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첫 유죄' 악재…반격 나선 양승태·임종헌
입력: 2021.04.18 00:00 / 수정: 2021.04.18 09:07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23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23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

梁 "보고 안 받았다" 林 "재판 공정성 우려"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주문. 피고인 이민걸을 징역 10개월에, 이규진을 징역 1년 6개월에 각 처한다. 다만 이 판결 확정일로부터 이민걸에 대해 2년간, 이규진에 대해 3년간 각 유예한다."

지난달 23일 법원은 '사법농단' 사태에 연루된 법관에게 처음으로 유죄 판결을 선고했다. 첫 타자는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양형실장)과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이들은 양승태 대법원의 핵심 관계자로서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의혹으로 2019년 3월 재판에 넘겨졌다.

먼저 법원 판단을 받은 전·현직 법관들이 그동안 '증거 부족'이라며 혐의를 벗거나, '법리상 형사처벌할 수 없다'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아왔기에 당사자들의 충격은 상당했다. 불길한 예감이라도 했는지 선고 공판 전부터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던 이 전 양형실장은 4시간가량 진행된 공판이 끝난 뒤 법원을 재빨리 빠져나갔다. 이 전 기조실장 역시 뒤따르는 취재진의 질문에 말을 아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쩌면 이 법원 판결로 당사자보다 충격이 컸을 인물이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사태의 '정점'과, '행동대장'격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다. 첫 유죄 판결 뒤 각 2주, 3주 만에 열린 재판에서 이들의 대응은 눈길을 끌었다.

◆ 첫 유죄·공범 적시에 양승태 "권한도, 기억도 없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 전 양형실장 등 사건 유죄 판결문에서 △헌법재판소 내부 정보 수집 △'한정위헌' 취지 위헌제청 결정 개입 △국제인권법연구회 와해 관련 혐의에서 공모관계가 인정됐다. 가장 주목할 만한 건 서울남부지방법원 법관의 위헌제청 결정 취지를 바꾸도록 한 혐의, 이른바 '재판 개입'에 대한 판시다. 공소장에 따르면, 2015년 4월 서울남부지법은 한 재직기간 확인 사건에서 전제가 되는 법률을 놓고 한정위헌 취지로 헌재에 위헌제청 결정을 했다. 한정위헌은 '단순위헌'과 달리 헌재가 법원의 법률 해석을 평가하는 성격을 띤 결정이다. 대법원이 최고의 사법기관임을 공고히 하고 싶었던 양 전 대법원장은 대법원·법원행정처 관계자들에게 대응 방안 모색을 지시했다. 이 지시를 받은 관계자들은 회의를 거쳐 위헌제청 결정을 한 법관이 기존 결정을 취소하도록 했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은 '헌재 상대 위상 강화'라는 조직 목적 달성을 위해 오로지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재판해야 하는 법관의 결정에 개입했다고 검찰은 봤다. 재판 개입 혐의에 적용된 죄명은 대부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로,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이 의무 없는 일을 행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했을 때 성립하는 범죄다. 그동안 법원은 법관 재판에 개입할 권한은 누구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즉 그러한 '직무 권한'이 없어서 재판 개입 행위가 사실이어도 직권남용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 전 기조실장 등의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6부(윤종섭 부장판사)는 다소 파격적인 판시를 내놨다. 대법원·법원행정처가 판사의 명백한 잘못을 지적할 권한은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다만 지적 이상의 개입은 사법행정권 남용, 즉 직권남용 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서울남부지법의 위헌제청 결정에는 '명백한 잘못'이 없었지만 '지적' 이상의 개입이 있었고, 해당 혐의는 유죄 판단으로 귀결됐다.

지난 7일 오전, 양 전 대법원장 등의 122번째 공판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이종민·임정택·민소영 부장판사) 심리로 열렸다. 2주 전 유죄 판결·공범 적시에 대한 양 전 대법원장의 입장에 이목이 쏠렸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재판 개입 권한은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기존 주장 굳히기에 나섰다. 변호인은 "피고인은 공소사실과 같은 직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아무리 대법원장이라도 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침해할 수 있는, 재판 심리 과정에 개입하거나 대입 행위에 대해 복종시킬 의무는 없다"라며 "공소사실 가운데 그러한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이뤄진 공소사실이 있는데, 이러한 검사 주장은 의미 없다"고 설명했다. 구체적 혐의에 대해서도 "사후적으로 '법원행정처가 난감했다', '재판부가 단순위헌 취지로 변경해 해결됐다'라는 말을 전해 들었을 뿐 관련 회의에 참석하거나 특별한 지시를 내린 사실 자체가 없다"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사법행정 사무에 관한 대법원장의 역할은 미미하다고 선을 그었다. 변호인은 "법원의 사법행정은 법원행정처가 주로 담당하며 대법원장 결재는 필요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으로, 대법원장 승인 없다고 사법행정 못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논리에 따라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재판 개입과 대부분 혐의에 '구체적인 내용을 보고받지 않았다', '기억하는 바가 없다'라며 부인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를 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덕인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를 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덕인 기자

