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헌법불합치 2년…처벌 없앴다고 끝이 아니다
입력: 2021.04.11 00:00 / 수정: 2021.04.11 09:06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위헌 여부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2019년 4월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위헌소송 변호인단장을 맡고 있는 김수정 변호사가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위헌 여부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2019년 4월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위헌소송 변호인단장을 맡고 있는 김수정 변호사가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국회 '직무유기'…법 제정·시스템 마련 시급"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2019년 4월 11일.

1953년 형법에 규정돼 66년간 논란 속에 자리를 지켜 온 '낙태죄 처벌' 조항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온 날이다. 2년이 지났지만 낙태 시술에 관한 명료한 법 조항·시스템도 없는 게 현실이다. 법조계·의료계·여성계 등 각계는 국민의 기본권이 달린 현안인데도 국회가 개정안 마련부터 제도 정비까지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2년 전 오늘 헌재는 산부인과 의사 A 씨가 낙태죄 처벌조항인 형법 269조·270조가 임산부의 자기 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불합치란 해당 법률이 사실상 위헌이지만, 즉각 폐지한다면 법의 공백에 따른 사회적 혼란이 예상돼 법 개정 전까지 한시적으로 그 법을 존속시키는 결정이다.

헌재는 "임신·출산·육아는 여성 삶에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라며 "임신을 유지 또는 종결할 것인지는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사회관을 바탕으로 자신이 처한 사회적·경제적·심리적 등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의 결과여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또 헌재는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인 생존을 할 수 있는 임신 22주를 '결정 가능 시간'이라 보고 "임신 22주 정도까지 여성이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판시했다.

그로부터 2년. 낙태죄는 정말 사라졌다. 지난 1월 대법원은 헌재 결정 전 낙태 시술을 한 혐의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 B 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헌재 결정 뒤 대법원에서 낙태 시술을 한 의사에 대한 무죄 확정판결을 한 첫 사례였다.

B 씨는 2013년 9월 임신 5주인 여성을 상대로 낙태 시술을 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져 선고유예 판결을 선고받았다. 선고유예란 유죄는 인정하지만 일단 형사 처벌하지 않겠다는 제도다.

그러나 B 씨 사건이 2017년부터 대법원에 계류하는 동안 헌재 결정으로 낙태 시술을 처벌할 법적 근거는 사라졌고, B 씨는 혐의를 벗었다. 사건을 맡은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위헌 결정을 받은 조항은 소급해서 효력을 상실하기 때문에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상고심 재판부가 원심판결을 파기하면서도 사건을 원심법원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직접 선고한 판결(파기자판)이었다.

2년 전 오늘 헌재는 산부인과 의사 A 씨가 낙태죄 처벌조항인 형법 269조·270조가 임산부의 자기 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남윤호 기자
2년 전 오늘 헌재는 산부인과 의사 A 씨가 낙태죄 처벌조항인 형법 269조·270조가 임산부의 자기 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남윤호 기자

낙태죄 처벌은 없어졌지만 '안전하고 합법적인 낙태'를 위한 제도 역시 사실상 전무하다. 헌재가 내건 개선 입법기한까지 국회가 입법을 끝내지 못하면서 법조계는 물론 의료현장의 혼란도 가중되고 있다.

헌재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함께 명시한 개선입법 기한은 2020년 12월 31일이었다.

헌재 결정 뒤 국회와 법조계, 의료계 등에서는 개선입법 기한을 앞두고 다양한 개정안을 내놨지만,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다. 가장 먼저 부딪힌 건 처벌 조항의 전면 폐지 여부였다. 낙태 시술을 형사처벌 영역에 두는 것 자체가 여성의 자기 결정권 침해라며 '주수제한'을 둬서는 안 된다는 시각과, 합법적으로 낙태 시술을 범위를 정해야 한다는 분석이 대립했다.

지난해 10월 법무부는 '주수제한'을 택했다. 당시 법무부에서 낸 입법예고안을 보면 임신 14주 이내에는 오로지 임산부 본인의 의사에 따라 임신 중단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임신 15주에서 24주 사이에는 기존 모자보건법상 낙태 허용 사유에 더해 사회적·경제적 사유가 있는 경우 상담과 24시간의 숙려 기간을 거쳐 임신 중단이 가능하도록 했다. 현행 모자보건법상 임신 24주 이내 중단 허용 사유는 △임부나 배우자의 우생학적·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전염성 질환 △강간·준강간에 의한 임신 △근친관계 간 임신 △임부 건강 위험 등이다.

