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두 달 만에 재판…"적폐청산 광풍이 예단 만들어"
입력: 2021.04.07 15:39 / 수정: 2021.04.07 15:39
2월 법관 정기인사로 멈춰 섰던 사법농단 의혹 양승태(사진)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 처장(대법관)의 재판이 두 달 만에 재개됐다. /이선화 기자
2월 법관 정기인사로 멈춰 섰던 '사법농단 의혹' 양승태(사진)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 처장(대법관)의 재판이 두 달 만에 재개됐다. /이선화 기자

재판부 변경 뒤 첫 공판…한동훈 예 들며 "수사상황 실시간 유출"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오랜만이야." "법정 비운 사이에 모르는 게 많아졌네. (웃음)"

2월 법관 정기인사로 멈춰 섰던 '사법농단 의혹'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 처장(대법관)의 재판이 두 달 만에 재개됐다. 10여 명의 변호인단은 법정에 입정해 "오랜만이야"라며 인사를 주고받았다. 피고인인 박 전 처장은 밝은 표정으로 변호인과 악수했고, 고 전 처장도 미소 띤 얼굴로 변호인과 대화를 나눴다. 마주 앉은 검찰 분위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랜만에 재판에 들어와 헷갈린 탓인지 부장검사는 함께 온 4명의 후배 검사들에게 누가 어느 자리에 앉을지 안내했다.

양 전 대법원장도 종종 다른 이들과 눈인사를 했지만, 재판 내내 피로한 듯 눈을 감은 채였다. 새 재판부가 생년월일과 주소지·등록기준지를 묻자 빠르게 기억나지 않는 듯 말을 더듬고, 재판장에게 "다시 한번 말씀해주시겠습니까"라며 질문을 되묻기도 했다. 그러나 47개에 달하는 공소사실에 대한 의견을 묻는 말에는 담담하고 침착하게 입장을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은 7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이종민·임정택·민소영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속행 공판에서 "피고인이 가장 우려하는 건 예단"이라며 "새로운 재판부께서 사건의 본질과 실질적 내용을 정확히 판단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공판은 2월 법관 정기 인사 등으로 재판이 멈춰선 지 두 달 만에 열린 재판이었다. 그 사이 재판부는 대등재판부로 변경되고, 그 구성원 역시 모두 바뀌었다. 이에 따라 공소사실에 대한 검찰·피고인 측 의견을 새 재판부에 밝히는 공판 갱신 절차가 진행됐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첫 재판 때처럼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변호인은 크게 △재판 개입 △헌법재판소 정보 수집 △국제인권법연구회 와해 등으로 나뉜 혐의에 대해 "법원의 사법행정은 법원행정처가 주로 담당하며 대법원장 결재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피고인은 공소장에 기재된 내용 대부분 보고받은 기억이 없다. 설령 보고받았더라도 '티타임'같은 비공식적 자리에서 사후에 요약된 내용을 전달받은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또 변호인은 검찰의 공소장이 공소장 일본주의(공소장에는 법원에 예단을 생기게 할 수 있는 내용을 인용해서는 안 된다는 형사소송법상의 원칙)를 위배했다고 설명했다. 변호인은 "첫 공판 준비절차부터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을 주장해왔고, 이에 종전 재판부는 지난해 4월 검찰에 공소장 변경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검사는 일부 내용만 특정하거나 삭제했을 뿐 아직도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 소지가 있는 내용이 잔존한다"며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에 해당될 경우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하는 게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변호인 의견에 직접 추가할 내용이 있냐는 재판부의 물음에 양 전 대법원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이른바 적폐 청산이라는 이름의 광풍이 사법부까지 불어왔다"며 "그 과정에서 형성된 예단이 객관적 관찰을 방해한다면 그야말로 우리 사법이 가장 경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검언유착 의혹'에 연루된 한동훈 검사장(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 지난해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을 신청하면서 "수사상황이 실시간 유출되고 수사의 결론을 미리 제시하는 수사팀 관계자의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 부분을 인용했다.

사법농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22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1.04.07./뉴시스
사법농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22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1.04.07./뉴시스

양 전 대법원장은 "얼마 전 검찰 고위 간부 한 분이 수사를 받게 되자 '수사 상황이 시시각각 유출되는 상황에서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요구했다"며 "이 사건 수사 과정 역시 어떤 언론에서 '수사 과정이 실시간 중계방송되고 있다'고 보도할 정도였다. 그 과정에서 모든 정보가 왜곡돼 일반 사람들은 '상당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생각에 젖어 들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광풍이 다 할퀴고 지나간 자국을 보며 객관적으로 살필 수 있는 상황이 됐다"며 "이런 상황에서 과거에 형성된 예단이 객관적인 판단을 방해할 수 있다는 점을 저희는 매우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새로운 재판부께서 그런 상황을 잘 이해하고 이 사건의 본질이 뭔지, 실질적 내용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판단해주시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은 일선 법관이 당시 대법원 기조에 맞게 판결을 선고하도록 부당하게 개입하거나, 헌법재판소를 상대로 대법원 위상을 강화하려고 헌재 내부 정보를 빼돌린 혐의 등으로 2019년 2월 재판에 넘겨졌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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