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의혹' 공무원 "정쟁 우려해 자료 정리…잘못된 판단"
입력: 2021.03.30 14:19 / 수정: 2021.03.30 14:19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에 연루돼 구속기소 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측이 피고인 방어권 보장을 위해 보석을 허가해달라고 법원에 호소했다. /송주원 기자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에 연루돼 구속기소 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측이 피고인 방어권 보장을 위해 보석을 허가해달라고 법원에 호소했다. /송주원 기자

'월성 1호기 의혹' 산업부 공무원 보석 심문

[더팩트ㅣ대전=송주원 기자]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에 연루돼 구속기소 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측이 피고인 방어권 보장을 위해 보석을 허가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원전 자료 삭제를 지시한 이유는 불필요한 정쟁을 피하기 위해서였지만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진술했다.

대전지법 형사11부(박헌행 부장판사)는 30일 오전 10시 국장급 A 씨와 서기관급 B 씨 등 산업부 공무원들의 보석 심문기일을 진행했다.

피고인들은 사건 특성상 자료가 방대하고, 내용도 전문적인 만큼 불구속 재판을 받으며 변론을 준비해야 한다고 보석 청구 사유를 설명했다.

A 씨 측 변호인은 "A 씨는 30여 회에 걸쳐 검찰 조사를 받았는데, 30년간 법조 생활을 하면서 피의자 조사가 이렇게 많이 이뤄지는 건 처음 봤다. 이런 식의 조사를 받으려면 피고인도 변론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라며 "평일 오후 다섯 시 반 이후, 주말에는 구치소 접견이 불가능해 변호인과 피고인이 만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평일에 접견하러 가도 검찰 조사를 나갔다고 하면 피고인을 만날 수 없다. 소통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B 씨 측 변호인 역시 "이 사건 쟁점은 전문적 지식이 필요한 원자력 정책으로 담당 실무자였던 B 씨의 구체적 경험에 따라 사실관계를 설명할 수밖에 없다"며 "변호인과 피고인 모두 45권으로 정리된 655개의 증거목록을 제대로 검토할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있다. 피고인 구금이 지속되면 헌법이 보장하는 '공정하게 재판받을 권리'를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검사는 "관련 사건 조사라는 (수사기록 열람 등사를 연기할) 정당한 이유가 있지만 신속한 피고인 방어권 보장을 위해 지난 11일 열람등사본을 교부했다"며 "불과 어제 진행된 A 씨에 대한 조사에서도 변호인 접견권을 보장했다"고 반박했다. 또 "피고인과 변호인이 변론을 준비할 독립된 시간을 부여하기 위해 영상녹화실을 제공하고 검사가 (녹화실에) 들어가지도 않았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재판 내용을 종합하면 전날(29일) A 씨가 검찰 조사를 받을 당시에는 재판에 출석한 변호인이 아닌, 검찰 수사단계에서 A 씨를 지원한 변호사가 참여했다.

또 검사는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할 당시와 비교했을 때 어떤 사정변경도 이뤄지지 않았고, (피고인들은) 앞으로 나올 증인들의 상급자라 증인을 회유할 가능성도 크다"며 보석 청구를 기각해달라고 요청했다.

A 씨 측은 구속 피고인의 현실을 모르는 검찰의 형식적인 접견권 보장으로는 역부족이라고 항변했다. A 씨 측 변호인은 "검사님 말씀을 들으니 현실과의 괴리감이 바로 느껴진다"며 "이렇게 많은 검사님이 동원됐는데, 공판에 들어올 변호인과는 5분, 10분 소통한 피고인이 어떻게 대응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이건 사람의 인생 문제다. 검사와 피고인, 변호인은 (처한 상황이) 다르다"며 "저희가 재판부에 간곡히 요청드리는 건 불구속 재판을 통해 반대신문과 반박 자료를 준비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라고 거듭 호소했다.

보석 사유를 직접 설명할 기회를 얻은 A 씨는 "제가 다 아는 내용임에도 엄청난 양의 증거자료를 두고 변호사와 논의하는 게 구속 상태에서는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됐다. 보석을 허가해주신다면 충실한 재판이 이뤄지도록 면밀히 검토하고, 재판 진행에 우려될 만한 어떠한 언행도 하지 않겠다"고 호소했다.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정부 수립 이후 전례 없는 탈원전 정책이 추진돼 기존 자료와 다른 내용이 있었다"며 "이런 것들이 외부에 알려질 경우 불필요한 정쟁에 휩싸일 수 있다고 생각해 자료 정리 지시를 한 것이 원인이 돼 재판에 이르게 됐다. 공직자로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송구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자료 정리 지시는) 잘못된 판단이었다. 부하직원 B 씨의 선처를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B 씨 역시 발언 기회를 얻어 "재판이 성실히 임하고 오해를 살만한 언행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A 씨 등은 감사원 자료 제출 요구 직전이던 2019년 11월 월성 1호기 관련 자료 삭제를 지시하거나 이를 묵인·방조한 혐의 등으로 지난해 12월 재판에 넘겨졌다.

2019년 12월 감사원 감사관과의 면담을 앞둔 날 오후 11시경 정부세종청사 산업부 사무실에 들어가 약 2시간 동안 월성 1호기 관련 자료 530건을 지운 혐의도 받는다.

재판부는 이날 심문에서 나온 양측 주장과 피고인들의 서약서를 따로 제출받아 검토한 뒤 보석 여부를 결정할 전망이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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