하지만 이 안은 낙태 시술을 여전히 '범죄의 영역'으로 본다는 점에서 한계가 지적됐다. 임산부 의사에 따라 임신을 중단할 수 있는 주수도 14주로 제한해 '여성이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기 충분한 시간'으로 22주를 지목한 헌재 결정보다 퇴보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논란 속에서 국회는 주수제한을 골자로 한 법무부의 입법예고안은 물론 처벌조항 전면 폐지를 취지로 한 국회의원 발의안도 채택하지 못하고 입법 기한을 놓쳤다. 이에 따라 낙태죄 처벌 조항은 올해 1월 1일을 기점으로 아무런 입법없이 효력을 잃었다.

각계에서는 지금이라도 정부와 국회에서 빠르게 움직여 안전한 낙태 시술을 위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다만 '입법'과 '시스템 정비' 중 무엇이 선행돼야 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뉜다.

법조계·의료계는 대체로 '입법이 먼저'라는 입장이다. 법 없이 의료계 자체 기준이나 지침 등에만 의존하면 향후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입법 공백 상태에서 어쨌든 처벌 조항이 사라졌으니 의사에게 낙태의 기준과 지침을 마련하라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라며 "향후 공백 상태인 법이 입법됐을 때 의사가 만든 기준을 그대로 따른다면 지침이 국회의 입법권을 대신하는 모양새가 된다. 반대로 의사의 기준과 다른 개정안이 만들어진다면 그때는 의사의 기준이 위법하다고 비난할 것인가"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의 기본권과 직결된 법 제정인 만큼 국회는 방치를 멈추고 적절한 법안을 하루속히 입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동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헌재에서 바른 법을 다시 정할 기한을 줬고 각계에서 여러 차례 회의를 개최했는데 지금까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건 정부와 국회의 직무유기"라며 "국회에서 적극적으로 입법에 나서야 낙태약을 수입할 것인지, 어느 주수까지 어떤 이유로 낙태 시술을 허용할 것인지, 의사의 낙태 시술 관련 진료 거부권을 인정할 것인지 등 실무적인 시스템을 마련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낙태죄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있었던 2019년 4월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유지를 주장하는 시민단체 회원들과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단체가 정문 앞에서 동시에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남윤호 기자
낙태죄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있었던 2019년 4월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유지를 주장하는 시민단체 회원들과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단체가 정문 앞에서 동시에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남윤호 기자

반면 처벌조항 폐지로 낙태 시술이 완전한 비범죄화 영역에 들어온 만큼, 입법과 상관없이 시스템 마련에 힘써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러한 대책의 선례는 캐나다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여성의 재생산 건강 및 권리 보장을 위한 정책방향' (한국여성정책연구원·2019)에 따르면, 캐나다는 1988년 낙태 시술을 제한하는 형법은 위헌이라고 선언한 뒤 지금까지 어떠한 형사처벌 조항도 두지 않는다. 낙태 시술을 일반적 의료 서비스 중 하나로 보고 '보편적 의료 보장' 체계 아래에서 시술이 이뤄진다.

처벌조항이 존재하는 영국의 사례도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의 처벌조항은 매우 추상적이고 모호한데, 이 모호함 덕분에 의료인이 환자의 권리와 건강권 보장을 위해 법을 유연하게 해석할 길이 열렸다고 서술한다. 너무 구체적이고 상세한 법률이 오히려 낙태 시술을 엄격히 규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아름(활동명 '앎')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모낙폐) 활동가는 "지금 상황은 입법 공백으로 인한 혼란이 아닌, 원래 처벌하지 않아야 할 사안이 비범죄화된 시점이라고 해석해야 한다"며 "건강보험 적용, 안전한 유산유도제 처방 등 공적 의료서비스는 법적인 문제가 아닌 정책적 문제다. 낙태 시술이 비범죄화된 이상 모두의 접근성을 높일 공적 의료서비스 정책이 마련되고 시행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2년. 일의 순서를 막론하고 여성이 안전하고 합법적으로 임신을 중단할 '권리'를 위해 정부·국회가 발 벗고 나서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크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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