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건부 이첩' 명문화 사무규칙 추진…이첩·송치 반복 우려도[더팩트ㅣ김세정 기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검찰·경찰에 이첩한 판·검사 범죄 사건을 수사 후 되돌려 받는 내용이 담긴 사무규칙 제정을 추진한다. 검·경이 수사해도 기소는 공수처가 하겠다는 취지다. 고위공직자 사건의 콘트롤타워가 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31일 오전 출근길에서 사건·사무규칙안을 "최대한 빨리, 늦지 않게 제정할 것"이라고 했다. 김 처장이 예고한 '1호 수사' 착수 전 사무규칙을 확립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공수처는 판·검사와 경무관 이상 공무원 사건을 검·경에 이첩하더라도 수사 후에는 다시 넘겨받아 공소제기는 공수처가 판단하는 내용의 사건·사무규칙 제정안을 검·경에 전달했다. 구속영장 신청도 검찰이 아닌 공수처 검사를 거치도록 하고, 기소 권한을 남기고 검찰에 이첩한 경우도 수사를 마치면 공수처에 다시 보내야 한다는 규정도 포함됐다.
이같은 규칙은 공수처가 고위공직자 사건을 전담하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된 걸로 보인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처장은 수사 진행 정도나 공정성 논란에 비춰 다른 수사기관의 중복되는 수사에 이첩 요청을 할 수 있고, 수사기관장은 이에 응해야 한다. 피의자나 피해자, 사건 내용과 규모에 따라 사건을 다른 수사기관에 이첩할 수도 있다. 다만 이첩 범위나 이첩 후 방법에 대한 규정은 없다.
법조계에서는 이같은 이첩 규칙이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수처와 검찰에 의견 차이가 있을 경우 공수처는 보완수사를 요청할 수 있는데 수사기관 사이 이첩과 송치가 반복되는 등 소모적인 논란이 계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수처는 '고위공직자수사처'다. 공직자 수사가 우선돼야지, 기소가 중심이 되는 기관이 아니다"라며 "공수처가 검찰과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청할 때 다시 받은 수사결과가 여전히 불충분할 때 발생할 반복적 순환구조를 어떻게 할지 분명한 답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수처가 다시 직접 수사한다면 반복적 수사 또는 인권침해 수사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공수처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출국금지 의혹 사건을 검찰로 재이첩했지만 '조건부 이첩'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김진욱 처장은 기소권은 공수처에 남겨두고 수사권만 검찰에 넘기는 조건부 이첩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놓았지만 검찰은 사건이 다시 넘어온 이상 검찰이 수사와 기소를 함께 해야 한다고 맞섰다.
공수처의 이번 사무규칙 제정은 이같은 조건부 이첩을 명문화해 논란을 종결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다만 검·경 등 수사기관과의 마찰은 공수처가 돌파해야 할 과제다. 김 처장은 검·경의 반발 가능성에 대해 묻자 "검토해볼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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