점 국제관습법과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외국의 주권적 행위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 재판부는 "(이 사건은) 한국의 외교 정책과 국익에 잠재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으로, 외국의 경우에도 국가면제 이론의 예외를 인정하는 범위와 개별적 입법이 모두 다르다"며 "행정·입법부의 정책 결정이 선행됨이 타당하고, 이러한 의사결정이 없는 상황에서 법원이 매우 추상적 기준만 제시해 예외를 창설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설령 법원이 심각한 인권 침해로 국가면제 이론의 예외를 인정해도 향후 이론에 대한 한국의 입장이 무엇인지 상당한 불확실성을 초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재판부는 "위안부 피해자는 어린 시절부터 많은 고통을 겪었고 진상 규명 역시 오랜 시간 순탄치 않았다. 국내외적으로 노력을 기울였으나 피해자 고통과 피해를 회복하는데 미흡했다"라며 "위안부 문제 해결은 한국이 여러 차례 밝힌 바처럼 대한민국과 피고의 대내외적 노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선고 공판이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난 이용수 할머니는 "(재판부가 원고 측 주장을) 전부 부정했다. 너무너무 황당하다"며 "재판 결과가 좋게 나왔든 나쁘게 나왔든 국제사법재판소로 꼭 갈 것이다. 이 말밖에 할 말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피해자 측 대리인단은 국제 질서와 국익에만 무게를 둔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대리인은 "재판부의 석명사항과 국가면제 이론과 관련해, 해외 판례 등 저희가 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취합해 제출했다"며 "국가면제와 권리보장을 규정한 국제인권조약도 있는데 이에 대해 (판단이) 이뤄지지 않고 오로지 국제 질서, 국익 이런 말만 했다"고 지적했다.

'행정·입법부 정책이 선행돼야 한다'라는 판시에 대해서도 대리인은 "입법과 행정에서 구제받지 못한 분들, 소수자 권리를 보장하는 인권의 최후 보루가 법원이 아닌가"라며 "행정부가 제대로 피해자를 구제했다면 왜 법원에 오겠는가. 법원이라는 곳이 왜 있는가"라고 규탄했다. 이어 "이번 판결을 통해 국제 질서 속 인권 보장이 무슨 의미인지 논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두 번째 손해배상 소송 선고공판을 마친 뒤 이상희 변호사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남용희 기자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두 번째 손해배상 소송 선고공판을 마친 뒤 이상희 변호사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남용희 기자

이에 앞서 피해자들은 2016년 2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2011년 피해자들이 "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한일정부가 달리 해석하는데 한국 정부가 해결에 나서지 않는 건 위헌"이라며 제기한 헌법소원이 위헌으로 결정난 것에 대한 후속 조치였다.

일본은 '국가면제' 원칙을 근거로 소송에 무대응으로 일관해왔다. 국가면제 원칙이란 한 국가가 외국 재판의 피고가 될 수 없다는 이론이다.

이 때문에 재판은 수년 동안 공전을 거듭했지만, 법원의 공시송달 결정으로 2019년 11월부터 변론이 진행됐다. 공시송달이란 송달 장소를 알 수 없거나 외국으로 촉탁송달이 불가한 경우 택하는 소송법상 송달법 중 하나다.

피해자 측 변호인단은 지난달 열린 공판에서 "일본은 최근 나온 서울중앙지법 판결에 국제법 위반을 주장했지만, 국가면제이론을 반드시 적용해야 한다는 국제관습법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난 30년 동안 국제인권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특히 젠더 폭력에는 국가가 피해자를 보호하고 폭력을 중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는 지난 1월 고 배춘희 할머니 등 12명의 피해자가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이날 판결과 달리 국가면제 이론은 '항구적이고 고정적 가치'가 아니라는 판단이다.

ilraoh@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
인기기사
실시간 TOP10
정치
경제
사회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