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시간 미사용 시 전원 차단' 주의사항에도 책임 인정[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장기간 미사용 시 전원을 차단하라'는 경고문구가 있더라도 전자기기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면 제조사 책임이라는 판단이 나왔다. 제품에 기재된 주의사항은 추상적 안내일 뿐이라는 이유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46단독 박강민 판사는 A 보험회사가 업소용 식기세척기 등을 제조하는 B사를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줘 약 1193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A사와 보험계약을 체결한 C 씨는 식당을 운영하던 중 메뉴 변경을 위해 잠시 휴업했다. 휴업한 지 약 11일째 되던 날 식당에 불이 났다. 불은 식당 주방에 있던 식기세척기의 PCB(부품의 전기적 연결기능을 하는 기판)에서 시작됐다.
A사는 C 씨에게 모두 3000여만 원 상당을 지급하면서 식기세척기 결함으로 불이 났으니 제조사인 B사도 일부 금액을 배상해야 한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상법 682조에 따르면 손해 책임이 보험계약자가 아닌 제3자에 있는 경우 보험회사 역시 제3자에게 피보험자로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B사는 화재 책임은 전적으로 C 씨에게 있기 때문에 배상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제품 안내서에 '장기간 사용하지 않을 경우 전원을 차단하라'라는 취지의 내용이 기재됐는데도 사용자가 전원을 켜둔 채 방치했다는 이유다.
하지만 이러한 B사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비록 제품 안내서에 장기간 사용하지 않을 경우 전원을 차단하라는 취지의 기재가 있지만, 화재 발생을 예방하기 위한 추상적 안내일 뿐"이라며 "사용자가 11일간 전원을 켜둔 채 방치했다는 사정만으로는 사용자의 부주의에 따른 잘못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재판부는 '전원 플러그가 콘센트에 꽂혀 있기만 한 상태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면 사용자의 부주의로 판단하기는 무리'라는 소방 당국의 입장도 근거로 들었다.
이밖에도 B사는 발화지점인 PCB는 사용한 지 3년이 지났다면 정기점검을 받거나 부품 교체를 해야 하는데 사용자가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이 났다고도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제조사는 제품의 내구수명이 다소 지나더라도 소비자가 손해를 입지 않도록 제조과정에서 안정성을 확보해야 할 고도의 주의 의무가 있다"며 배척했다.
ilraoh@tf.co.kr