◆ '최다 공범 적시' 임종헌 전략은?…재판부와 정면 격돌

사법농단 첫 유죄 판결로 가장 수세에 몰린 건 임 전 차장이다. 이 전 기조실장 등 사건 판결문에서 모두 네 차례 공범으로 적시됐다. 양 전 대법원장의 공모관계가 인정된 혐의들은 물론, 옛 통합진보당 행정 소송 재판 개입 혐의에서도 공범으로 지목됐다. 임 전 차장이 골치 아픈 부분은 또 있다. 첫 유죄 판결을 선고한 형사합의32부 구성원이 형사합의36부로서 자신의 재판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재판부 역시 피고인 입장을 고려한 듯 지난달 31일 예정된 공판을 모두 미루고 '공판 준비' 명령을 내렸다. 명령의 요지는 이 전 기조실장 등 사건 1심 판결에 의견을 제출해달라는 것이다. 최근 임 전 차장 사건 재판에서 나온 재판부의 발언에 따르면 "관련 사건 판결이 당사자에게 어떤 의미로 여겨질 수 있는지, 당사자가 실제로 어떻게 여기는지 의견을 구한 것"으로 "향후 심리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랬다(명령을 내렸다)"는 취지다. 형사소송법상 재판부 구성원이 같더라도 각 재판은 서로 독립된 상태에서 진행돼야 한다. 재판부 역시 독립된 심리를 할 계획이지만, 이에 앞서 당사자 입장을 직접 듣겠다는 설명으로 풀이된다. 판결 선고 뒤 몸과 마음이 지쳐 힘들었는대도 당사자 입장이 어떨지 고민돼 명령을 내렸다고도 덧붙였다.

이에 따라 13일 오후 2시 열린 임 전 차장 사건 공판 준비기일에서는 '관련 사건 판결을 이유로 재판부 기피 신청을 할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임 전 차장 측은 2019년 6월 재판장 윤종섭 부장판사를 상대로 기피 신청을 해 9개월가량 재판이 중단된 바 있다. 임 전 차장 측은 "피고인의 방어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면서 어떻게든 피고인을 처단하고야 말겠다는 오도된 신념 내지 사명감에 가까운 강한 예단을 가지고 재판을 진행해왔다"고 주장했지만, 지난해 2월 대법원은 "법관이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객관적 사정으로 보기 어렵다"며 최종 기각했다.

13일 준비기일에서 임 전 차장 측은 첫 유죄 판결에 대한 입장도, 기피 신청 의사도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대신 윤석열 전 검찰총장 재임 시절 검찰의 '판사 사찰' 문건과, '조선일보' 단독 보도 등을 들어 윤 부장판사의 공정성에 다시 의문을 제기했다. 변호인은 "조선일보 보도처럼 김 대법원장이 2017년 10월경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재조사와 관련해 의견 청취 목적으로 면담 자리에 초청한 판사 10명이 누군지, 보도처럼 '반드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말한 판사는 누군지, 그 발언이 보존돼 있는지 대법원·법원행정처에 사실조회를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2월 '반드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말한 판사가 바로 재판장 윤 부장판사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김 대법원장은 2017년 10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재조사에 앞서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 10명을 초청해 면담했다. 당시 민사단독 판사로서 참석한 윤 부장판사가 "반드시 진상 규명을 해야 한다. 연루자들을 단죄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변호인은 "조선일보 보도는 피고인 입장에서 우려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라며 "공정성 우려 해소를 위해서라도 이 부분을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검찰의 '판사 사찰' 문건에 비슷한 내용이 있는 점도 그 근거로 들었다. 또 김 대법원장이 최근 '거짓말' 의혹에 휩싸인 것까지 끌어와 "김 대법원장이 보인 태도를 보면 이는 2019년 기피 신청 당시보다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변호인의 '작심 변론'에 윤 부장판사는 "사실조회 신청 인용 여부는 쌍방 의견을 듣고 법정 외에서 결정하겠다"고 짧게 답했다. 그러고는 "인용과 별개로 재판은 진행돼야 한다"며 이달 27일과 다음 달 3·4·10·11일을 속행 공판기일로 잡고 각 기일에 진행할 서증조사 계획을 짰다. 재판부는 불필요한 논란을 줄이기 위해 이 전 기조실장 등 사건과 중복되는 공소사실을 먼저 심리해왔다. 다음 공판부터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소송 개입 등 나머지 사안들에 대한 서증조사가 진행될 전망이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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